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EC 2009 참관기] 개도국 시장경쟁에 가세 … 한국 정부만 '팔짱'

 

 

"이렇게 빠른 속도로 풍력산업이 성장할 줄은 몰랐다."

지난 24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제8차 세계풍력에너지 컨퍼런스 및 전시회(WWEC2009)' 주제발표장. 다소 상기된 얼굴로 개도국 풍력발전 개발현황을 경청하던 국내 한 풍력기업의 간부는 프리젠테이션 화면에 눈을 떼지 못한 채 이렇게 말했다.

그는 "유럽에서 시작된 풍력에너지 붐이 아시아나 개발도상국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며 "이런 기회를 잡지 못하면 한국은 크게 후회할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 풍력에너지 시장의 이목이 지난 23일부터 사흘간 '바람의 섬' 제주로 쏠렸다. 한국풍력에너지학회(KWEA)와 세계풍력에너지협회(WWEA)가 주관하고 <이투뉴스>가 미디어 후원사로 참여한 'WWEC 2009' 행사는 풍력산업의 무한한 가능성을 유감없이 드러내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국내외 전문가 500여명이 참석한 이번 행사는 한국이 처음으로 유치한 메머드급 컨퍼런스라는 점에서 중량감을 더했다. 이 자리에서 발표된 120여편의 연구논문은 최신 정보에 목마른 산업계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손충렬 한국풍력에너지 학회장은 "성공적인 행사개최로 한국 풍력산업의 국제적 위상이 한단계 높아졌다"며 "특히 제3세계가 한국에 거는 기대, 한국 시장을 거점으로 세계 진출을 꿈꾸는 선진국의 야심을 체감할 수 있는 뜻깊은 자리였다"고 평가했다.

 

손충렬 한국풍력에너지학회장(사진 우측)이 해외 초청 인사들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 중흥기 풍력산업 '급회전' = 지금까지의 풍력산업은 기술력을 보유한 소수기업에게만 기회가 주어지는 독과점 시장이었다. 덴마크 베스타즈, 스페인 가메사, 미국 GE, 독일 에너콘 등이 시장의 70% 이상을 꿰차는 식이었다.

그러나 최근 대체에너지 시장이 급팽창하면서 경제성 확보가 용이한 풍력산업에 황금시장이 창출되기 시작했고, 후발 개도국까지 앞다퉈 이 시장에 뛰어드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물론 이 시장만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중공업, 조선강국의 잇점을 살려 시장에 진출한 국내 대기업도 이제 수년간의 R&D 성과물을 내놓는 수준이다. 그러는 사이 선도기업들은 육상풍력의 한계를 극복할 해상풍력과 터빈 대형화로 관심을 돌려 후발주자들을 따돌리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국내기업이 2MW급 상용화를 앞두고 있을 때 이미 세 배나 몸집이 큰 6MW급 초대형 모델을 양산한 독일기업이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1981년 50kW급이 보급되기 시작한 이후 30여년만에 100배 이상 대형화가 진행됐다는 얘기다.

이같은 대형화 추세에 발맞춰 국내 기업 가운데 두산중공업이 3MW급 상용화 체제를, 효성중공업이 5MW급 국산화 개발연구에 돌입한 상태다.

이번 컨퍼런스에서 국내 최대 규모인 3MW급 모델을 선보인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 'WinDS3000(모델명)'은 육상과 해상이 동시에 가능한 기준 모델로 타워 높이만 78m, 회전반경은 90m에 달한다"면서 "당분간은 1.5~2.5MW급이 주축을 이루겠지만 5~10MW급으로 세대교체가 이뤄질 날도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 마련된 전시장 전경.

◆개도국ㆍ후진국도 경쟁 참여 = 풍력산업이 만들어낸 '돌풍'은 온실가스 대응을 위해 재생에너지 확대보급에 혈안이 된 선진국은 물론 아직 전력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후진국에서도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일례로 에디오피아에선 오는 2011년까지 120MW 규모의 풍력단지를 개발하는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또 파키스탄 다웃파워사는 2030년까지 자국내 전력수요의 5%를 풍력에너지로 충당한다는 계획 아래 현재 짐빌, 가로, 케티만더 일대에 대규모 풍력발전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있다.

파키스탄은 2MW급 발전기로 출발해 2010년까지 300MW, 2015년 3GW 등으로 풍력 보급량을 늘려나가는 한편 중국 골드윈드사와 LOI를 체결해 사막지역에 설치 가능한 50MW 규모 독립형 발전시스템을 확대시켜 나갈 계획이다.

다웃파워사 관계자는 "500W급 소형 윈드터빈을 자체 생산한 것을 시작으로 워터펌핑 터빈 기술까지 완벽하게 확보한 상태"라면서 "향후 풍력 분야의 파이오니아 기업으로 거듭나는게 우리기업의 궁극적 목표"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풍력 선진국들은 앞선 기술력을 무기로 '여세몰이'가 한창이다.

덴마크는 2025년까지 전체 전력의 50%를 풍력으로 충당한다는 야심찬 계획 아래 초대형 프로젝트를 잇따라 추진하고 있다. 현재 덴마크에 건설된 풍력발전기는 모두 5267기로(3.13GW), 이들 발전단지가 전체 전력 수요의 20%를 공급하고 있다.

덴마크는 세계 최대 해상풍력 단지인 160MW급 호른스레브 단지 인근에 올해말 완공을 목표로 215MW 규모의 풍력단지를 추가로 짓고 있고, 로샌드 연안과 쥬어스란드 지역에도 각각 215MW, 400MW 규모의 대단위 발전 단지를 조성할 예정이다.

WWEA 관계자는 "전 세계가 육상풍력의 한계를 대형 해상풍력단지로 극복하려는 경향이 뚜렷하다"면서 "유럽에서만 향후 10년간 40GW 규모의 해상풍력이 설치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캐피탈세이프티그룹이 전시한 터빈 정비 안전장비.


◆ 굼뜬 정부 '풍력마저 놓칠라' = 세계 풍력산업의 기민한 움직임을 한 눈에 가늠해 볼 수 있는 이번 컨퍼런스를 둘러본 국내 풍력업계는 우리 정부의 방관자적 태도에 한층 갑갑증을 느끼는 눈치였다.

정부는 풍력을 태양광, 수소.연료전지와 함께 주력 신재생에너지 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지만 몇몇 대기업 중심의 연구개발 지원과 국산화 실증단지 조성계획 외에는 이렇다 할 '히든카드'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풍력산업 주관부처인 지경부는 민간학회가 우여곡절 끝에 유치한 국제 규모의 이번 컨퍼런스를 지원하기는 커녕 실무자조차 배치하지 않는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제주특별자치도와 비교된다.

손충렬 풍력에너지학회장은 "우리 풍력산업이 어떻게 해야 클 수 있는지, 수출은 어떻게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이 없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는 투자환경을 조성해주고 산업이 숨통을 틀 수 있도록 유도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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