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훈 석유유통협회장 "최근 정책들 모두 반(反)시장정책"
"정부 시장개입 최소화하고, 업계 목소리에 보다 집중해야"

▲김정훈 석유유통협회장이 국내 석유시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정부의 시장 개입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정훈 석유유통협회 회장

[이투뉴스] "시장이 순리대로 돌아가게 내버려 두면 되는데 자꾸 정책이랍시고 정부가 석유유통에 개입하다 보니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그 부작용을 막으려다 오히려 다른 쪽에 문제가 발생한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형국이다" 김정훈 석유유통협회장은 현재 국내 석유유통시장을 이렇게 진단했다.

김정훈 한국석유유통협회 회장은 지난달 열린 정기총회에서 회원사 만장일치로 3연임에 성공했다. 3년 임기를 마치면 9년, 연수로는 꼬박 10년(2017~2026년) 동안 협회장직을 수행하게 된다. 3연임 소회를 묻기 위해 만난 자리에서 그는 업계에 대한 안타까움과 걱정을 토로했다.  

최근 업계가 가장 주목하는 사안은 '휘발유 도매가 공개 여부'다. 석유정제업자(정유사)가 판매처별(대리점‧주유소) 공급가와 지역별 가격을 공개토록 하는 내용으로, 지난해 9월 산업통상자원부는 관련 내용을 담은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사업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판매가격을 공개해 정유사간 경쟁을 유발, 국내 기름값을 내리겠다는 취지다.
<관련기사 석유가격 '속살' 공개에 입장차 확연>

현재 해당안은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 재심의를 앞두고 있다. 지난달 24일 한차례 논의를 진행했지만 결론짓지 못하고 이달로 넘어왔으나 이번 달에도 규제 심의를 마무리 짓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정부 측은 좀 더 시간을 두고 업계 의견을 청취한다는 이유를 내놨지만, 일각에서는 "아직 의견이 완벽하게 조율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향후 심의 일정은 아직 잡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김 회장은 이와 관련 "잘못된 진단에서 비롯된 잘못된 해법"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정부는 도매가 공개가 이뤄지면 국내 휘발유값이 떨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국내 유류가격은 국제 제품가격과 국내 세금(유류세)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도매가 공개와 국내 기름값은 상관관계가 크지 않다는 얘기다.  

실제 정유사는 2001년 유가자유화 이후 글로벌 석유제품가를 국내 가격과 연동시키고 있다. 환율을 감안한 국제가를 토대로 관세, 운임비, 유류세 등을 더해 정유사 공급가격이 산정된다. 국제 휘발유 제품가가 뛰면 국내 휘발유값도 오르고, 반대의 경우에는 내린다.

현재 휘발유 유류세는 리터당 559.35원, 경유는 335.58원으로 각각 25%와 37%의 인하율이 적용되고 있다. 이번 인하조치는 내달 말 종료 예정이다. 전반적으로 기름값이 하향 안정화에 접어듬에 따라 인하폭이 줄어들 것으로 점쳐진다. 

김 회장은 "주유소 기름값은 거래조건, 물량, 부지 등 여러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러한 것들이 싹 무시된 채 도매가격이 공개된다면 시장 혼란만 야기할 것"이라고 직격했다.

그는 자칫 잘못하다간 소와 외양간 모두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정유사가 경쟁사의 가격구조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무리한 가격경쟁을 시도하지 않을 수 있다"면서 "그렇게 되면 장기적으로는 가격이 상향 동조화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알뜰주유소와의 형평성 문제도 꼬집었다. 이번 개정안에는 알뜰주유소의 도매가 공개는 빠져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명확한 이유를 밝히고 있지 않다.

김 회장은 "설령 이번 개정안이 추진된다 하더라도 왜 알뜰주유소는 빠져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공개할 거면 알뜰도 어떻게 입찰하는지 다 까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알뜰주유소로 '일물이가(一物二價)' 구조 형성

▲김 회장은 일반주유소와 알뜰주유소가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시장이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일반주유소와 알뜰주유소가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시장이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도매가 공개여부로 시끄러운 것 역시 알뜰주유소로 인한 갈등에서 출발했다고 보고 있다. 정부의 무리한 반시장정책으로 인해 업계 한쪽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

그는 "알뜰 정책으로 시작된 것이 도매가 공개안으로까지 이어졌다"면서 "알뜰 논란도 이와 맥락이 같다. 위치나 부대시설, 서비스 등에 따라 주유소별 휘발유값은 다를 수밖에 없는데, 정부는 싸게 판매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러니 가운데서 사업하는 사람들만 죽어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현재 석유공사, 도로공사, 농협은 대형 석유대리점이 돼 정유사로부터 싼 가격에 대량구매를 하고, 이를 알뜰주유소에 공급하고 있다"면서 "이로 인해 현재 국내 석유시장은 '일물이가(一物二價)'가 구조화됐다"고 덧붙였다. 현 시스템에서는 일반 주유소가 알뜰 판매가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알뜰주유소 시장이 계속해서 커지고 있음이 이를 방증한다. 현재 주유소업계는 경영난을 이유로 계속해서 축소되고 있지만, 알뜰주유소 숫자만큼은 증가세에 있다. 협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일반주유소는 2000여개가 감소한 반면 알뜰주유소는 1300여개가 늘었다. 시장점유율은 12%까지 올랐고, 판매물량으로 보면 18%까지 치솟는다. 

업계에서 알뜰주유소 사업자로 선정되면 '로또 맞았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알뜰주유소는 장사가 된다.

김 회장은 알뜰주유소를 지금 당장은 줄일 수 없는 만큼 현실적인 방안으로 '상생'을 강조했다. 문제점을 개선해서 보다 공정한 시장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정부의 편중지원을 줄여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현재 석유공사는 자영 알뜰주유소 한 곳당 연평균 3000만원가량의 인센티브를 지원하고 있다. 일반주유소는 이러한 지원이 없는데 어찌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공기업이 주는 시설개선 지원금과 판매 인센티브를 없애고, 차라리 그 재원으로 업계 발전기금이나 주유소 혁신 지원기금을 조성해 에너지전환에 대비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김 회장은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줄이고 대신 업계와 더 많이 소통할 것을 주문했다. 실제 사업을 영위하는 것은 자신들인데 업계 목소리가 너무나도 소외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정훈 석유유통협회장은 "이번 도매가 공개안도 마찬가지다. 정부에게 공청회를 하자고 줄기차게 건의했지만 듣지 않은 채 밀어 부치고만 있다. 그러니 정책이 나와도 엉터리고 부작용이 많을 수밖에 없다. 정부와 업계가 각자 뛰지 말고 하나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훈 기자 hooni@e2news.com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