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사기극 '마티네 프로젝트' 비화 추적
대기업·공기업도 속아…코스닥 벤처는 수십억원 떼일 판
외교당국·정부인사 개입 정황 파문 확산

[이투뉴스] 신기루 같은 가짜 해외 태양광 사업에 대한민국이 농락 당했다. 대기업은 물론 공기업까지 헛물을 켰고, 외교당국과 정부투자기관까지 사기극에 연루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일부 중소·벤처기업은 투자비 명목으로 건넨 수십억원을 떼일 판이다.

지난 3년간 국내 태양광 산업을 조롱거리로 만들고 아직 망령처럼 살아 움직이는 유령 회사 마티네 에너지社(Matinee Energy)와 그들이 만든 '마티네 프로젝트' 이야기다. <이투뉴스>가 이 희대의 사기극을 둘러싼 의혹과 사건의 전말을 관계자들의 증언으로 재구성하고 '묻지마' 해외 태양광 프로젝트의 문제점을 심층 취재했다.  

ⓒ matinee energy
◆ 악명 '마티네 프로젝트'의 탄생 = 2008년 11월,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와 인수위원회는 1960년대 달 탐사 계획인 '아폴로 프로젝트'의 이름을 본뜬 '뉴 아폴로 프로젝트'를 차기 정부의 '그린뉴딜정책'으로 전격 발표한다. 그린에너지 산업에 향후 10년간 1500억 달러를 투자, 500만개의 녹색일자리를 만들고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미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키운다는 게 이 정책의 핵심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네바다 주에 본사를 둔 업력 3년의 신생기업 마티네에너지(이하 '마티네')가 '마티네 프로젝트'를 구체적 사업계획으로 조각한 것은 그린뉴딜정책 발표 이듬해인 2009년 하반기로 추정된다. 미국 재생에너지 산업에 대한 기대가 한껏 부풀어 있던 시기이자 국내·외서 태양광 산업의 공급과잉 문제가 불거질 즈음이다.

'마티네 프로젝트'는 절묘한 타이밍에 유독 국내기업 사이에 집중적으로 회자된다. 진원지인 마티네가 한국기업을 겨냥해 비공개 접촉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부회장 김모씨도 한인이다.

당시 마티네는 자사를 미국 정부가 선정한 '(뉴) 아폴로 프로젝트의 주력 사업자'로 소개했다. 미국 정책에 부응해 애리조나 주에 역사상 최대 규모의 900MW급 태양광발전소를 건설할 계획이라고 공언했다. 일감이 줄어든 국내기업 입장에선 진위를 떠나 귀가 솔깃한 얘기였다.

이런 방식으로 사업참여를 제안받은 국내기업은 최소 30개사에 달한다.  

▲미국 남서부 애리조나는 연평균 일조량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곳으로 꼽혀 각종 태양광·태양열 사업지로 각광받고 있다. (자료사진)

◆ 공급과잉 위기속 의문의 '대어(大魚)' = 하지만 마티네 프로젝트는 출발부터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다. 전체 투자비가 49억 달러(한화 약 5조4800억원)에 달하는 초대형 사업을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신생업체가 주관한다는 사실부터 그랬다. 마티네가 미국 정부와 글로벌투자은행을 동원한 이유다. 

이들은 미국 정부가 이 프로젝트에 13억 달러를 지원하고, JP 모건은 사업비 전액을 지급보증키로 약정했다며 기업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프로젝트의 실체를 놓고는 여전히 국내업계의 의심을 샀다.

이런 가운데 2010년을 기점으로 태양광 시황은 더욱 악화됐다. 공급이 수요보다 많은 공급과잉 이슈가 현안으로 떠올랐다. 태양광 제조사들은 쌓여가는 재고와 모듈단가 급락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렸다. 2008년 Wp당 4달러를 넘나들던 모듈가격이 2달러 아래로 곤두박질 친 것도 이 때다.

일각에선 연내 전 세계 태양광기업의 절반이 파산할 것이란 위기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수요를 창출해 어떻게든 공장가동률을 높일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결국 그해 4월 마티네 프로젝트는 뉴욕발 첫 축포를 쏘아올린다. 현대중공업과 LG전자를 240MW급 1차 사업(10억 달러 규모)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당시 마이클 파노스 마티네 회장은 "한국, 중국, 일본, 스페인, 미국 등의 기업으로부터 사업제안서를 받아 기술경쟁력, 시공능력, 재무건전도 등을 고려해 이들을 우선협상 대상으로 선정했다"며 "앞으로 추가로 서너개의 프로젝트를 발표할 예정이며, (이는)1차 물량의 몇 배 수준이 될 것"이라고 호기를 부렸다.

사업 참여를 저울질하고 있는 기업들을 향해 '기회를 놓칠수 있다'며 종용하는 듯 했다.

◆ 엇갈린 LG전자와 현대중공업의 선택 = 하지만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두 대기업도 확신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단 행보는 엇갈렸다. 무언가 낌새를 알아차린 LG전자 측이 돌연 발을 뺀 것이다. LG는 "사업구조를 구체화하기 이르다"며 한발 물러서더니 결국 사업참여 보류를 선언했다.

이 때문에 그해 7월 현대중공업은 애초보다 규모가 커진 175MW(7억 달러 규모)의 물량을 배정받고 이 프로젝트의 단독협상자로 지명된다. 발전소 설계부터 설치, 운전까지 도맡는 일괄도급방식(EPC)이었다. 3사간 정식계약식은 같은해 8월 뉴욕 맨해튼 JP모건 본사로 일정이 잡혔다.

현대중공업의 대규모 사업수주 소식은 곧 대서특필됐다. 회사 내부적으로도 어려운 시기에 대형사업을 따냈다는데 한껏 고무된 듯 보였다. 적어도 본계약 체결을 위해 경영진이 뉴욕땅을 밟기 전까지는 그랬다. 

본지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당시 양사 및 JP모간과의 본계약은 사실상 파행됐다. 현대중공업 CEO와 그 일행이 뉴욕까지 날아가고도 JP 모간 측 당사자를 만나지 못했다. 이는 L사장과 총괄책임자였던 당시 K본부장(부사장)이 JP 모간 고위층 및 마티네와 공사계약을 체결했다는 보도를 뒤엎는 내용이다.

아울러 이미 프로젝트의 실체를 의심케 하는 징후가 사업초기부터 제기됐다는 의미기도 하다. 현대 측은 그로부터 1년이 넘게 흐른 이듬해 10월에서야 이 사업이 좌초됐음을 인정한다. 그룹내에서 능력을 인정받던 K본부장이 갑작스레 경질된 것도 이 사건과 무관치 않다.

◆ 공기업·코스닥 벤처도 '묻지마' 베팅 = 속사정이야 어찌됐건 현대중공업이 물꼬를 트자 관망하던 기업들의 후속 참여가 봇물을 이뤘다. 한전 자회사이자 공기업인 한전KDN과 코스닥상장사 케이앤컴퍼니 컨소시엄이 두번째 참여그룹으로 호명됐다.

마티네는 이들 컨소시엄에 각각 60MW(2억 달러), 40MW(1억6000만 달러)규모의 공사를 발주할 것이라고 애드벌룬을 띄웠다. 역시 JP 모건을 통한 공사대금 지급도 호언했다. 그러자 전력IT 전문기업인 한전KDN은 생소한 태양광사업을 펼치겠다며 전담팀을 꾸렸고, 케이앤컴퍼니는 유상증자 등으로 자금을 모았다.

비슷한 시기에 포스코, 삼환기업, 미리넷솔라 등도 참여를 검토했으나 탐색전에 그쳤고, 삼성물산과 한화그룹은 주관사의 실체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업자체를 쳐다보지 않았다.

진용을 갖춘 마티네 프로젝트는 일단 순항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들 참여기업의 부푼 꿈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유없이 착공이 차일피일 미뤄졌고, 그 과정에 마티네 프로젝트가 태양광발전사업의 기본적 요건조차 갖추지 않았다는 물증이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해외 사업개발 전문가들에 따르면 미국 현지 태양광 사업은 ▶기존 전령망(Grid)과의 연계 여건 및 허가 ▶발전소 부지 계약서와 개발 인·허가권 ▶현지 전력당국과의 전력판매 장기계약(PPA) 등을 갖춘 이후에도 신중한 경제성 검토 등을 거쳐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그러나 마티네 프로젝트는 이런 기본 여건은 물론 투자사인 JP 모건의 프로젝트 파이낸싱 여부조차 불확실했다.  

오석 친트그룹 한국사무소 아시아솔라개발사업부장은 "해외사업일수록 기본적인 사항들을 철저히 확인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면서 "비용이 투입되더라도 제3자에 의뢰해 프로젝트의 진위를 확인하고 사업타당성을 검토하는 과정이 반드시 뒤따랐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 대기업·공기업도 '먹칠' 중소·벤처는 투자금 떼여 =  마티네 프로젝트의 실체를 알아차린 참여기업들은 적잖이 당혹해 했다. 특히 전도봉 사장의 강한 추진력 아래 사업을 벌인 한전KDN의 충격은 컸다. 한전KDN은 사태수습과 사업재개를 위해 전담팀을 다시 꾸렸으나 이렇다할 소득을 얻지 못하고 사실상 사업에서 손을 뗀 상태다. 

한전KDN 관계자는 "그 사업으로 회사가 입은 유·무형 손실과 실추된 기업이미지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내부적으로도 골칫거리"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말 사업 백지화를 공식화 했다. 외부로는 태양광 시황의 악화를 이유로 들었지만 내부적으론 거짓말을 일삼는 마티네를 더 이상 사업파트너로 인정할 수 없다는 기류가 강했다고 한다. 한 태양광기업 임원은 "세계적 기업이라는 현대가 말도 안되는 사기에 얽혀 얼굴에 먹칠을 한 것"이라고 일갈했다.

국내 기업의 피해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1차 참여기업들이 사기극의 실체를 알아갈 즈음 '막차'에 올라타 투자금까지 떼인 또다른 기업들이 있었다. 태양전지 제조사인 제스솔라는 지난달 말 애리조나 연방법원에 마티네와 이 회사 한인 부회장 김모씨, 정모 전 코트라 인베스트코리아 단장 등을 사기혐의로 고소했다.

마티네가 1억6000만 달러 규모의 발전사업 시공사로 자사를 선정하는 대가로 약 160만달러(한화 약 18억원)를 갈취했고, 이 과정에 정모 단장이 관여했다는 내용이다. 앞서 지난해 10월 제스솔라는 에어파크란 코스닥 상장사와 컨소시엄을 꾸려 마티네로부터 40MW급 발전사업을 수주했다.

▲ 제스솔라 평택 공장 전경 ⓒjes solar

하지만 제스솔라가 사업추진 과정에 확인한 마티네는 전형적 사기업체였다. 소장에 따르면 마티네는 이번 사업의 실체를 의심하는 기업들에게 JP모건이 발급했다는 50억 달러 규모의 신용장을 제시했다. 그러나 JP모건은 마티네 사업에 대한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사실무근'으로 확인했다. 위조된 서류란 얘기다.

석연찮은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앞서 지난해 28일 제스솔라 컨소시엄은 애리조나 주 벤슨에서 발전소 착공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김모 마티네 부회장과 정모 전 코트라 단장도 참석했다. 그러나 제스솔라 확인 결과 착공식이 열린 당시 발전소 부지는 애리주나주로부터 발전사업 허가조차 나지 않은 곳이다.

현재 네바다 주 마티네 사무실은 폐쇄된 상태며, 김 부회장을 비롯한 핵심 관계자들은 연락이 두절된 상태로 알려졌다.

◆ 외교당국과 정부기관 인사 개입 파장 =  마티네 프로젝트의 마지막이자 최대 희생양이 된 제스솔라 컨소시엄의 고소로 이 사기극에 정부 측 인사가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외교통상부는 지난해 4월 발간한 <통상마찰·기업애로 해소 사례집>에서 뉴욕총영사관이 현대중공업을 설득해 마티네 프로젝트 참여를 독려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이 사례집에 적시된 내용에 따르면 뉴욕총영사관 소속 A상무관은 마티네가 대규모 태양광발전소를 건설하면서 참여기업을 모집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뒤 마티네 고위 의사결정자와 수차례 접촉해 국내 유망기업이 사업을 수주할 수 있도록 설득했고, M사(현대중공업)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입찰참여를 조언한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은 마티네에너지란 회사에 대한 정보 부족과 수주경험 부족, 발생가능 리스크에 대한 우려 등을 제기하면서 결정을 계속 미룬다. 그러자 마티네는 한국기업의 비즈니스 관행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며 보다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타국기업에 우선협상권을 부여하겠다고 영사관을 압박한다.

이에 영사관 측은 지식경제부와 코트라 등에 이런 상황을 보고해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수주 지원대책 필요성을 설명하고 수차례나 양사와 접촉해 향후 사업 추진과정에 발생하는 애로사항까지 필요하다면 정부와 협의해 해결책을 만들겠다는 뜻을 전하기에 이른다. 현대중공업이 왜 무리수를 써가며 이 프로젝트를 강행했는지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반면 외교당국이 왜 이처럼 안달이나 마티네 사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또 코트라 고위직 출신 정모씨가 이 사건에 얼마나 깊숙히 개입했는지도 향후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익명을 원한 재생에너지 컨설팅기업의 E대표는 "아직도 국내 일부기업이 마티네 프로젝트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해외사업개발의 사전정지단계를 무시하고 무조건 자본만 투입하면 득을 볼 수 있다는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이와 유사한 피해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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