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정부 개입 최소화, 사회적 공론화 필요"

[이투뉴스] “정부의 정책 철학 부재가 문제다. 오직 요금정책 하나만 쥐고 가는 식이다. 이 문제를 제대로 풀려면 최상위 거버넌스 차원에서 사회적 공론화를 추진해야 한다. 지금 형편이라면 여·야 정책위 차원에서 (논의를)시작하는 것도 방법이다.”

“에너지 신산업을 키우고 새로운 기술이 나오려면 다양한 형태의 솔루션이 시장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지금처럼 한전이 모든 시장을 독점하면 누구도 들어올 수 없다. 소비자와의 접촉을 넓힐 수 있는 판매경쟁이 필요하다.”

“지금 시스템은 한마디로 엉망진창이다. 정부가 모두 틀어쥐려고 해서 생긴 문제들이다. 정부도, 정치권도, 사업자들도 각자의 욕심을 내려놓고 소비자 선택권을 늘려야 한다. 과거로의 퇴보는 말도 안 된다. 힘들겠지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전력·에너지 부문의 내로라하는 오피니언 리더들도 한숨부터 내쉬었다. “총체적 난맥상을 드러내고 있는 전력산업·시장을 어디부터, 어떻게 손대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고나서다. 하지만 고심 끝에 이들이 제시한 진단과 해법은 방향성에서 궤를 같이했다.

현 전력시장 구조는 어떤 방식으로든 전면적인 변화가 필요하며, 그 변화는 과거처럼 산업계 이해관계자간 논쟁이 아닌 국민과의 소통을 전제로 추진돼야 한다는 게 그것이다. 또 이 과정에 정부는 시장개입을 최소화하면서 중장기 방향설정에 매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공무원연금법 개혁 등 정치현안에 떠밀려 상당기간 지체돼 온 박근혜 정부의 에너지시장 규제개혁이 2단계 공공기관 정상화 추진 이후 불씨를 되살릴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전력 전문가들은 정부가 시의적절한 시장 정상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우선 각계 전문가들은 현 산업구조와 시장을 비정상으로 규정하는데 이견이 없었다. 또 이렇게까지 비정상이 심화된 1차적 배경은 그간의 정부 정책 자체였다고 주지했다.

전력당국 한 내부관계자는 “장기계획에 대한 정부의 방향성이 없다보니 수급은 매번 어렵고 시장은 부조화 그 자체”라면서 “신산업 육성의 전제조건이랄 수 있는 판매경쟁도 정부가 요금 컨트롤 편의를 명분으로 사실상 뒤에선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직격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은 전력산업의 미래가 걸린 아주 중요한 전환기로 20~30년 단위 방향성을 정하고 거기서 전력시장을 전면적으로 재설계해야 할 때”라며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밀실에서 독단적으로 하려 한다. 철학이 없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연구기관 한 관계자도 “현재 상황에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봐야하는 게 순서인데, 정부가 모두 움켜쥐어 생긴 문제들이 대부분”이라며 “수급계획 등 많은 것을 내려놓는 것에서부터 출발해 사업자간 겸업금지 해제까지 한바탕 전쟁을 치를 각오를 하고 덤벼야 할 일”이라고 진단했다.  

산업구조 정상화의 첫 단추는 판매시장 경쟁도입이 선결과제라는 지적이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기차, 신재생, ESS, 수요관리사업자 등 에너지와 관련된 새 기술들이 (시장에) 나오려면 소비자선택을 받아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전기를 한전에게만 살 수 있으니 그걸 부분적으로 고쳐 민간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한전이 모든 전기를 평균가격으로 만들어버리고 그 부담을 공기업 적자로 전가시키는 그런 식의 시장은 곤란하다. 다양한 형태의 솔루션이 시장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게 신기술이 태동할 수 있는 환경의 관건임을 유념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반면 시장 자유화가 필요충분조건은 아닐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전력당국 한 관계자는 “사실 연료비 연동제 시행 등으로 정부가 과도한 요금규제만 하지 않으면 문제가 이처럼 심각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판매자유화는 과거처럼 ‘쪼개기’ 방식 대신 한전의 역할을 단계적으로 축소해 가는 방향이 맞다는 생각”이라고 피력했다.

손 교수는 이에 대해 “녹색성장을 할 때도 그랬고, 창조경제를 하자는 지금도 그 부분에 대해 크게 바뀐 것이 없다. 현금을 잔뜩 쌓아놓은 기업들은 에너지분야에 관심이 많은데, (규제를) 풀어주지 않으면서 신산업을 하라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는”고 각을 세웠다.  

전력산업 경쟁추진은 반복되는 과거의 논쟁틀이 아닌 우리 여건에 맞는 답을 찾아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문제제기도 나왔다.

연구기관 소속 한 중진 인사는 “판매만 (시장을)연다고 과연 해결될 일인가. 피규제자 숫자만 늘어나고 나아지는 건 없을 것”이라며 “예전에 나왔던 구조개편 이론을 먼지 털듯 재론해선 안되며, 우리나라 여건에 맞는 답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그렇다고 지금 형태를 그대로 두자는 것도 아니고 일본 등 다른 국가들이 간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게 맞다는 것도 아니다"면서 "규제자인 정부가 되도록 힘을 빼고 가급적 경쟁을 지향하면서 경쟁 시 효율을 추구할 수 있을지 냉철히 진단해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속도와 방법론에서 온도차는 있었지만 국민과의 소통 및 공론화는 반드시 필요하다는데 이견은 없었다.  

전력당국 관계자는 "결국 정책을 뒷받침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열린 마음으로 전력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체를 만들고 큰 틀에서 장기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지금은 과도하게 방어적이며 시민단체나 학계 역시 대안이나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계 인사 역시 "정책의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려면 각자가 갖고 있는 욕심을 내려놓고 머리를 맞대되, 지금 처한 상황을 뛰어넘어 시야를 넓혀야 한다. 이 과정에 특정 이해집단에 치우진 일부 학계의 비중립적 제안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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