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수 서울대 산업공학과·기술경영경제정책대학원 교수
연료원별 외부비용 측정 요금·세제로 상대가격 손봐야

▲ 이종수 서울대 산업공학과·기술경영경제정책대학원 교수

[이투뉴스] 이종수(45)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최적의 에너지믹스 달성은 에너지정책의 가장 중요한 개념인데, 고유가 시대의 레거시(유산)로 너무 빠른 전기화(電氣化)가 남았다”면서 “통합적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연료원별 외부비용을 정확히 측정해 요금이나 세제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에너지 상대가격을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또 “전력시장가격(SMP)이 낮은 지금이 도매전력의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하기에 적기”라면서 “소비자에게 전기요금도 연료가격에 따라 등락할 수 있다는 시그널을 주는 선에서 도입하면 소매 부문의 시장기능을 높이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서울대 공과대학 연구실에서 가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다.

경력과 나이만 놓고 보면 아직 그는 학계 신진이다. 하지만 복잡다단하게 얽힌 사안을 풀어헤쳐 요점을 직격하고, 그걸 재론의 여지없이 매듭짓는 내공은 어느 중진 못지않다. 이 교수는 서울대 공대에서 에너지경제학과 기술경제·정책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고 모교 조교수, 부교수를 거쳐 2014년부터 산업공학과와 기술경영경제정책 협동과정 교수로 강단에 섰다.

각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 이정동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동 대학 허은녕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등과 함께 에너지·자원·정책·기술 분야 석학인 김태유(66) 서울대 교수의 제자 교수 중 일인이다. 실제 인터뷰이로 마주한 이 교수는 부드러운 인상과 달리 선이 굵고 무게 중심이 탄탄했다.

- 우리 산업이 변곡점 꼭대기에 있다. 에너지도 예외는 아니다.

“모든 산업이 어렵지만 사실 포트폴리오 자체는 굉장히 좋다. 2000년대 IT버블붕괴와 유럽발 경제위기를 잘 헤쳐나온 것도 그 덕분이다. 그런데 지금은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주요 산업이 모두 어려워졌다. 결국 이때 내부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고 국제무대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하는 게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에너지산업은 현재 구조가 그런 성장동력이 우리 경제를 견인해 이전으로 되돌릴 준비가 돼 있느냐하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저유가와 전력의 고(高)예비율은 외양상 일단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 에너지 산업의 내용과 내실을 들여다봐도 그런가

“물론 그렇게 보기 어려울 듯하다. 에너지시장 자체가 효율적이라 보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에너지정책의 가장 중요한 개념은 최적의 에너지믹스 달성이다. 그런데 고유가 시대를 거쳐 오면서 레거시로 너무 빠른 전기화가 이뤄졌다. 궁극적으로 전기로 가는 것은 맞지만 열수요와 동력수요가 너무 빨리 전기로 넘어가 다소비가 일어나고 효율에서 굉장히 불리해졌다. 에너지믹스를 근본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에너지상대가격 체계가 정립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물가안정 등의 측면에서 요금을 묶어놓은 가운데 전력생산 과정의 외부성이 소매요금에 반영되지 않았고, 그런 와중에 전기료와 비(比)전기에너지간 상대가격 관리도 안됐다. 경제학적으론 외부성 등을 세금으로 가격에 반영해야 수요가 조절되고, 수요감소를 막기 위해 공급자의 기술혁신도 일어난다. 비싸면 비싼대로 수요를 줄여야 하지만 그동안 유인이 없었던 거다.”

- 전력산업의 구조적 측면은 문제가 없나

“구조개편과 경쟁도입의 성과가 시장을 효율화 했느냐에 대해선 의견이 나올 수 있다. 개인적으론 큰 도움이 안됐다고 본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전력산업의 국제 경쟁력 강화 여부다. 영국의 경우 내부 효율화를 떠나 산업경쟁력이 완전히 무너졌다. 발전사가 모두 해외로 팔렸고 전후방 산업도 고사했다. 산업 구조개편을 통해 요금이 싸졌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산업 플레이어인 한전이나 발전사, 전후방 산업들이 얼마나 경쟁력을 키워 해외서 부를 창출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우리는 발전사 분할 이후 기술혁신 역량이 많이 떨어졌다. 해외시장서 유효한 경쟁이 가능한 규모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

- 현 정부가 추진 중인 발전사 등의 주식상장은 어떻게 보나

“긍정과 부정의 기능이 다 섞여있다. 우선 발전 6사를 한전이 소유하면서 해외에 나가 모기업과 경쟁하고 정부 경영평가도 같은 풀(Pool)에서 받는 것은 분명 기형적 체제다. 소유구조를 개선하는 시도로서는 의미가 있다. 다만 상장이란 것이 앞서 얘기한 측면으로 보면 (통합이나 재편에서) 좀 더 멀어지는 것은 조치일 수 있다.

- 에너지신산업 육성과 관련, 소매(판매)시장 개방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소매부문의 민간 개방은 신사업이라든지 그 분야에서 나올 수 있는 다양한 소비자 후생 증가 신규서비스의 토양을 다지는 측면에서 필요한 조치라고 판단한다. 단 정부가 소매가격을 100% 규제하는 방식으론 신사업이 출현하기 어렵다. 근본적으론 도매가격 기능조정에서 손을 떼고 장기적으론 가스처럼 도매가격 연동제를 시행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소매부문의 시장기능 제고와 신사업 육성이 동시에 가능해진다. 도매가격 연동제 도입은 시장가격(SMP)이 낮은 지금이 적기다. SMP가 상승하면 못한다. 다만 전면적으로 도입하기보다 장기적인 시그널을 주는 정도로 3~6개월마다 적용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아울러 한계에 달한 변동비반영(CBP) 제도도 어떤 식으로든 개선해야 한다. 가스발전은 오랫동안 노력한 연료믹스 다변화의 결과이자 과실인데, 이용률이 떨어지자 용량요금(CP)를 높이는 미봉책으로 가고 있다.”

- 한전의 역할과 기능은 이대로 문제가 없나

“한전은 공식적으론 TO(송전망사업자)지만 SO(계통운영자) 기능이 없는 반쪽짜리다. 에너지신산업도 한전 중심으로 가는 모양새지만 전기사업법에 묶여 너무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그런데 현실은 해외로 나가면 한전의 브랜드파워가 굉장히 좋다. 그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례로 원전수출은 한국수력원자력과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돼 있지 않다. 그런 여건속에 공기업으로서 정책에 충실하고 전력시장에서 일어나는 많은 리스크를 온몸으로 떠안는 처지다.”

- 에너지신산업에 대한 정부의 의욕이 대단하다.

“새로운 산업, 또는 시장을 창출할 때의 정부 역할이란 궁극적으로 시장의 위험성을 식별하고 그걸 정책으로 완화시켜 민간투자를 유인하되 새 시장에서 소비자를 보호하는 일이다. 세부 사업영역까지 지정해 정부 주도로 가면 곤란하다. 그동안 정부 주도로 추진된 스마트그리드나 지난 정부까지의 전기차 보급 등이 대표적 예다. 정부는 장기적으로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간다고 시장에 일관성을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민간투자가 일어나는데 지금은 그런 리스크가 그대로 노출돼 있어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하는 거다. 신산업의 핵심키는 민간투자 유인을 통한 시장창출이다.”

- 핵심 신산업인 ESS와 전기차 정책이 이 시점에서 짚고 가야할 점은 무엇인가

“ESS가 신재생에너지의 간헐적 부하형태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보급되는 것은 맞지만 더 나아가 ESS로 전체 부하를 평준화 한다는 건 위험한 발상이다. 과거 심야전력처럼 석탄이나 원전으로 ESS를 충전해 가스를 덜 쓰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캘리포니아는 부하 공백을 ESS 대신 가스발전으로 하고 있다. 신재생으로 가는 건 방향성에 있어 맞지만 전통 에너지들의 세부적 역할조정도 필요하다. 전기차는 100만대를 보급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도 좋지만 온실가스 감축효과와 세수 측면에서 잘 들여다보고 가야 한다. 자칫 기저부하를 높일 수 있고, 중국이나 우리처럼 석탄화력 비중이 높은 나라는 탄소감축량이 생각보다 많지 않을 수 있다. 세수 측면에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현재 유류세는 단일 제품에서 걷는 세금중 가장 비중이 크다. 그런데 전기차는 전부 면세인데다 충전인프라 확대나 구매보조금 지원은 세출이다. 단기간 대량 보급이 우리 재정에서 받아들여질 지 봐야 한다. 또 현행 면세체제를 계속 유지하면 나중엔 국민 저항 때문에 과세체계 편입이 힘들다. 대부분의 외국도 전기차를 비과세하기보다 과세체제 안에 일단 편입한 뒤 일정기간 유예하거나 최저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우리도 온실가스 배출량 기준으로 운송세제를 개편한 뒤 전기차를 그 안에 편입시켜 놔야 훗날 재정상황에 따라 세금 조정이 가능하다.”

- 한전의 전력그룹사 평가와 공기업 경영평가단에서도 위원으로 활동했다. 정작 공기업들은 경평의 역기능이 많다고 지적한다.

“경영평가는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이 공공성과 효율성을 갖고 대국민 서비스를 하는 지를 평가하는 최소 수단으로서 순기능이 있다. 다만 한전이나 발전사처럼 시장형 공기업들은 공공성과 수익성이란 상반된 목표를 부여받는 게 딜레마다. 어느 한쪽을 포기해야 하는 일인데, 결과적으로 난이도가 너무 높다. 중장기 목표는 공공성을 타깃으로 하되, 단기적으론 적정 수익성을 목표로 잡아야 한다. 공공성을 지속가능하게 뒷받침 해주는 게 수익성이다. 계량평가 수준의 적정성은 따져볼 문제다. 예를 들어 국내 발전사의 고정정지율은 전 세계 최저 수준이다. 그런데 비계획정지(불시정지)시 계량점수가 크게 깎이다보니 예방차원에 수명이 다되지 않은 자재도 조기 교체한다. 설비 신뢰도는 높아지겠지만 우리처럼 정지율이 낮을 땐 한계편익이 급감한다. 숨은 비용이 지불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에너지상대가격 조정이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방향은 어떻게 잡아야 하나

“손볼 때가 됐다. 과거 2차 에너지기본계획 수립 때 에너지 상대가격이 수요관리 수단으로 포함됐고, 그 결과로 유연탄 개별소비세 등이 반영됐지만 아직 미흡하다. 외부비용을 과세로 들여와야 하고, 정부 거버넌스도 재정비해야 한다. 현재는 수송이나 전력, 각 연료원간에도 장벽이 있고, 연료간 수급계획도 칸막이가 존재해 상대가격체계 조정이 어렵다. 정부의 통합적 거버넌스 구축이 선행돼야 하는 이유다. 단 상대가격 조정은 가격의 높낮이가 아니라 실제 원별 상대가격이 어느 수준이냐가 중요하다. 연료원별 외부비용을 정확히 측정하는 것도 시급하다. 지금은 한전이나 발전사가 지역자원시설세, 발전소주변지역지원법, 송주법, RPS(신재생공급의무화) 등으로 파편 부담해 장기적으로 그들의 지속가능한 성장이 어렵다. 원별로 정확히 외부비용을 측정하고 세제에 적절하게 반영해 결국은 소비자들이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궁극적으로 소비가 조절되고, 그것이 기후변화 대응이든 시장왜곡 해소든 출발점이 될 수 있다.”

- 장기 저성장 시대로 들어선 우리 산업 전반의 위기 돌파책은 없나

“우리나라 산업의 포트폴리오와 퍼포먼스는 나쁘지 않다고 본다. 여기서 무엇을 더 할 것인가 보다 여기서 어떻게 특화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가장 현실적으로 성장가능하고 우리 주력 포트폴리오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산업을 식별해야 한다. 그럴싸한 얘기들이 많이 나오지만 우리 경제규모에서 무언가를 자꾸 얹는 전략은 그리 좋지 않다. 정말 세계 1등을 할 수 있는 산업을 키우고 그걸 미래 먹거리로 삼아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결국은 기술혁신 역량이 필요하고, 정부가 R&D로 적절히 뒷받침 해줘야 한다. 과거와 같은 공공주도 압축성장의 시대는 끝났다."

- 차기 정부의 에너지정책을 위한 조언을 달라

“에너지산업은 정보통신이나 자동차 산업과 달리 호흡이 매우 길다. 원전을 예로 들면 계획부터 준공까지 최소 2개 정부, 길면 3개 정부를 거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정부는 과거 정부 정책의 역사적 맥락을 잘 파악해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판단보다 동적 효율성에 입각해 어떻게 하면 에너지시장이 정상화되고 미래 통일시대나 동북아 시대까지 대비할 수 있는 지를 고민해야 한다. 과거 정책의 틀 안에 갇히란 얘기가 아니라 맥락을 잘 이해한 상태에서 합리적으로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 李鍾受. He is … 부산동고등학교, 서울대 공과대학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자원공학과를 졸업. 동대학 대학원에서 에너지경제학 석사, 기술경제·정책학 박사학위 수료. 서울대 공학연구소 객원연구원을 거쳐 산업공학과 조교수 및 부교수를 역임. 현재 서울대 공과대 산업공학과 및 기술경영경제정책대학원 교수. 약사 출신 부인과의 슬하에 초등학생, 고등학생 두 아들을 두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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