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위주 R&D 지원… 소재분야 해외종속 '나몰라라'

풍력터빈의 핵심부품 가운데 하나인 블레이드(Blades.날개). 전체 구성품의 22%를 차지하는 이 부품은 그간 자체 생산기술이 없어 전량 수입에 의존해 왔다. 그러다 지난해 들어서야 국내 K사가 전용 생산공장을 설립해 국산 시제품을 생산했다. 이 제품은 국산터빈 개발사인 U사로 납품돼 전체 국산화율을 끌어올렸다.

때마침 국산터빈 개발에 막대한 R&D 자금을 쏟아온 정부는 "풍력터빈 국산화율이 97%를 육박한다"며 이를 주요 성공사례로 소개하기도 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새롭게 시작된 국산화 R&D도 덩달아 탄력을 받는 듯 했다.

그러나 화려한 국산화율의 이면엔 소재ㆍ부품의 해외 종속이라는 복병이 도사리고 있었다. 당장 블레이드만 보더라도 성형ㆍ제조는 국내 기술로 가능했지만 핵심소재는 여전히 전량 수입품으로 메워지고 있다. 여기에 메인베어링, 피치(Pitch), 요시스템 (Yaw System) 등도 국산품 개발이 전무한 상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풍력터빈의 실제 국산화율은 50%대를 밑돈다는 주장도 있다.

태양광 국산화율 역시 산업화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당국의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주력 태양전지 품목인 결정질 전지의 경우 대내외적으론 원소재인 폴리실리콘부터 시공ㆍ시스템까지 완전 국산화가 이뤄진 것으로 비쳐진다.

하지만 맨 앞 공정에 해당하는 소재ㆍ부품 분야로 거슬러오르면 어김없이 이와는 정반대의 현실과 맞딱뜨린다. 해외서 원소재 수급난이 발생할 때마다 가뜩이나 마진이 박한 국내 후방산업만 꼼짝없이 직격탄을 맞기 일쑤다.

더욱이 장비나 부품의 국산화율이 '0'에 가깝다보니 국내서 생산한다는 이유로 국산품 운운하는 것 자체가 머쓱해진다고 업계는 실토한다. '보급보다 중요한 것이 산업화'라면서 그토록 국산화 R&D에 목매 온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도대체 어디부터 단추가 잘못 꿰어진 것일까.

시스템 위주의 기술개발과 국산화 포퓰리즘이 역으로 소재ㆍ부품분야의 해외 종속을 심화시키고 있다. 외양은 국산품이지만 핵심소재나 부품의 외산 비중은 되레 늘어나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업계는 첨단소재 산업의 장기투자를 소홀히 하면 원소재 종속국으로 전락하는 건 일순간이라고 지적한다.

19일 지식경제부와 국내 소재ㆍ부품업계에 따르면 2007년 기준 세계 소재산업 규모는 전체 제조의 16.7%에 해당하는 165조2000억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화학소재가 86조6000억원으로 가장 많고 뒤이어 금속소재 70조5000억원, 세라믹소재 8조2000억원 순으로 집계되고 있다.

반면 국내 산업은 철강ㆍ석유화학 등 범용소재는 세계 5위 수준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으나 첨단소재 분야는 선진국 대비 60% 수준에 머물러 무역적자를 부추기는 주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산업은 시스템 개발에 R&D가 집중되다보니 기초가 돼야 할 소재ㆍ부품분야 원천기술 개발이 등한시 돼 온 것이 사실이다.

풍력 소재 개발사 한 관계자는 "정부가 소재산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시작할 때부터 소재ㆍ부품이 동시에 육성되지 않으면 국산화 비율도 속빈 강정에 불과하다"며 "당장 시급한 것은 면밀히 공급망(Supply Chain)부터 분석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기초가 부족한 현실에서 믿을 건 정부 정책밖에 없는데, 정작 정부는 이를 기업들의 몫으로 보고 나몰라라 하는 것 같다"며 "심지어 열악한 환경에서 소재 국산화에 성공한 기업들도 내수시장을 만들지 못해 의욕을 잃는 경우가 잦다"고 말했다.

그는 "큰 그림을 그리는 것도 좋지만 소재 공급망을 밑바닥까지 분석해 국산화를 위해 노력하는 기업이 있고, 이런 노력이 국내 산업에 도움이 된다면 이 제품을 쓰는 후방 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등의 방식으로 내수산업 육성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맞춤형, 현장형 정부 지원이 아쉽다는 지적도 있다. 태양광 원소재 생산부품을 개발하고 있는 N사 관계자는 "시장이 크지 않다며 대기업이 관심을 보이지 않을 때 우리 같은 벤처기업은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왔다"며 "소재기업의 애로가 무엇이고 어떤 부분에서 목마른지 직접 듣고 그 수준에 맞는 맞춤형 연구개발을 지원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진 지경부 부품소재총괄과장은 "그간의 부품소재 정책이 부품 위주의 단기적인 기술개발에 편중돼 소재분야의 지원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 "올 하반기까지 소재-부품-수요기업간 연계를 강화해 기술개발부터 사업화까지 전주기적 지원시스템을 구축하는 내용의 발전전략을 수립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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