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정책연구본부장/선임연구위원

노동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정책연구본부장
(선임연구위원)
[이투뉴스 칼럼 / 노동석] 많은 경제학자들은 세계경제가 저성장·저금리·저물가·고실업률·정부부채 증가·규제 강화 등으로 설명되는 뉴 노멀(new normal) 시대에 진입했다고 진단한다.

2000년 이후 10년간 국내 전력소비는 매년 약 5%씩 증가했다. 그러던 것이 지난 4년 동안에는 연평균 1.5%만이 증가했다. 3분의 1 이하로 급격히 둔화된 것이다. 같은 기간 예측 증가율은 4% 수준이었다. 수요가 감소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전력수급의 관점에는 그렇지 않다. 전력수급계획 수립기간이 10년 이상이어야 한다는 법조문을 잠시만 생각해 보면 이유는 자명하다. 전력수급계획은 예측된 전력수요를 안정적으로 공급함과 동시에 발전원의 특성을 고려하여 최적의 전원구성을 지향하는 것이다. 발전소 건설에 장기간이 소요되므로 예측수요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상당기간 전에 투자가 결정되어야 한다. 수요가 부진하니 과잉설비를 걱정하고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전력수요 증가율이 급감했을까. 불과 5년 전 우리는 공급설비 부족으로 순환단전을 경험했다. 그즈음 설비예비율이 5% 내외에 불과했었다는 것이 공급설비 부족을 웅변한다. 이것은 대략 10∼15년 전에 예측되었던 전력수요가 과소예측되었던 결과다. 순환단전에 대한 반작용으로 후속 수급계획에서 전력수요 증가세와 예비율을 여유있게 가져가 신규 발전소를 다량 반영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부족해서 발생하는 후회비용이 남을 때에 비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 저예비율, 고유가 지속, 후쿠시마 사고와 비리발생으로 원전의 이용률이 현저하게 떨어지자 시장한계가격은 급등했다. 전기의 최종공급자인 한전은 적자가 심화되었다. 전기요금이 낮아 ‘생수로 샤워한다’는 등의 비난여론이 비등하자 정부는 2년여에 걸쳐 다섯 차례 전기요금을 인상했다. 그 결과 평균 전기요금은 약 30%가 인상되었다. 특히 산업용 전기요금은 40%가 인상되었다. 그래도 여전이 낮다고 하지만 같은 시기인 후쿠시마 이후 ‘원전제로’ 상태의 일본 보다 인상률은 더 높다. 하나 더,  세계적인 경기부진의 결과로 에너지분야 파급은 저유가로 나타났다. 저유가는 비전통 화석연료인 셰일가스의 공급이 늘어난 탓도 있지만 불황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경기부진과 요금인상 외에 다른 원인은 전력수요와 경제성장의 비동조화(decoupling) 현상이다. 2012년 이전까지 전력수요 증가율은 항상 GDP 성장률에 비해 높게 나타났었다. 그러던 것이 최근 3년 동안 GDP가 1% 증가할 때 전력소비는 0.41%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전기요금 인상에 소비자는 전보다 전기를 효율적으로, 아껴서 쓰게 됐다. 전기를 많이 소비하는 산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부진했다. 대표적인 전력다소비 산업이 철강산업이다. 조선·해운 다음으로 철강산업이 올해 하반기 구조조정 대상이라는 것은 이미 예고된 상태이다. 이것이 비동조화의 주요원인이다. 이 세가지 요인, 경제부진, 전기요금 인상, 탈동조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다 보니 수요증가율이 약세를 면치 못한 것이다.     

전력수요 증가 약세, 공급과잉 상황은 얼마나 지속될까. 수요증가의 약세는 상당기간 지속될 듯하다. 경제전망 전문 연구기관은 최근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6,7차 수급계획 수립 시 장기경제성장 전망치는 3% 중반대였다. 최근 수정치는 2% 후반대로 낮춰졌다. 저성장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전기가격은 어떻게 될 것인가. 작년도 한전의 영업이익이 10조가 넘고, 올해 1분기에도 3조원이 넘는 이익이 났어도 정부는 가격인하 계획이 없다. 한전 영업이익의 급증은 요금은 대폭 올랐는데, 한전이 전력계통으로 구입하는 도매가격이 대폭 하락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내 전기요금 수준이 비교대상인 OECD국가들의 중간수준으로 아직 낮고 신재생에너지 등 에너지신산업의 시장진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전기요금이 높은 것이 유리할 뿐 아니라, 또 이들 산업에 대한 지원을 위해서는 상당한 재원이 필요하다는 이유이다. 적어도 당분간 전기가격이 인하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결국 전력수요는 6,7차 전력수급계획의 전력수요 증가율에 상당히 미달할 것으로 보인다.

수요가 부진할 것으로 예측되면 공급력을 줄여 수급의 적정성을 회복할 수는 없을까? 신산업육성, 기후변화대응 등의 이유에서 신재생발전에 대한 정책과 지원은 지속될 것이다. RPS 체제는 지속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신재생 발전설비 확대는 불가피하다. 다른 한편으로 예전의 전력수급계획에 의해 발주되어 2019년까지 준공예정인 건설중 설비는 2019년까지 22GW(원전 5.6GW, 가스 4.9GW, 석탄 11.7GW)에 달한다. 건설중 설비의 취소는 발전소 건설비와 대등한 손실을 초래하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다. 노후발전소의 조기폐지는 대책이 될 수 있을까. 국내 최초의 석탄발전소인 삼천포화력 1호기는 1983년 9월에 준공되었다. 발전소 수명을 40년으로 본다면 2023년까지는 쓰는 것이 마땅하다. 이렇게 보면 적어도 2020년까지 또는 그 이후까지도 과잉설비에 따른 부작용을 피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른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상황을 인정하고, 늦었더라도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합리적일지를 놓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미적거리거나 모른 척하고 현재를 모면하는 것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전력수급계획 수립의  책임을 지고 있는 정부의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 관련된 전문가를 총동원해 전력수요를 정밀하게 재진단하고, 이를 토대로 공급력을 조절해가는 계획 수정이 필요하다.  준공시점 조정, 노후설비의 유지와 신규 설비의 건설 중 어느 쪽이 더 국가를 위해 유리한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해외 자원개발 사업의 사례가 강 건너의 일이 아니다. 

설비용량 1억kW 시대이다. 100만kW급 석탄발전소의 건설에 1조원이 넘게 들어간다. 10%의 과다 예비율이 상당기간 지속된다면 간단히 계산해도 10조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한다. 해운·조선업의 구조조정에 소요되는 비용은 과다 예비율로 부담해야 하는 국민적 비용과 비교할 수 없다.
뉴 노멀 시대가 현실이 아니기를 진정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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