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찬 환경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

강희찬
환경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
[이투뉴스 / 강희찬 칼럼] 2012년 7월 16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기후변화 비공식 각료회의(피터스버그회의)에서 독일 메르켈 총리가 발표한 기조연설에는 “향후 전세계적인 에너지 정책은 안정성, 안전성 그리고 환경친화성을 모두 만족해야 하고, 각 조건들이 같은 비중에서 고려되어야한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일견으로는 너무 당연한 조건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사실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위의 3가지 조건을 지금까지 동일한 비중으로  다루지 못해왔다. 메르켈 총리가 위와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엄청난 정치적 결단과 용기가 담겨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한국에서 상기 3가지 조건은 지금까지 전혀 조화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에, 하나가 충족되면 다른 하나 혹은 둘은 희생될 수밖에 없는 상충하는 조건으로 판단돼 왔다. 그럼 이제 이 세 가지 조건들이 어떤 관련성과 충돌 요건들이 있는지를 알아보고, 이를 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국가가 성장(발전)하면서, 우선적으로 충족돼야 하는 부분은 에너지원에 대한 접근성 그리고 안정성 조건이다.
접근성과 안정성 측면에서 중요한 것은 첫째, 국민이면 누구나 지불가능한 수준에서 에너지원에 접근할 수 있으며 둘째, 에너지원의 공급이 꾸준하고 변동이 없어야 하며 셋째, 국내외의 정치·외교적 영향에 따라 공급폭의 변화가 크지 말아야 한다. 이는 에너지 복지 측면에서도 중요한 요건으로, 값이 싼 에너지를 언제·어디서든지 구입하여 사용할 수 있고, 그 품질도 일정해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해외로부터 수입되는 에너지보다는 자국에서 생산가능한 에너지 비중이 높아 보다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 가능하며, 해외에서 수입하는 경우라면 수입처가 다양하고 수출하는 국가의 정치·경제적 안정성이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는 필요조건이 있다. 이런 조건을 고려할 때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매우 높은 한국의 경우, 에너지의 안정성을 확보하는데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크지 않다는 것을 유추해 낼 수 있다. 한국은 해외에서 수입되는 에너지 비중이 높은 만큼, 낮게 에너지 가격을 유지해 누구에게나 공급하는 것이 어렵다. 또한 석유의 경우 중동 지역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데 반해 이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는 상대적으로 높다는 약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그 동안의 많은 노력을 통해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이라는 큰 숙제를 매우 효과적으로 잘 해결해 왔다. 중앙집중형 전력 공급 시스템을 도입하고 낮은 가격으로 전력을 공급했으며, 수송용 연료 공급망도 매우 잘 발달돼 있고, 해외 에너지 수입처의 다변화를 위해 무단히 노력해 온 것이 사실이다. 또한 원자력 발전 비중을 지속적으로 확대시켜 낮은 에너지 가격에 일조했으며, 안정적인 전력 공급, 상대적으로 저렴한 원료(우라늄) 공급의 가능성도 일궈냈다.

그럼 두 번째 조건인 안전성과 세 번째 조건인 환경친화성에 관해 알아보자. 국가가 지속적 성장을 이뤄내고 안정적 에너지 공급도 가능해지면서, 국민의 삶의 질 특히 안전과 환경질과 관련된 부분에서의 요구가 증가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과학의 발달과 함께 기존 에너지원의 안전성과 환경성 부분은 확보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서 보듯이 과학의 발전으로는 에너지 공급의 안전성이 얼마나 쉽게 훼손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화석에너지 사용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기후변화 영향이라는 거대한 결과를 가져오고, 질소산화물, 황산화물 등은 우리의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익히 알고 있다. 비록 과학이 발달하고 이에 따라 온실가스 등 대기오염물질의 발생량을 절감시킨다 하더라도, 에너지 사용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에서 과학적 해결책에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이러한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독일 메르켈 총리가 제안한 것은 우리의 인식을 양적인 측면에서 질적인 측면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일인당 GDP와 같은 양적 성장에 집중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해결의 실마리는 찾을 수 없다.  질적인 성장을 추구할 때 우리는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에너지 가격 상승도 받아들일 수 있고, 다소 불편하지만 에너지 사용을 자제하고 더 나아가 내가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해서 사용할 수도 있다. 에너지 안전성 부분에서도, 과학적 진보 보다는 보다 안전한 에너지원을 찾고자 하는 국민적 합의 도출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 할 수 있다. 환경친화성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한국도 질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단계에서 독일 메르켈 총리가 연설 마지막에 던진 질문을 끝으로 글을 맺고자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열심히 경제성장을 추구하고 있는 최종 목적은 무엇일까요? 바로 국민들을 더 행복하게 하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함이 아닐까요? 단순히 일인당 GDP가 올라간다고 국민들이 더 높은 삶의 질을 영유할 수 있을까요? 질적 성장 혹은 지속가능한 성장은 바로 우리가 얼마나 국민들에게 좋은 것을 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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