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미제 크레용을 썼던 기억이 난다. 잘 부러지고 찌꺼기가 생겼던 국산 것보다 미제 크레용은 단단하고 색상도 좋았다. 어린 생각에 미국 제품은 무엇이든 좋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미국을 동경했던 기억도 있다.(물론 지금은 그 반대지만...)

이렇듯 한 제품은 단순히 물질 차원을 넘어 정신을 지배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이 중국에 코카콜라를 팔기 위해 초기엔 한동안 무료로 유통시킨 사례는 유명하다. 부가가치가 있는 제품을 무료로 유통시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중국인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서다. 한 번 코카콜라에 입맛을 들이면 돈을 주고라도 살 것이라는 마케팅 전략이다. 또 콜라병을 통해 미국 문화를 심는 것이다. 콜라 광고를 보고, 콜라 문화를 접한 중국인은 자신도 모르게 미국 문화에 젖는다.
 
제3차 한미FTA협상이 9월경에 열린다고 한다. 정부는 이 협상이 국내 시장 확대와 세계화에 필요한 교두보라고 한다. 또 일자리를 만들고 수출길을 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일부 맞는 말도 있다.
하지만 물질(제품)의 수출입만을 생각할 것이 아닌 듯하다. 수치로 나타낼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는가를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과거 이야기를 하자. 조선 말기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은 외세 특히 일본 물품과 문화의 국내 유입을 철저히 막으려했다. 그들의 것도 사지 말고 우리 것도 팔지 않겠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그래서 그는 쇄국정치의 표본 인물로 꼽힌다. 하지만 여러가지 역사서를 살펴보면 흥선대원군이 무작정 외세의 유입을 막았던 것은 아닌 듯하다. 외세의 유입이 대세라면 받아들이되 우리가 먼저 준비하고 갖출 것은 갖춘 다음 문호를 개방해도 늦지 않는다는 속내가 있었다. 이런 뜻이 강해지자 일본은 조선의 국모를 없애고 조선을 통째로 집어삼키고 만다.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이 조선말기와 비슷하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문호를 개방하라는 외부 압력과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고민하는 우리나라의 모습이 그때와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한미FTA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우리는 단순히 무역자유에만 신경을 써서는 안된다. 그 여파를 생각하는 장기적인 혜안(慧眼)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우리가 조선말기를 비극적인 역사로 기억하듯 우리 후손들도 지금의 우리를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