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요금을 올려달라고 하기 전에 뼈를 깎는 구조조정 노력을 해달라고 촉구했으나 아직 응답이 없어 개탄스럽다. 도덕적 해이의 늪에 빠진 채 요금 안 올려주면, 다 같이 죽는다는 식으로 국민을 겁박하는 여론몰이만 하고 있을 때인가” 지난 20일 열린 전기·가스요금 관련 민·당·정 간담회에서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한전과 가스공사에 자구노력이 부족하다고 질타했다.

정부와 여당은 이날 회의에서 전기·가스 등 에너지요금 인상의 불가피성에 대해선 모두가 동의했지만 구체적인 인상 시기 및 폭에 대해선 의견을 모으지 못한 채 결정을 뒤로 미뤘다. 책임은 한전과 가스공사에 떠넘겼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선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4월과 7월 전기와 가스요금을 인상키로 한 정부의 당초 결정을 뒤집은 셈이다.

한전과 가스공사는 이러한 정부·여당의 압박에 몸을 바짝 낮췄다. 정승일 한전 사장은 즉각 “뼈를 깎는 심정으로 인건비 감축, 조직·인력 혁신, 에너지 취약계층 지원 및 국민편익 제고 방안이 포함된 대책을 조속한 시일 내 마련하겠다”고 입장문을 냈다. 심지어 국민부담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10곳의 전력그룹사가 20조원 이상의 재정건전화계획을 마련하겠다는 약속도 내놨다.

그럼에도 한전과 가스공사에 대한 압박의 강도는 점점 세지고 있다. 감사원과 산업통상자원부가 한전공대 설립과 지원을 둘러싸고 한전 감사에 착수했을 정도다. 국민의힘은 28일에는 정승일 한전 사장에게 물러나라고 더욱 옥죄었다. “국민에게 전기요금을 올려달라고 하기 전에 염치 있는 수준의 강도 높은 자구노력을 여러 차례 주문했음에도 내놓은게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 와중에 한전이 근로자의 날을 맞아 직원들에 지급했던 10만원짜리 온누리상품권을 다시 회수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노동절마다 매년 지급하던 상품권이었으나 때를 잘못 만났다. 정치권은 수십조원의 적자 상황에서 상품권을 돌린다며 “한가하게 코끼리 비스킷 놀이나 하고 있다”며 더욱 강하게 몰아붙였다.

에너지요금 인상은 이전 정부의 책임이라는 발언도 여전하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한전이 26조원의 추가 손실을 입었다는 것이다. 책임소재를 따질 때는 지났다는 지적이 많아도 자꾸 뒤를 흘깃거린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된 만큼 이제 해법을 내놔야 할 때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에너지요금 인상요인 발생에 대해 모든 전문가들은 한결 같이 글로벌 에너지가격 상승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특히 러-우 전쟁으로 촉발된 천연가스가격 폭등이 주범 역할을 했다는 데에도 동의한다. 물론 에너지공기업의 책임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 시점에선 원인이 분명한 만큼 ‘에너지가격의 원가주의’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무엇보다 정부는 한전, 가스공사의 설립주체이자 최대주주다. 예산, 조직, 사업, 인사 등 모든 분야에서 직접적인 통제와 조정이 가능하다. 심지어 경영평가를 통해 정부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얼마든지 공기업을 끌고갈 수 있다.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직접 단행할 수 있는 위치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에너지요금체계의 구조적인 문제에는 눈을 감고, 자꾸 뼈만 깎으라는 것은 정치적 부담을 덜기 위한 책임 떠넘기기에 불과하다. 공기업 닦달해서 해결될 선은 진즉에 넘었다. 정부와 여당은 뼈를 깎는 정형외과 의사가 아니다. 직접 나서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 국정운영 책임자다. 

채덕종 기자 yesman@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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