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조원대 손실액 보전 한수원 책임론 대두
노후 원전 수명연장 및 폐로 대책 질타

중계방송 모니터 카메라에 자료를 살펴보고 있는 조석 한수원 사장의 모습이 포착됐다.

[이투뉴스] "지난 여름 원전비리로 온 국민을 고생시킨 한수원이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28일 국회에서 열린 한국수력원자력에 대한 국정감사는 각종 원전 비리와 고장·사고를 초래한 한수원의 모럴해저드를 지적하는 상임위 의원들의 거친 언사로 시종일관 무거운 분위기가 연출됐다.

의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원전 당국의 대대적인 조직쇄신과 비리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하는 한편 일련의 사태로 유발된 사회·경제적 비용을 원인유발자인 한수원이 책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전 비리·고장 피해액 4조원 상회
이날 국감은 감사 개시 직후부터 빗발치는 추가자료 제출요구로 의원질의가 상당시간 제체됐다.

일부 의원은 "700페이지에 달하는 자료집을 만들고도 대부분 요구자료를 별도제출 하겠다며 백지나 다름없는 보고서를 내놓은 이유는 뭐냐"면서 한수원의 불성실한 자료제출 행태를 꾸짖었다.

이렇게 달아오른 국감은 일부 의원들의 감정적 발언을 촉발시키며 초반부터 험난한 하루를 예고했다.

국감 종반부엔 이를 지켜보던 강창일 위원장까지 나서 "의원들 요구자료를 안해주는 이유는 뭡니까? 얘!"라고 호통치기도 했다.  

산업통상자원위원회는 우선 원전 비리와 전력난으로 초래된 손실비용의 규모를 최소 수조원으로 추산하고, 이 비용이 국민 부담으로 전가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우윤근 민주당 의원이 한수원과 전력거래소 제출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08년부터 올해 8월까지의 원전 고장 정지 및 정비지연으로 발생한 손실액은 약 4조1400억원에 달한다.

원전 정지·정비로 발생한 전력공백을 LNG발전으로 대체하면서 작년에만 1조5661억원, 올해는 8월말 현재까지 2조164억원이 추가 소요되는 등 연평균 7000억원의 전력대체비용이 쓰였다는 지적이다.

우 의원은 "문제는 이런 비용 증가분에 대해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데 있다"며 "부품고장이나 시험 성적서 위조로 발생한 손해는 해당업체에 책임을 묻도록 제도를 마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당 소속 박완주 의원도 '원인유발자 책임론'을 내세워 한수원을 코너로 몰아붙였다.

박 의원은 지난해 품질검증서 위조로 원전 6기가 정지해 2조5000억원의 전력구입비가 증가했다는 한전 자료를 제시하며 "전력거래소가 한수원으로부터 국민이 부담한 전기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수원은 지난 6월 전력거래소 비용평가위원회 결정에 따라 올해 손실액 9600억원은 부담키로 했으나 규칙개정 이전인 지난해 비용은 소급적용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한수원이 작년 원전정지에 책임있는 납품업체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급적용 불가 운운하는 것은 일관성이 없다"고 꼬집었다.

현재 한수원은 신고리 3,4호기 제어케이블 성능검사서를 위조한 JS전선 소유 117억원대 부동산과 영광 5,6호기 부품 품질검증서를 위조한 원전테크의 4억5000만원대 부동산에 가압류 절차를 밟고 있다.

원전 정지에 따른 손실액을 한수원이 자구노력으로 보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부좌현 민주당 의원은 "시험성적서, 기기검증서 위조로 인한 손실이 최소 1조3000억원에서 최대 2조6000억원에 이를 것"이라며 "한수원 비리로 국민이 입게 될 손실이니 자체 충당하라"고 했다.

부 의원에 의하면 원전 비리에 따른 피해 예상액(최대값 기준)은 부품구입비 242억원, 한수원 매출 손실 6050억원, 한전 대체 전력구입비 2조600억원 등 2조6892억원에 달한다.

부 의원은 "이를 전기요금에 반영하면 5% 인상요인이 발생한다"면서 "한수원 비리 때문에 입은 막대한 손실이기 때문에 전기료에 전가하지 말고 자체 경영합리화, 경영효율 개선으로 해결하라"고 질타했다.

비리·범죄 발생 시 원인제공자가 경제적 피해액을 배상토록 하라는 주문도 나왔다.

김동완 새누리당 의원은 "원전 비리는 개인의 도덕적 문제가 아니라 수조원대 경제적 손실,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국민 고통을 유발했다"며 "직원 비위로 손실이 발생하면 형사상 처벌만 할 것이 아니라 피해액 전액을 배상토록 하는 윤리헌장을 만들어 모두가 준수할 수 있도록 하라"고 말했다.

같은당 정수성 의원은 "시험성적 파문과 고장으로 멈춰선 원전 탓에 국민이 수조원의 천문학적인 전기료를 추가 부담해야 할 판이다. 이러고도 국민을 바라볼 면목이 있냐"고 조석 사장을 다그쳤다.

이에 조 사장은 벌겋게 상기된 낯빛으로 입술을 질끈 깨물며 면목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한수원 비리 사태를 꾸짖는 의원들의 지적이 잇따르자 조석 사장의 표정이 어둡다.

노후 원전 수명연장 실익 논란…폐로 대책 촉구
노후 원전 폐로 대책과 과도한 원전 유지보수 비용도 도마에 올랐다.

김제남 정의당 의원이 한수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고리·월성 1호기 계속운전 경제성 평가자료에 따르면, 당초 이들 원전의 경제적 가치는 고리 1호기 1488억원, 월성 1호기 1648억원으로 각각 추산됐다.

하지만 작년말 기준 이들 원전의 해체 예상비용이 기존 3251억원에서 6033억원으로 2782억원 증가하면서 사실상 두 원전의 경제적 가치가 사라졌다는 지적이다.

김 의원은 "매몰비용이 더 많아지기 전에 두 원전의 가동을 중단하고 해체 수순을 밟아야 한다"며 "전력난을 핑계로 수명연장을 추진하려는 꼼수는 결국 안전과 경제성을 해치는 것"이라고 추궁했다.

노후원전의 현실적인 폐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주문도 잇따랐다.

전하진 새누리당 의원은 한수원이 원전 해체비를 장부상 충당금 형태로 적립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설계수명이 끝난 원전이 있는데 해체비를 한 푼도 적립하지 않는 이유가 뭐냐"고 따져 물었다.

전 의원은 "이런데도 한수원은 작년 당기순익의 70%인 4633억원을 한전에 배당했다"며 "수명이 끝난 원전이 있는데 해체비 대신 고배당을 하는 한수원은 누구를 위한 한수원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당 김동완 의원도 "호기당 해체비 6033억원을 기준으로 수명 만료 12기에 소요될 비용만 7조 2396억원이 필요하다"면서 "이 어마어마한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 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홍의락 민주당 의원은 월성 1호기의 수명연장이 경제성 측면에 명분을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한수원의 홍 의원 측에 제출한 2010년부터 올해 6월까지의 각 원전단지 사용후핵연료 발생량 통계에 의하면, 중수로 원전인 월성본부의 폐기물은 1112톤으로 나머지 3개본부 합계(1074톤)보다 많다.

월성원전이 경수로형 원전인 고리·한빛원전보다 3배, 한울원전 보다는 무려 5배나 많은 핵폐기물을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홍 의원은 "안전성과 경제성이 반영되지 않은 상황에 사용후핵연료까지 많은 원전을 재가동 한다는 것은 명분이 없다"면서 "월성1호기 수명연장은 전력난을 떠나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원전 가동을 위한 수선유지비는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고장은 되레 늘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오영식 민주당 의원에 의하면, 최근 3년간 원전 유지보수에 투입된 비용은 2011년 6071억원, 작년 7265억원, 올해 9월까지 5581억원 등 1조9288원에 이른다.

본부별로는 한울원전이 5581억원을 가장 많았고, 뒤이어 한빛원전 5510억원, 고리원전 4689억원, 월성본부 3508억원 순이다. 하지만 2010년 2건이던 고장정지는 2011년 7건, 지난해 9건으로 되레 늘었다.

오 의원은 "일본 원전사고 이후 전 세계에 원전안전 불감증에 대한 경고음이 발령된 상태지만 우리는 여전히 부실과 불감증이 구조적이고 뿌리깊게 만연해 있다"며 대책마련을 주문했다.

한편 이날 조석 한수원 사장은 원전 당국을 향한 악화된 여론을 의식한 듯 대부분의 지적사항에 이의제기 없이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원자력 전문가답게 일부 내용이나 수치 오류 등은 답변시간을 활용해 소명에 나서기도 했다.

조석 사장은 모두 발언에서 "일련의 비리사건과 발전소 가동정지로 인해 국민여러분께 큰 불편과 심려를 끼쳐 드린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면서 "금번 사태의 원인과 문제점을 철저히 진단해 경영전반의 근원적 쇄신을 단행하겠다"고 밝혔다.

조 사장은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이 "인사혁신에 대한 복안이 준비돼 있냐"고 묻자 "예"라고 지체없이 답한뒤 "오기전부터 생각했고, 조만간 (쇄신)안을 내놓겠다"며 조직개편을 시사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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