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은녕 자원환경경제학박사 /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부교수

허은녕
자원환경경제학박사
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부교수
[이투뉴스 / 칼럼] 무더위가 5월부터 일찍 시작되면서 지난해 보다 빨리 전력공급 부족사태에 대한 우려와 정부의 대책이 발표되고 있다. 2년 전 정전사태가 여름 다 지나갔다고 생각하다가 9월에 당했기에 미리미리 준비한다는 측면도 있지만, 그것보다도 올해 여름에는 너무나 많은 양의 전력공급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기에, 정말 모두가 준비하고 준비해도 전력공급 차질이 일어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에 정부가 앞장서서 예방주사를 놓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년 전 정전 사태로 급하게 새로 짓기 시작한 발전소들이 실제로 가동하려면 앞으로 2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그 와중에 원자력발전소 부정부품 교환 문제로 가동 중인 발전소 역시 6개월 이상 가동이 어렵게 되었다. 따라서 이번 여름은 물론 내년 여름까지는 그저 아끼고 아끼는 방법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으니 참으로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 하고 한숨이 나오는 지경이다.

사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전력공급시스템은 세계 최고수준의 효율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당분야의 국제적인 상을 수상하였었다. 또한 가장 최신 기술을 적용하는 나라로 이름이 나 있었다. 덕택에 국민들은 90년대 초 이후 지난 20여 년간 정전을 거의 경험하지 않았다. 이렇듯 오랜 기간 동안 전력부족은커녕 정전 고민 한번 안하고 잘 지내다가 갑자기 심각한 사태에 맞닥뜨리게 되었으니, 국민들의 불안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지진이나 해일이 온 것도 아닌데, 보유한 발전기는 모두 동원하고, 한 등 끄기를 넘어 한 등 남기기, 계단 오르기, 길거리 상점단속 강화 등의 고강도의 절약 정책, 수요관리정책의 시행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로 인하여 공급효율화나 정부예산사용 효율화 등 기존의 정부 에너지정책 시행에서 강조해 오던 원칙이 완전히 무시될 것이기에, 전력공급 부적이 해결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무너진 정책 원칙을 되살리는데 또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전력공급 부족의 근본적인 원인은 아주 단순하여, 오랫동안 원가보다도 낮게 유지된 전력가격으로 인하여 수요가 늘었으나, 전기를 공급할 발전소는 충분히 짓지 않았기 때문이다. 길을 가다 보면 한국전력이 설치한 시설물에 ‘전기는 국산이지만 에너지는 수입’ 이라는 구호를 보게 된다. 주 원료인 석탄, 우라늄 및 천연가스 모두 외국 수입이다. 그런데 전기는 원가 이하에 국민에게 주고 있다.

이번 전력부족 사태는 이러한 낮은 에너지가격에 더하여, 지난 외환위기 때 시행한 전력산업 구조조정의 허점, 21세기 들어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국제에너지가격 상승, 국민들의 NIMBY, 정부의 에너지 분야 신규투자 노력 부족 등 여러 가지 구조적인 문제가 합쳐져서 나타난 것으로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전문가들을 또한 한 목소리로 전력가격의 현실화와 원가 연동제의 조속한 실시가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너무나 당연한 제안이다. 정부는 당장 중장기적인 전력가격 상향 및 원가연동제 정책을 발표하여 더 이상의 전력 사용량 증가를 막아야 한다. 에너지원을 모두 수입하는 나라에서 수입원가 이하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정부나, 전기료 싸다고 전기 펑펑 쓰는 국민이나 모두 문제이지만, 근본책임은 그런 선택을 하는 국민들의 책임이 아니고 그런 가격구조를 유지한 정부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또한 공공용 전기요금을 2배 이상 상향 조정하라고 권한다. 공공부문의 전기사용량 총량은 미미하지만, 말도 안 되는 에너지 비효율적 대형 공공건물의 신축을 당장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일반국민의 생활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공공기관들이 자발적으로 에너지절약에 솔선수범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강제적으로 공공건물의 냉난방 온도 제어를 실시하는 것보다 자체적인 분석을 거쳐 각각 건물에 맞는 방식의 시설 설치로 효과적인 에너지저감이 이루어질 수 있으며, 또한 일시적으로 참아내기 위주의 수비형 정책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공급방안을 마련하는 공격형 정책방안이 될 것이다.

전력공급 부족 사태를 담당부처 장차관의 경질이나 대국민사과, 전력회사 책임자들 옷 벗기는 것은 정말 후진국적 방법이며,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국민에게 구조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솔직히 밝혀 양해를 구하고, 우리 모두가 함께 이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동참하자고 설득하는 것이 올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는 가장 빠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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