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춘승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 부위원장

[이투뉴스 칼럼 / 양춘승] 지난해 전 세계 모든 국가가 합의한 파리기후협정이 마침내 제22차 당사국회의를 앞둔 11월 4일 발효한다. 55개국 배출량 55% 이상의 비준 조건을 충족시킨 것이다. 세계 모든 나라가 온실가스 감축에 참여하는 인류 역사상 유래 없는 실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파리기후협정의 발효는 기업에 새로운 환경을 만들고 있다. 산업계는 온실가스 배출의 21%를, 발전 부문은 25%를 각각 차지하고 있는데, 앞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전 세계적으로 규제하게 되면, 어떤 기업에게는 위험이 커지고 어떤 기업은 호기를 맞게 될 것이다. 이제 온실가스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모든 기업의 돈벌이에 구체적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투자자들은 이러한 변화를 놓치지 않고 있다. 기후변화가 기업의 재무적 성과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면서, 동시에 기업에게 기후문제 해결에 나서라는 강력한 주문을 하기 시작했다. 100조 달러를 운용하는 전 세계 827개 투자자들이 결집한 CDP가 대표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CDP는 지난 25일 세계 유수한 기업들에게 온실가스 경영 정보를 공개하도록 요구하고 이들이 공개한 정보를 분석해 보고서를 발간했다. 그들은 시가 총액이 높고 온실가스 배출에 민감한 1839개 기업을 선정 하고, 그 가운데 질문에 응답한 1089개 기업의 사례를 분석한 내용을 공개했다. 이들 기업들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체 배출의 12%에 해당되고, 이들 중 85%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보고서는 파리 협정이 발효하면 이제 기업이 온실가스 감축을 피할 도피처가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기업이 취할 정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첫째, 기후변화를 제약으로 보지 말고 기회로 생각하고, 자신의 배출량을 정확히 측정하고 이를 공개할 것, 둘째, 지구 온도 상승을 1.5∼2℃ 이하로 제한하는 데 충분한 과학적 감축 목표를 설정할 것, 그리고 셋째, 매출과 온실가스 배출 사이의 비동조화(decoupling)를 추구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85%가 나름대로 온실가스 감축을 계획하고 있지만 이들의 계획이 100% 달성된다고 해도 지구 온도 상승 목표를 달성하기에 필요한 수준의 4분의 1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한 배출량 보고가 자신의 기업 활동으로 인한 배출(SCope 1)과 전기나 수도 등 구매로 인한 배출(Scope 2)에 한정되어 있고, 공급망이나 제품의 사용으로 인한 배출(Scope 3)은 아직 보고하지 않고 있어, 진정한 저탄소 경제까지는 갈 길이 멀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고무적인 일은 8%에 달하는 기업들이 지난 5년 사이에 29% 이상 매출이 늘면서도 온실가스 배출은 오히려 26% 이상 줄어드는 비동조화를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이는 곧 온실가스를 줄이면서도 매출을 늘리는 좋은 사례로서 다른 기업들이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에너지 관련 기업들이 기후변화에 대한 대비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아직도 발전 회사의 3분의 1 정도만 재생에너지 발전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앞으로 파리 협정이 발효하고 각국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구체적 정책을 실시하면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발전 회사는 심각한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나 탄소세 등의 도입으로 온실가스가 더 이상 추상적 비용이 아니라 실질적 비용으로 인식되면서,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 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압박이 강화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환경단체인 CERES는 엑손모빌 같은 기업에게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 요인을 공개하고, 그에 대해 적절한 대책을 세우지 않을 경우 투자 회수도 고려하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파리기후협정은 기업에게는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다가오고 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던가? 우리 기업들도 더 늦기 전에 기후변화로 인한 경영 환경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로 인한 기회를 선점하는 지혜를 발휘할 것을 기대한다.

(참고로 CDP는 11월 1일 오후 2시 여의도 Glad호텔에서 한국 기업들에 대한 탄소경영 시상식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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