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집중형 전원체제에 정부도 회의…입장 선회
전문가 "구체적 정책 로드맵과 목표 제시돼야"

[이투뉴스] 국내 전력의 7할은 지방산(産)이다. 냉각수와 유연탄을 조달해야 하는 원전과 화력발전소가 해안선을 따라 자리잡고 있어서다. 작년 기준 원별 발전량에서 원자력과 석탄화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30%, 40% 수준. 전국단위 장거리 송전망 건설이 불가피한 이유다.

이런 구도는 적어도 향후 10년간 그대로 유지될 공산이 크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2024년 발전연료별 설비비중은 원자력이 30%선을 유지하는 가운데 석탄화력도 27% 이상을 점유한다. 발전량으로 환산하면 원전비중은 지금보다 더 늘고 석탄화력은 소폭 하락한다.

반면 이들 전원과 대척점에 있는 신재생에너지는 비약적인 확대가 요원한 상황이다. 2024년 설비비중이 7% 안팎에 머물 것으로 관측된다. 규모가 적어 다른 원(源)들의 양적 팽창속도를 따라잡기 어렵고, 이용률에서도 24시간 가동되는 기저부하와 비교돼 보조전원 취급을 받는다.

올 하반기 2차 에너지기본계획 수립을 앞두고 정부가 이같은 미래상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현행 중앙집중형 공급체계가 야기한 각종 사회갈등이 도화선이 됐다. 기본계획의 뼈대를 만드는 전문가 워킹그룹도 이같은 문제의 유일한 해법으로 분산형 전원을 꼽고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정부도 과거와는 입장이 크게 달라졌다. "부담이 늘더라도 분산형 전원을 유도하겠다.", "좁은 국토를 발전소·송전선으로 채우는 일은 더 이상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등의 전향적 발언(한진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이 나온다.

물론 분산형 전원은 의욕만으로 달성가능한 과업이 아니다. 에너지공급 인프라 자체를 바꿔야 한다. 발전소와 수요처를 일치시켜야 하고, 석탄·원자력 중심의 전원도 친환경·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 수십년간 고수해 온 공급위주 정책을 수요관리 중심으로 턴어라운드 하는 것도 과제다.

이런 까닭에 분산형 전원 구축은 에너지 생태계에서 기득권을 쥐고 있고 정책적 관성까지 등에 업은 기존 에너지체제와 세력은 미약하고 불확실성은 높은 미래 에너지체제의 대결, 이른바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에 비유된다.

일단 분산형 전원을 주창해 온 진영에선 판세가 불리하나 승산은 충분하다는 판단이다. 전력난, 송전선 갈등, 원전 안전성 논란, 기후변화 대응 등이 총체적으로 불거진 요즘이야말로 그동안 선언적이고 추상적으로 접근했던 분산형 전원의 초석을 다질 호기로 보고 있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우리는 대단지발전과 대규모 송전에 기초한 전형적 중앙공급형 시스템인 반면 덴마크 등 유럽은 전형적 분산시스템"이라며 "어떤 시스템이 강인하며 보다 지속가능한지는 최근 원전 리스크 증가 사례를 보더라도 금방 드러난다"고 말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분산형 전원이 정착되면 발전소나 송전선로 증설에 따른 투자비가 절감돼 올해 기준 연간 1조1000억원, 오는 2022년에는 연간 1조4000억원의 편익이 발생한다. 이는 최근과 같은 사회적 갈등비용을 제외한 추정치로, 분산전원(DG)의 기타편익까지 고려하면 실제 편익은 더 크다.

박 교수는 "DG는 수요지에 투자가 가능하고 발전소 건설까지 5~10년이 걸리는 화력·원자력과 달리 1년이면 구축이 가능하다"면서 "특히 테러나 블랙아웃 등 외부충격에도 자체전력 공급이 가능해 에너지안보에도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2차 에너지기본계획을 에너지 생태계의 복원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창섭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는 "현재의 에너지산업 생태계는 10년째 지연되고 있는 구조개편 논의와 스마트그리드 산업 부진, 정책 거버넌스 약화 등이 복합돼 스스로의 생존도 난망한 상황"이라며 "포괄적 공론화와 접근을 통한 기본계획 수립으로 건전한 생태계 복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에너지시스템을 지탱하는 물리적 플랫폼은 이미 포화됐고, 10년전에는 없던 IPP(독립발전사업자)나 ICT 등이 새로 등장해 새로운 도전을 요구받고 있다"면서 "과거와는 다른 포괄적인 구조개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분산형 전원 구축은 어디까지나 정책의지 문제이며, 그런 맥락에 당위성 확보를 위한 기존전원의 엄밀한 경제성 재평가와 국가적 분산형 전원 목표 제시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창호 전기연구원 전력산업연구센터장은 "그동안은 기술이 성숙하지 않아 못했지만 이제 DG는 기술적 가시권에 들어와 마음만 먹으면 실현 가능한 문제"라면서 "전력난이란 당면 현안만 볼 것이 아니라 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근본적 문제해결을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센터장은 우선 에너지믹스(전원구성비) 구성의 기준이 되어온 전원별 발전단가 기준을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재산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건설비나 연료비 원가만을 따지는 발전사업자 중심의 기존 지표는 각종 사회·경제·환경적 비용을 도외시하고 있어 정당성 확보가 어렵다는 이유다.

일례로 원전이나 석탄화력의 발전단가에 갈등비용이나 송전비, 방폐물 처리비, 환경비용 등을 포함시키면 이들 전원의 생산원가는 최소 두자릿수 비율로 치솟는다. 경제성에 근거한 전원구성 시 이들 설비의 투자 우선순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센터장은 "미국만 하더라도 우리보다 원전단가를 3배 높게 책정한다. 전력사가 아닌 제 3의 객관적 기관에서 지금까지 반영하지 않은 편익이나 비용을 따져 각 전원의 비용을 다시 추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분산형 전원 구축 정책은 구체적 정책 로드맵과 목표가 제시돼야 한다는 주문도 이어졌다. 에너지자주개발률처럼 분산형 전원의 목표치를 부여해야 단계별 정책 이행력을 담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센터장은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정책은 실효성 있는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면서 "정부가 분산형 전원에 대한 목표치를 제시하고, 이를 어떻게 달성하겠다는 구체적 정책 포토폴리오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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