고공행진 등유값에 난방비 60만원 훌쩍, 현장 고충도 심각
휴업판매소에 불법업자 스며들어…폐업지원비 통해 풀어야

▲김규용 석유일반판매소협회 회장
▲김규용 석유일반판매소협회 회장이 산업구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투뉴스] "작년 등유값이 비싸도 너무 비쌌다. 어르신들에게 등유를 배달해 주고 받은 현금 뭉치를 주머니에 넣으면 얼마나 두둑한지 아나. 만원짜리가 자그마치 60장이 넘는다. 할머니에게 도둑질하는 기분마저 들더라. 업계의 잘못도, 내 잘못도 아닌데 뭔가 죄송한 마음이 든다" 지난 16일 대구에서 만난 김규용 한국석유일반판매소협회장은 2022년을 이렇게 회고했다. 

지난해 등유판매업계는 유례없는 한해를 보냈다. 1월 리터당 평균 1098.1원에 판매되던 등유는 러-우 전쟁 영향으로 야금야금 오르더니 7월 1686.6원을 찍으면서 고점을 찍었다. 연초와 비교하면 50% 가까이 올랐고, 2021년 1월(863.8원)과 비교하면 곱절로 뛰었다. 다행히 최근 들어 내림세를 보이며 1400원 후반까지 떨어졌지만 여전히 부담스러운 가격대다.

특히 일부 주유소에선 휘발유보다도 비싸게 팔아 서민연료라는 말이 퇴색한지 오래다. 김규용 회장은 등유값이 이렇게 비싼던 적이 없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일반판매소는 주로 겨울철에 등유(경유 일부)를 직접 소비자에 배달·판매하는 곳이다. 등유를 난방유로 사용하는 사람이 자연스레 줄면서 업계 또한 위축, 현재는 전국에 1700여개 판매소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4000개가 넘었던 시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그는 "업계에 발을 담근 지 30년이 넘었는데 지난해 같은 경우는 처음"이라면서 "보통 가정집에 난방유로 등유를 2드럼(드럼당 200ℓ) 정도 넣는데 그럼 가격이 60만원을 넘었다. 심지어 2드럼은 겨울 한철 나기에 턱없이 부족한 양"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등유를 어쩔 수 없어 사용하는 '선택지가 없는 난방유'라고 표현했다. 그는 "도시가스를 쓰기 싫어서 안쓰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면서 "배관을 묻을 수 없는 산골마을도 있고, 세 들어 사는 사람은 집주인이 안된다고 하면 어쩔 수 없다. 도시가스를 설치하는데 드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설명했다. 

◆"등유 특별점검반은 탁상행정에 불과"
"따르릉, 따르릉" 때마침 울린 그의 핸드폰 벨소리. 거래처로부터의 연락이다. 정확히 말하면 등유가 떨어져 그를 찾는 동네 어르신의 전화다.  

"아, 할머니. 지금은 제가 일이 있어 가지고요. 내일 갈게요. 어제는 비가 와서 못 갔고요. 아직 기름이 없는 게 아니니까 내일 갈 때 전화드릴게요." 

그는 통화를 끊으면서 "등유를 사용하는 사람이 대부분 고령이라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될 문제"라고 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보면 도시가스가 금전적으로 이득이겠지만, 이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다. 이처럼 등유는 어쩔 수 없이 쓸 수밖에 없는 연료로 전락했다. 그런데 가격이 이렇게 뛰니 다들 고충이 이만저만 아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이같이 등유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지난겨울 정부는 가격 안정화를 위한 대책을 내놨다. 산업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등유 특별점검반'을 구성,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는 전국 주유소와 일반판매소를 대상으로 가격인하를 계도하겠다고 공언했다. 그 결과 전체 3214회 점검을 통해 가짜석유 등 불법행위 36회를 적발했다고 산업부는 최근 밝혔다.   

이에 김 회장은 "탁상행정에 불과한 정책"이라며 강하게 질타했다. 그는 "팩스로 공문을 받긴 받았는데 이것이 얼마나 가당치 않은 것인지 되묻고 싶다"면서 "시장경제에서 정부가 나서 가격을 계도한다는 것이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업계가 이리 만만한가.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보다 현실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책을 내놓을 것을 주문했다. 그는 가짜석유 유통업자를 하루빨리 내쫓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했다. 이들이 업계를 좀먹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판매소는 위험물 취급업소라 폐업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땅속에 큰 탱크가 묻혀 있어 이를 파내야 하고, 주변 토양이 오염됐는지 검사도 이뤄져야 한다. 전반적으로 폐업비용만 3000만원가량이 든다. 장사가 되지 않아 폐업을 하는 마당에 별도로 이러한 돈을 들이기는 쉽지 않다. 결국 사장은 폐업이 아닌 휴업을 선택하게 되고, 이 빈틈을 가짜석유 유통업자가 파고든다는 설명이다.

실제 협회에는 매달 20~30건의 지위승계를 위한 '임대차계약'이 보고되고 있다. 일년 새 판매소 300곳 이상에서 주인이 바뀌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이 업계에 들어온다는 것은 생각해 보면 사실 간단하다. 지위승계를 한 사람 중 95% 이상은 가짜석유 유통업자다. 이 수치마저도 낮게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짜석유 유통업자가 필요한 것은 사업장이 아니고 사업증"이라면서 "일반판매소는 주유소보다 지위승계가 쉽고, 비용도 저렴하며, 걸렸을 때 처벌도 가볍다. 불법업자가 몰리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사장 바뀐 곳 집중 살피고, 폐업으로 유도해야"

▲서울시내 한 일반판매소. 해당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서울시내 한 일반판매소. 해당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김 회장은 현재 일반판매소가 불법 가짜석유의 온상이 되고 있다고 자평했다. 거침없는 발언에 재차 되물었지만 대답은 같았다. 그는 "특히 지위승계로 새로 온 사람은 기존 회원사가 아닌 외지인이 대부분"이라며 "처음 보는 사람이 들어와 업태를 망가트리고, 이로 인해 선량하게 장사하는 사람들까지 싸잡아 비난을 받는 실정"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들어오는 구멍을 막기만 하면 가짜석유 유통이 상당수 줄어든다고 했다. 지위승계한 판매소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자는 얘기다. 

김 회장은 "한 달에 지위승계한 업소 30곳만 살피면 된다. 이들이 어떻게 거래하고 있는지 현장을 나가 거래상황을 점검해야 한다. 협회에 권한을 주든지, 아니면 정부가 직접 나서든지 모든 좋다. 매달 딱 30곳만 해도 잡힌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출구전략을 제시해 줄 것도 당부했다. 휴업을 하는 곳에 불법업자가 몰리는 만큼 정부가 나서서 휴업이 아닌 폐업으로 이끌어 줘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 회장은 "이제는 정말 가짜석유 유통을 뿌리 뽑아야 할 때"라면서 "협회장이기 이전에 나도 업계 종사자다. 이들을 보면 정말 울분이 치민다. 지위승계한 곳을 꼼꼼히 살피고, 폐업지원비를 통해 자연스럽게 폐업을 유도한다면 가짜석유 유통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일반판매소가 불법유통의 숙주가 되기 전에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네, 안녕하세요. 조금만 늦게 갈게요. 곧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바로 전화드릴게요" 그는 두시간이 넘게 진행된 인터뷰를 이 통화를 받으며 마무리했다. 그를 찾는 전화가 많은 올겨울. 김 회장의 어깨가 유독 무겁다.    

<대구=김동훈 기자 hooni@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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