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영 전기위원회 위원장 (한국에너지법학회 회장)
"산업화시대 성공 모델 다원화시대서 유효하지 않아"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 공무원 소극행정 국가 망해"
"다소비산업 지방이전하고 지역별요금제 도입해야"

▲이종영 전기위원회 위원장이 4일 서울 광화문 인근 연구실에서 이투뉴스와 인터뷰를 한 뒤 야외공원에서 사진촬영을 했다.
▲이종영 전기위원회 위원장이 이달 4일 서울 광화문 연구실에서 이투뉴스와 인터뷰를 한 뒤 야외공원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이투뉴스] “권한이 강할수록 상응한 책임을 져야 한다. 책임은 권한에 비례한다. 전기요금은 정치 분야가 경제 분야까지 모두 책임져야 하는 문제다. 그런데 실제 그렇게 할 수 있나. 책임질 수 없으면서 권한을 행사하려는 건 선진화 된 국가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철학이다.”

이종영 전기위원회 위원장<67‧사진>은 에너지요금 정상화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정치권의 행태를 놓고 “모든 걸 안고 가면 권한은 강해지겠지만, 그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며 독일 철학자 한스 요나스(1903~1993)의 책 <책임의 원리>를 소환했다.

이달 4일 서울 광화문 인근 연구실에서 가진 <이투뉴스>와의 인터뷰에서다. '전기요금 조정을 둘러싼 최근 갑론을박을 어떻게 보고 있느냐'는 질문에 “(논의의)출발점은 그 지점이 되어야 한다”고 단언했다.

이 위원장은 “전기료는 정치적으로 국가가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 시장이 결정할 사안”이라며 “기본 철학부재다. 어찌 보면 권력의 오만”이라고 직격했다.   

- 여당이 한전 적자 책임을 지라며 한전 사장 사퇴를 압박하고 있다. (인터뷰 이후 실제 정승일 사장이 사의를 표했다)

“우리나라는 시장경제 질서다. 가능한 한 정치나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시장 나름의 작동원리가 있는데 정치가 개입하면 시장을 붕괴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헌법 질서에도 반한다. 전기료뿐만 아니라 은행금리까지 높여라 낮춰라 개입하는데, 정치 권한이 크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쁘게 말하면 아직 후진국이란 얘기이자 성장할 기반이 안 돼 있는 국가란 뜻이다. 대통령도 자유를 부르짖는데, 자유의 진정한 의미는 뭔가. 사회는 사회의 자유, 경제는 경제의 자유, 교육은 교육의 자유를 주는 일이다. 말로만 자유가 실현되지 않는다.”

- 정치개입의 적정선은

“가격이 시장에서 결정되려면 경쟁체제가 돼야 하는데 우린 판매사업자가 독점이다. 어느 정도까지 개입할지는 전기사업법에 명시하고 있다. 개입할 때 원리는 적정한 원가와 적정이윤을 보장하라는 거다. 적정하다는 건 원가를 과도하게 산정하지 못하도록 감시 판단 조정하는 것을 말한다. 전기료를 다른 경제 분야, 물가까지 생각해서 결정하게 하면 이 세상에 관여하지 않을 영역이 하나도 없게 된다. 전기료는 전기료 작동원리대로, 라면값은 라면대로 가격이 결정되어야 한다. 그게 시장이다.”

- 전력시장은 여전히 폐쇄적이며, 시장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수준이다.

“판매사가 다수가 되고 경쟁을 통해 요금도 결정되는 게 이상적 체계다. 하지만 전력산업구조개편 이후 20년이 지났는데 미완으로 끝났다. 판매도 경쟁체제로 복수화 돼야 한다. 많이 늦었다. 과거 산업화는 독점 단일체제로 성공했다. 하지만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어느 정도 중진국이 된 나라가 망하는 길은 비슷하다. 과거에 작게 성공한 것으로 발전된 세대에 똑같이 적용하려다가 결국 모든 게 실패로 끝난다. 산업화에 성공한 전력산업 모델이 과연 다원화된 사회에 적합한가. 다른 국가도 다 경쟁으로 하고 있고, 그런 국가가 훨씬 산업 경쟁력과 국가 전체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 정치권은 여전히 탈원전이냐, 아니냐 탈원전 탓에 요금이 올랐다 아니다를 놓고 티격태격하고 있다.

“에너지믹스는 이상적인 하나의 모델이 존재하는 건 아니고 각국 에너지자원 특성이라든지 그 나라의 기반에 따라 달라진다. 다른 나라에서 적정하다고 그걸 우리도 적합하다 할 수 없다. 우린 출발이 에너지자원 부족국이자 에너지 식민지다. 어떻게든 화석연료로부터 탈피할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재생에너지를 늘리든지, 원자력으로 보완할 수도 있다. 재생에너지는 당연히 지속 확대해야 한다. 원자력은 사고 시 위험이 지대한데, 원자력 기술은 안정성을 계속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 정부가 전기위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데

“전기위가 하는 업무가 기존 산업부 업무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대부분의 산업부 업무는 정책적이고, 전기위는 인허가나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분야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에너지 분야에 대한 독립규제위원회를 갖고 있다. 에너지란 특성을 인정하고, 시장의 영역이라 정치라든지 다른 행정과 독립시키려는 조치다. 우리 전기위 인허가가 정책과 완전히 분리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부가 방향을 설정하고 가겠다고 하면 인허가 문제는 사업자나 개인의 권리와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야다. 허가를 어떤 형태로 해줄지는 상당히 재량의 분야이고 정량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분야가 많다. 정성적인 판단은 정부 정책 방향에 적합하게 해야 한다. 정책과 인허가가 서로 다르면 정책효과가 안 나타난다. 현재는 위원회에 전적으로 맡겨져 있다. 전기위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경쟁질서 감독 등인데 지금은 판매사업자가 한 곳뿐이다. 법률상으론 그 판매사업자가 전기위로부터 감독을 받지만, 실질적으론 정책당국이 감독하고, 전력시장은 전력거래소에서 통제한다. 경쟁체제로 간 해외의 경우 독립규제위원회를 두고 있다.”

- 전기위의 위상도 시장경쟁 정도가 결정하게 된다는 뜻인가

“맞물려 있다. 정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발전은 이미 경쟁체제다. 수많은 사업자가 들어와 있다. 판매나 송‧배전도 복수화 돼야 한다. 그렇게 될 때 감독이나 시장 질서 감시가 필요해진다. 지금은 한전이 독점하고, 정부로부터 직접 관리와 감독을 받는다. 전기위의 독립성 자체는 보장되고 있다. 전기요금의 경우 규정상으론 한전이 원가를 따져 이사회에서 결정해 산업부를 올리면, 장관이 기재부와 협의해 인가하는 형태다. 하지만 실질적으론 물가 당국이나 정치권이 결정해 내려주면서 해당 분야 특성이 무시되고 있다.”

- 전력계통 현안도 터진 둑처럼 전기위로 넘어가고 있다. 지역별요금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판매사업자인 한전이 송배전사업자를 겸하다보니 전력구매비에 송배전망비용이 포함돼 요금이 되는데, 전기료 자체가 적정하게 책정이 안되다보니 발전부터 송배전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단순한 물가의 문제가 아니다. 송배전망을 건설하지 않고선 재생에너지를 아무리 늘려도 소용이 없다. 하지만 밀양사태 이후 송전망 건설은 발전소 건설보다 어려워졌고, 아름다운 금수강산에 송전탑이 보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조금만 생각의 폭을 넓히면 국토 균형발전의 문제다. 송전망을 계속 건설한다는 건 수도권에 집중적으로 필요한 에너지를 조달하기 위해 지방을 계속 희생시키겠다는 거다. 이런 시스템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이미 석탄화력과 원전이 계속 지어지는 동해안은 발전소가 준공되어도 감발운전을 하고 있다. 서남해에서는 재생에너지도 송전 제약을 할 처지다. 전기를 많이 쓰는 산업체가 그쪽으로 가도록 일부를 강제하든지 강력한 유인책을 써야 한다. 지역별 요금제로 가야하고, 고려할 때가 됐다.”

- 우리 에너지법을 발전시켜야 우리 시대가 직면한 문제를 풀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

“한나라의 경쟁력은 무엇으로 평가하나. 군사력, 인구수, 국토 면적, 과학기술 등 다양한 관점이 있을 거다. 나는 그 나라가 가진 제도와 법률의 수준이 선진국의 척도라고 본다. 국토가 아무리 넓다고 한들, 개인이 잠재력이 아무리 많다고 한들 제도가 뒷받침 못하면 소용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수하다고 말하는데, 나는 그렇게 믿지 않는다. 국가는 그 사람이 가진 내적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보장해주고, 정부는 가능한 한 규제를 줄여줘야 국가의 경쟁력이 된다. 결국 우리나라 에너지 분야의 경쟁력과 국민의 소비 적정성은 우리 법제가 얼마나 잘 돼 있는지, 선진화돼 있는지가 결정하게 될 거다. 그런데 법이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으로 전제로 한다. 에너지의 안정성도 중요하지만, 시대가 변하면 법도 변해야 한다. 사업자들이 기존의 불합리한 규제에 묶여 사업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면 결국 그 나라의 에너지경쟁력이 낙후될 수밖에 없다. 기존에 아무리 잘 운영되는 법제라도 과연 미래지향적인가 끊임없이 성찰하고 논의하고 시장의 현실을 즉각 반영해야 한다.

국회와 정부가 이 부분에 상당히 신경을 써야 하는데, 유감스럽게 우리는 그리 에너지법 분야가 발전된 국가가 아니다. 전기분야만 봐도 법률적 근거가 없는 고시나 행정청의 지시를 모두 따르고 있다. 국가가 독점하고 사업영역을 보장하다 보면 민간의 사업적 역량은 감소한다. 열심히 해봤자 정부의 법률적 근거 없는 한마디에 무너지기도 한다. 법령대로 했는지만 따지는 감사원 감독도 문제다. 특정 분야에 대해 공무원들이 열심히 하면 나중에 왜 법령을 위반했냐고 추궁한다. 공무원이 소극 행정을 많이 하는 국가는 발전하지 않고 망한다. 어떤 시대든 국가든 규정은 완벽하지 않다. 시장이라든지 산업 사회 기술에 따라 변화해야 한다. 몇십 년 전 규정을 갖고 현재대로 하려고 하고, 그대로 하지 않았다고 감사원 감사를 받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에너지 분야는 산업부 공무원 못지않게 감사공무원 교육이 필요하다.”

- 에너지법학회를 창립해 초대 회장을 맡고 있다. 

“에너지법은 법학의 여러 분야 중 하나이고, 에너지도 기술, 산업, 환경 등 다양한 분야가 있는데 분야마다 보는 시각이 모두 다르다.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기존의 에너지공학과 경제, 사회, 환경 분야의 업적을 충분히 존중하지만, 지금은 서로 소통이 필요한 때다. 각자의 시각에서 종합적으로 갈 곳을 제시해야지 자기 분야대로만 얘기하면 정책 결정을 하기 어렵다. 융합하고 결합하는 방향으로 학계도 나아가야 한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이종영(李鍾永) HE is…] 1956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혜광고, 중앙대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독일 뷔르츠부르크대에서 행정법 박사학위를 받았다. 모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2021년까지 강의했다. 환경법학회장,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자문위원, 국회 입법 지원 위원, 산업부 에너지정책전문위원회 위원장 및 규제개혁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작년 2월 한국에너지법학회를 창립해 초대 회장을 맡고 있다. 같은해 11월 제8대 전기위원장으로 취임했다. 슬하에 연극영화를 전공하고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종사하는 큰아들과 독일에서 줄기세포 연구로 석사과정을 마친 둘째 딸을 두고 있다. 2021년 에너지법 체계 정립에 관한 <에너지법학>을 저술했다. 주장하기보다 경청하는 리더다.

▲이종영 전기위원회 위원장 (한국에너지법학회장)
▲이종영 전기위원회 위원장 (한국에너지법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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