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일발' 전력계통 이대로 둘 것인가]
왕십리 사고로 50km 떨어진 청평수력 전면정전
광역정전 위험 상존…전력당국은 공급만 혈안

▲ 서울 왕십리 변전소에서 발생한 변압기 폭발사고로 청평수력발전소가 전면 정전 사고를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한 화력발전소의 계통 설비 (기사와 관련 없음) 

[이투뉴스] 서울 왕십리변전소 폭발사고로 50km나 떨어진 청평수력발전소가 1시간 이상 초유의 블랙아웃(전면정전) 사고를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에서 난 사고가 변전소 5곳을 지나 경기북부 발전소까지 영향을 미친 셈인데, 불안한 국내 계통여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여서 충격을 주고 있다.

31일 본지가 입수한 전력당국의 ‘청평수력 전면정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사고는 11월 30일밤 10시 36분 서울 성동구 한전 무인변전소 변압기가 지락고장(전류가 어떤 원인에 의해 대지로 흐름)을 일으키며 시작됐다. 당시 마장동 일대 3만7000여호는 최장 32분간 정전을 겪었다.

그런데 사고발생 1분뒤 청평수력발전소에서 예상치 못한 정전이 일어났다. 20MW급 청평수력 2호기 주변압기 보호계전기가 50km 떨어진 왕십리 사고를 감지해 오동작한 것. 보호계전기는 외부 충격으로부터 설비를 보호하기 위해 이상이 감지되면 계통과 설비사이 전력공급을 끊어 버린다.

한밤에 정전을 겪은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인도 파악할 새 없이 소내정전 복구에 나섰다. 하지만 이 시도는 결과적으로 사고를 더 키웠다. 기술진이 오작동한 개방차단기를 '리셋(Reset·재설정)'하지 않고 수차례 조작하면서 차단기를 작동시킬 공기압만 소진시킨 것이다. 이때 시각은 오후 11시 5분.

당황한 기술진은 1호기 차단기를 살려 계통을 복구키로 작전을 바꿨다. 청평수력은 1,2호로 외부 전력을 끌어썼다. 문제는 당시 1호기가 정전·접지 상태에서 공사를 벌이고 있었다는 점이다. 차단기를 연결하기 전 접지선을 제거해야 했다. 그러나 이를 인지하지 못한 기술진은 그대로 차단기를 올렸다.

연이은 실수의 결과는 참담했다. 사고 발생 후 36분 뒤(오후 11시 12분) 청평수력은 암흑천지가 됐다. 설악면 일부 지역도 전기가 끊겼다. 접지선에서 지락이 발생하자 이 발전소와 연결된 가평, 마석, 덕소변전소와 팔당수력 등 6개 154kV 송전선이 0.4초만에 동시에 전원을 자동차단한 것이다.

이 과정에 청평수력과 연결된 팔당수력 2호기가 트립(Trip)을 일으켰고, 전력거래용 변류기·변압기가 파손됐다. 6개 송전선중 한 곳에서라도 고장전류를 차단하지 못했다면 광역정전이, 같은 유형의 사고가 원전에서 일어났다면 대규모 전원탈락과 원자로 과열까지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전력당국 내부 집계에 따르면,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이런 계통사고는 한해 200건이나 발생한다. 거미줄처럼 얽힌 다른 계통으로 대체 공급받아 단지 가정·공장까지 정전되지 않았을 뿐이다. 전력이 남아돌아도 건강한 전력계통이 유지되지 않으면 언제든 예고없이 광역정전이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부와 전력당국은 여전히 ‘9.15 트라우마’에 빠져 계통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 송전선이 모자라 아예 모선과 따로 떼어놓은 분리개소도 전국적으로 107곳에 달한다. 2010년 신파주 345kV 송전선 고장으로 복합화력 22대가 셧다운 된 것도 대안없이 방치한 모선분리가 근본적 원인이다.

전력당국 관계자는 "대규모 사고는 계통여건이 취약한 곳에서 인적실수가 겹쳐질 때 주로 발생한다"면서 "설비투자를 늘려 문제 지역을 지속적으로 줄여가는 한편 취약지역 현장 운전원들의 교육을 강화해 계통의 종합적 개념을 이해하고 절차에 따라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전력망 문제는 발전설비 확충에 따라 가면 갈수록 심각해지고 개선될 여지가 적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면서 "특정지역에 몰린 발전소를 분산형 전원으로 전환하고 계통 확충에 대한 국민적 이해와 당국의 노력이 필요한 때"라고 부연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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