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이하로 내려가는 등 폭락하면서 국내 에너지가격 역시 요동치고 있다. 기름값은 물론 도시가스, 지역난방, 전기요금 등이 모두 유가흐름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국제유가가 상승추세에서 하락세로 전환함에 따라 국내 에너지가격 역시 조정요인이 생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유가하락에 따른 소비자와 정부의 태도만을 놓고 보면 상승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보인다. 먼저 소비자들은 국제유가가 오를 때는 정유사들이 국내 석유제품 가격을 번개처럼 올리면서, 유가가 떨어질 때는 ‘찔끔찔끔’ 내린다는 비난을 쏟아낸다. 전체적으로 하방경직성이 지나치다는 불만이다.

이같은 소비자 불만은 장기계약 물량 및 환율과의 상관관계, 한 달 가량의 시차 등 에너지가격구조 및 결정체계를 잘 모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측면이 강하다. 여기에 유류세 비중이 전체 휘발유가격의 절반을 넘어 유가하락에 따른 가격인하 체감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소비자의 불만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지만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에너지가격 상승요인이 발생했을 때는 ‘나 몰라라’하면서 방치하다, 인하요인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너도나도 앞장서 생색내기 바쁘다. 적절한 시기에 에너지가격 인상에 나서지 못해 추경예산을 동원해 메웠던 전례와, 전기 및 가스요금 인상지연으로 한전·가스공사의 누적적자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잊은 듯하다.

당장 지난 연말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제유가 하락이 국내 휘발유 가격 등에 적시에 반영되는지 모니터링하고, 공공요금에도 유가 절감분이 즉각 반영되도록 해 달라”고 주문했다. 얼핏 들으면 결코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에너지가격 속사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발언이 여론만 의식한 ‘정치적 발언’이라는 것 또한 누구나 안다.

물론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의 고민을 전혀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어려운 경제 상황과 함께 국민여론까지 나라살림 전체를 고려해야 하는 만큼 에너지가격 조정 시기는 충분히 조정할 수 있다. 하지만 가격인상이 요구될 때는 정치적 사유로 보류를, 인하요인이 생길 때는 여론이 들끓는다는 이유로 즉시 반영하는 체계가 습관화되고 있다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유가변화 등 국제흐름과 동떨어진 우리만의 에너지가격 결정체계가 일회성이 아닌 장기화 될 경우 결국 끊임없이 문제를 야기한다. 당장 국제유가가 1∼2분기 중 저점을 찍고 하반기에는 정상을 되찾으면 곧바로 에너지가격을 다시 올려야 한다. 예전부터 국제유가 상승 등 외부 인상요인이 발생했을 때 즉각 시장에 반영하는 체계가 이어졌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상황은 복잡하다.

곳곳에 비정상이 만연한 국내 에너지가격의 정상화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군가는 대통령에게 지금 당장 에너지가격을 내릴 수 없는 형편이라고 직언해야 한다. 그리고 제대로 된 에너지가격 결정구조를 만드는데 서둘러야 한다. 상황을 왜곡해서 만든 여론은 결코 오래가지 않는다.

채덕종 기자 yesman@e2news.com

<ⓒ이투뉴스 - 글로벌 녹색성장 미디어, 빠르고 알찬 에너지·경제·자원·환경 뉴스>

<ⓒ모바일 이투뉴스 - 실시간·인기·포토뉴스 제공 m.e2news.com>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