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면보다 130m 낮은 사일로서 방폐물 영면
중·저준위 4단계 분류 운영효율 높이는 방안 추진

▲ 지하 처분시설 개요도

[이투뉴스] ‘절대감속’, ‘20km/h’, ‘규정속도 준수’

폭 7.2m, 높이 6.2m의 터널은 100m마다 10m씩 고도가 낮아지는 제법 가파른 경사였다. 180° 급커브 한번, 90° 커브 한 번씩 두 번이나 방향을 튼 동굴이 지하세계로 이어졌다. 주의표시대로 1.95km를 서행으로 내려가는 동안 전조등을 밝힌 서너 대의 공사차량이 조심스럽게 취재진 태운 차량과 교행했다. 20m 간격으로 전등이 늘어서 있었지만, 일반 터널보다 다소 어둡고 비좁아 보였다.

10여분 남짓 내리막길을 달린 차량이 이윽고 점보기 격납고 모양의 대형 동굴 앞에서 멈춰섰다. 누운 ‘왕(王)’ 자(字) 모양으로 뚫린 거대 하역동굴이다.

“여기가 해수면에서 -80m 지점쯤 됩니다. 저쪽에 보이는 것이 지금 마무리 작업중인 사일로(SILO)구요. 사용승인이 나면 -130m까지 파인 저곳에 약 1만7000드럼의 중·저준위 방폐물이 영구히 보관됩니다.” 안내를 맡은 김두행 원자력환경공단 팀장이 돔 형태의 1번 사일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 지하 처분장 운영동굴. 이곳에서 하역된 방폐물은 여섯갈래로 나뉜 사일로에 보관된다.
동굴 내부는 크레인 등 각종 건설장비가 동시에 내뿜은 배기가스가 지상으로 빠져나가지 못해 매캐한 냄새를 풍겼다. 하루 350여명의 인력이 막바지 덕트·배관·배수펌프·조명설치 작업을 벌이고 있다. 준공허가 이전이라 아직 사일로에 반입된 방폐물은 없다.

지난 20일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건설현장. 1조5200억원을 들인 방폐장 공사는 4년간의 굴착공사를 끝내고 공정률 97%를 기록하며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1.2m 두께의 콘크리트 사일로는 내부직경 23.6m, 높이 50m의 원통형 구조물이다. 사일로 바닥은 해수면보다 130m나 낮다. 외경이 30m나 되는 사일로 틀을 수직으로 파 내려간 공사는 처음이다.

이곳에 폐기물이 반입돼 사일로가 가득차면 상부를 쇄석(자갈)으로 채운 뒤 반입구를 같은 두께의 콘크리트로 봉인하게 된다. 내년 6월 1단계 공사가 준공되면, 4개 원자력발전소 단지에 임시 보관된 약 10만드럼의 중·저준위 방폐물이 이곳으로 반입돼 지상세계와 영구 격리된다.

원자력환경공단에 따르면 세계 최고 수준의 토목·건설 기술을 보유한 나라지만 지하 처분장 건설은 일류 건설사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난공사였다고 한다.

통상 일반 터널은 입구와 출구 양쪽에서 동시에 굴착하는 방식을 택해 공사 도중 지하수가 터져도 배수에 문제가 없다. 하지만 출구가 하나뿐인 처분장 동굴공사는 지하방향으로 굽어진 일방향 굴착을 해야 하는데다 지하수를 만나면 별도의 펌핑작업이 필요했다. 여기에 예상보다 무른 일대 연약지반도 복병이 됐다.

이렇게 3~4중의 악조건을 딛고 조성한 동굴길이는 4km에 달한다. (건설·운영동굴 합계) 지상에서 하역동굴까지 207m를 수직으로 뚫어 내려간 수직구는 향후 작업자들의 이동통로로 사용된다. 김 팀장은 “지하 구조물은 내진 1등급으로 건설돼 리히터 규모 6.5 강진도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

▲ 사일로 건설 공정. 현재는 천정 콘크리트 라이닝 작업이 완료됐다.

이곳에 반입될 방사성 폐기물은 각 원전과 연구시설, 병원 등에서 발생한 중·저준위 물질이다. 고준위인 사용후핵연료는 관련법상 저장할 수 없다. 원전 정비과정에 사용된 덧신이나 장갑, 작업복, 부품, 필터는 물론 연구실 주사기까지 드럼에 담겨 경주 해안가 한 지하동굴서 최후를 맞게 되는 것이다.

국내 원전과 연구시설 등에 임시보관중인 중·저준위 방폐물은 약 13만 드럼에 달한다. 지금도 국내 원전은 호기당 한 해 약 150드럼씩 연간 약 3000드럼(150×23기×이용률)을 발생시키고 있다. 연간 700톤씩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는 처리방법과 장소가 없어 발전소내 임시 저장시설에 무대책으로 쌓여가고 있다.

정부는 올해부터 고준위 방폐물 처분방안에 대한 공론화에 나서 내년말까지 부지선정을 제외한 기본계획을 수립한다는 계획이다. 사용후핵연료는 재처리 공정을 거쳐 연료로 다시 쓸 수 있지만 아직 완벽한 재생기술이 없는데다 한·미 원자력협정상 재처리가 불가능하다. 뾰족한 대안이 마련될 때까지 중간저장시설을 만들어 보관하는 것이 현재로선 유일한 대안이다.

더욱이 고준위 폐기물은 연료로 사용된 이후에도 장기간 높은 열과 방사능을 내뿜어 관리가 쉽지 않다. 반감기는 10만년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세대가 값싼 에너지를 사용한 대가를 후세들의 부담으로 전가시킬 수밖에 없는 게 현 원자력 발전의 딜레마다.

▲ 방폐장 처분시설 조감도

지하 처분시설 견학에 앞서 방문한 방폐장 지상지원 건물내 방사성폐기물 인수저장시설. 식품공장을 연상케 하는 깔끔한 시설 내부에서 노란색 방폐물 드럼이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이동했다. 2010년말 월성원전에서 첫 반입한 드럼 1000개의 일부다.

각 원전에서 옮겨진 폐기물은 지하시설로 저장되기 전 이곳에서 전수검사와 표면 방사능 검사, X선 검사, 압축검사 등을 통과해야 한다. 하루 처리능력은 64드럼이다. 이 과정에 이상이 발견된 드럼은 '불합격' 처리돼 해당원전으로 돌려보내진다. 실제 월성원전에서 반입된 드럼 1개는 부식이 문제가 돼 반출처리됐다. 

공단은 내년 4월까지 1단계 처분시설에 대한 계통별 시운전을 거쳐 내년 6월 준공식을 갖고 본격적인 방폐

▲ 사일로에 폐기물이 가득차면 상부를 쇄석으로 채운뒤 봉인한다.
물 반입에 나설 계획이다. 또 2단계 천층처분 시설 건설에 나서 12만5000드럼 규모의 저장능력을 추가 확보할 예정이다.

같은 중·저준위라도 준위가 높은 것은 지하처분장에, 비교적 낮은 것은 지상 처분장에 보관하는 방법으로 이용효율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이상진 공단 사용후핵연료 운반·처분 실장은 "어렵게 확보한 처분장인데 병원이나 연구소에서 반입된 저준위 동위원소 폐기물을 지하에 넣는 것은 운영 효율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본다"면서 "준위에 따라 폐기물을 4단계로 분류하는 법안을 통과되면 보다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해 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경주=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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