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80∼90년대, 서울 등 수도권에서는 흰색 와이셔츠(드레스셔츠)를 하루만 입어도 소매와 목둘레가 까매진다는 말이 많았다. 버스와 트럭에서 나오는 시꺼먼 매연과 굴뚝에서 내뿜는 오염물질 때문에 흰색 셔츠를 하루 이상 입을 수 없었다는 얘기다. 당시 주범으로 자동차(대형경유차) 배출가스가 지목됐고, 이 외에도 다양한 오염물질들이 모인 스모그가 하늘을 덮었다.

매연과 스모그에 대한 시민들의 원성이 커지자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내놨다. 수도권대기환경개선특별법을 만들어 청정연료 사용을 의무화하는 등 강력한 규제에 들어간 것이다. 특히 자동차 매연을 없애기 위해 CNG버스를 도입, 새로 개체하는 모든 버스는 CNG로 연료를 전환하도록 했다. 화물자동차 역시 노후차량에는 매연저감장치를 달았고, 이후 유로시리즈로 불리는 경유차 오염물질 배출기준을 매년 강화해 나갔다.

이런 조치가 계속되면서 2000년대 들어서는 스모그 얘기가 쏙 들어갔다. 시민들은 서울 공기가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는 평을 쏟아냈다. 도쿄와 파리, 런던 등 선진국엔 미치지 못해도 최소한의 생활환경은 갖춰졌다고 인식하는 사람도 늘었다. 실제 당시 봄철 황사로 인한 말썽을 종종 있었지만, 황사를 제외하면 소위 말하는 매연과 스모그가 대폭 감소한 것도 사실이다.

흰색 와이셔츠를 며칠 입을 수 있느냐는 입방아가 사라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영흥도를 비롯한 인천과 수도권 바로 아래에 있는 당진권역에 대규모 발전시설이 들어섰다. 또 ‘청정디젤’이라는 미명아래 경유차가 대폭 증가, 경유차 비율이 전체 차량의 40%를 넘어섰다. 여기에 중국의 산업발전이 가속화되면서 황해연안에 지어진 수많은 공장에서 내뿜는 오염물질이 편서풍 영향을 직통으로 받아 우리나라로 대거 몰려왔다.

또다시 국민들은 아침에 일어나 날씨만이 아닌 공기질 예보까지 확인한 후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과거 매연이나 스모그로 불렸던 단어가 이제는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눈에 보이는 입자상물질은 대폭 줄어들었지만, 오히려 입자가 작아지면서 건강에 더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연구결과도 등장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미세먼지를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부 역시 미세먼지에 대한 국민 원성이 높아지자 과거처럼 다양한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미세먼지 발생 원인에 대해선 여전히 미스터리가 이어지는데 반해 각종 ‘탓’은 난무하고 있다. 현재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소재는 ‘중국발’이다. 미세먼지 대부분이 중국서 넘어오는데 왜 따지지도 못하느냐는 원성이 쏟아진다. 특히 최근 들어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의 경우 국외영향이 80%를 차지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은 더 확산되고 있다. 
 
‘석탄발전소’와 ‘경유차’에 이어 최근에는 ‘바람탓’도 등장했다.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지구 북반부의 바람이 현저하게 줄었다는 이론이다. 바람이 불어 미세먼지를 흩트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미세먼지를 없애는데 가장 중요한 기후요인 중 하나는 비라는 말도 곧잘 한다. 주기적으로 비가 내려주면 미세먼지 농도를 대폭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가뭄이 들면 ‘비탓’이 등장할 날도 머지않았다.

앞서 거론한 가설들은 모두 미세먼지의 실제 원인이기도 하기에 무조건 ‘탓’으로만 매도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확한 원인분석과 발생을 줄이려는 노력보다 외부요인을 끌어와 자꾸 핑계를 대려는 모습이 문제다. 분위기에 따라 특정요인을 '죽일놈'으로 몰아가는 경향도 보인다. 미세먼지는 ‘남탓’과 '한놈만 패는 것'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채덕종 기자 yesman@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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