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성장委 조정협의회 5차례 회의 불구 중재 불발
100억원 시장 펠릿보일러 中企적합업종 홀로 외면

[이투뉴스] 박근혜정부가 내놓은 여러 정책에서 공통분모를 뽑으라면 ‘비정상의 정상화’와 ‘동반성장’을 들 수 있다. 일방적 혜택이나 분배에 비중을 두는 것이 아니라 거시적인 의미의 ‘성장’에 초점을 맞춰 제도나 기업 생태계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기회가 될 때마다 경제민주화를 법과 제도적 기반 위에 상생의 기업문화로 정착되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공정한 감시자의 역할을 다하면서 대기업의 해외시장 역량이 중소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는 말도 누차 강조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성장동력과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대·중소기업 간 상생의 개념에 초점을 맞춘 정책 기조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 같은 줄기찬 박근혜정부의 상생 외침과는 어긋나는 대기업의 행보가 여전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시장규모가 연간 100억원에 불과한 목재펠릿보일러 시장이 여기에 해당한다. 목재펠릿보일러는 목재 가공과정에서 발생하는 건조된 목재 잔재로 만든 펠릿을 연료로 하는 보일러로, 열효율이 높아 난방비를 크게 절감하는 효과로 보급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보급사업의 일환으로 2008년부터 시범사업이 펼쳐지면서 힘들게 중소기업이 닦아놓은 시장에 뒤늦게 진출한 귀뚜라미가 막강한 영업력과 자금을 내세워 중소기업의 기반을 뒤흔들고 있다.

결국 생존 자체를 힘겨워한 중소기업들이 자생단체인 한국산업로공업협동조합을 통해 동반성장위원회에 중소기업 적합업종품목을 신청하기에 이르렀고, 조정 과정에서 시장에 진출해있던 대기업 중 한 곳인 경동나비엔은 중소기업 경쟁력 제고와 상생협력 취지에 공감하며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그러나 귀뚜라미는 요지부동이다. 그동안 동방성장위원회의 조정협의체 회의가 5차례나 열렸으나 귀뚜라미 측은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수용불가’를 강조하며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같은 대기업이면서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 차원에서 시장 철수를 결정한 경동나비엔의 행보와 대조되는 대목이다.

오히려 귀뚜라미는 ‘동반성장 3.0’ 정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펠릿보일러 시장 확대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최근 출시된 펠릿 열풍 스토브가 두달 만에 4000대를 돌파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최진민 그룹회장이 직접 전국 보일러 시공사업자들을 대상으로 25차례에 걸쳐 제품 설명회를 가졌을 정도로 열정을 쏟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연내 무이자 할부판매 등 대대적으로 이벤트를 펼치며 시장을 점유하겠다는 계획이다. 연료로 사용되는 우드펠릿 유통망 확대에도 적극적이다. 귀뚜라미는 우드펠릿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지난달 중순 우드펠릿 공급업체와 계약을 체결했다.

이 같은 귀뚜라미 행보에 대해 펠릿보일러 전문기업들은 막강한 자금력과 영업망을 내세워 중소기업의 근간을 허물어버리겠다는 대기업의 횡포라고 반발하고 있다. 출시 때 대당 130만원 대였던 펠릿 스토브의 대리점 공급가격을 최근 90만원 대로 내리고, 농업용 펠릿보일러를 반값으로 시판하는 등 시장을 뒤흔들어 그나마 남아 있는 몇 개 안되는 중소기업을 없애고 시장을 독점하겠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고 비난하고 있다.

갈수록 귀뚜라미와 중소기업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가운데 동반성장위원회 조정협의체의 5차례 회의에도 불구 조정에 실패하면서 동반성장위원회는 전문가회의 중재안을 제시하며 조정협의체 6차 회의를 개최하려 했으나 오히려 중소기업 측의 거센 비난을 사게 됐다.

중재안은 권고사항으로 ‘확장자제 및 진입자제’를 촉구했다. 기존 대기업은 유통망 확장을 2014년 9월말 대리점 수 기준으로 자제하고, 신규 대기업은 산업용·가정용·농업용 목재펠릿보일러 분야의 진입을 자제하라는 것이다. 아울러 공정경쟁을 위한 동반성장 방안으로 영업인력 탈취, 대리점 유입 등의 공격적 영업활동 자제와 관행적인 영업활동으로 이뤄지던 무상연료지급 등 불공정 경쟁 자제, 해당산업 발전을 위한 공동연구 등을 제시했다.

이 같은 중재안에 대해 중소기업 측은 실효성도 의미도 전혀 없는 중재안이라고 평가했다. 중소기업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인 귀뚜라미는 가정용·산업용·농업용, 스토브 등 펠릿사업을 공격적으로 확장하는데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보장을 받는 의미”라고 힐난했다. 이어 “올해는 귀뚜라미의 불법과 탈법이 더 심해져 가정용 펠릿보일러의 경우 대놓고 연료를 1톤씩 대주며 영업 중이고, 판매가격을 덤핑수준으로 내린 농사용 펠릿보일러로 시장을 교란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대로 가면 몇 안남은 중소전문업체마저 전멸할 수밖에 없다고 한숨지었다.

이제 해당 사안은 실무위원회로 넘어가게 됐다. 더 이상의 조정협의회 개최가 의미 없다고 판단한 동반성장위원회 측은 다음 절차인 실무위원회 결과로 동반성장위원회 최종의결을 수용한다는 합의 중재 동의서를 해당 사업자들에게 보냈다. 당사자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음에 따라 실무위원회 중재에 동의하며, 동반성장위원회에서 결정한 중재안을 수용한다는 동의서이다.

앞으로 위촉된 실무위원들의 심의를 거친 결과는 동방성장위원회에 제시되고, 본회의에서 의결하게 된다. 최종 의결사항이 수용되지 않을 경우 중소기업청 사업조정제도에 올려지고 법적 집행력이 있는 권고안이 결정된다.

연간 규모가 100억원에 불과한 시장에 대기업 중 홀로 남아 ‘사업 확대’를 주창하며 중소기업의 근간을 뿌리 채 흔드는 귀뚜라미의 행보가 어디까지 갈 것인지 주목되고 있다

채제용 기자 top27@e2news.com

<ⓒ이투뉴스 - 글로벌 녹색성장 미디어, 빠르고 알찬 에너지·경제·자원·환경 뉴스>

<ⓒ모바일 이투뉴스 - 실시간·인기·포토뉴스 제공 m.e2news.com>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