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배 건국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박종배건국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박종배
건국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이투뉴스 칼럼 / 박종배] 정부는 지난 주 에너지위원회, 이번 주 전력정책심의회를 거쳐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의 착수를 공식화하였다. 올해 1월에 10차 전기본이 공표되었으니, 6개월 만에 차기 계획의 수립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11차 계획의 조기 착수는 작년에 전 세계가 경험한 에너지 위기가 다시 올 경우를 사전에 대비하고, 호남지역을 시작으로 육지계통에서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신재생 출력제어와 원전 감발을 최소화하며, 한전의 천문학적 적자를 극복하기 위하여 전력공급 비용을 획기적인 축소하며, 지난 정부가 추진한 탈원전 정책의 폐기에 따른 신규원전 건설과 원전 생태계 복원과 같은 급격하게 변화한 전력산업 환경을 적시에 반영하기 위함으로 판단된다.

유사한 사례로 4차 계획(2008.12.)이 수립된 직후에 예상보다 높아지는 전력수요, 계획된 발전설비의 건설 지연으로 1년 만에 간년도 계획(2009.12.)을 수립한 것을 들 수 있다. 

 지금은 많은 이들의 기억에서 희미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01년 전력산업구조개편 직후에 수립된 1차 전기본(2002.8.), 2차 전기본(2004.12.)은 그 이전의 정부와 한전 중심의 장기 전력수급계획과는 성격이 매우 달랐다. 1차 전기본에서는 ‘전기사업자의 자율적인 사업계획을 바탕으로 시장기능에 의한 전력수급 안정을 도모하되, 구조개편 이행기의 수급안정 대책 강구’를 기본 방향으로 설정하였다.

유사하게 2차 전기본에서는 ‘전기사업자의 자율적인 사업계획을 토대로 기본계획 수립, 장기 전력수급 안정을 위한 장기 수급전망 정보의 제공’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구조개편 이전에 정부와 한전이 수립한 장기 전력수급계획이 공익성, 독점성, 강제성에 기반을 둔 반면, 1차 및 2차 계획에서는 전기사업자(발전), 거래소(수요예측), 한전(송전망, 수요관리), 정부(정책) 등 다양한 주체가 각기의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과거 대비 수익성, 경쟁성, 자율성이 훨씬 강조되었다.

20여년 전에 수립된 1차 및 2차 전기본이 현재 미국, EU 등 대부분 선진국이 지향하고 있는 장기 전력수급 전망(Outlook)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당시의 발전설비 계획은 사업자의 다양한 건설 의향을 종합적으로 취합하고 관련 정보를 시장에 제공하는 것이었다. 다만, 정부는 적정 신뢰도를 확보하고 온실가스 배출 제약 등 환경 목표를 만족하는 비용최소화 계획, 즉 기준계획을 동시에 제시하여 소비자와 사업자에게 정보를 제공하였다.

한편, 노무현 정부의 중반기에 수립된 3차 전기본(2006.12.)부터 정부의 정책 목표가 직접적으로 수급 계획에 반영되기 시작하였다. 발전사업자가 제출한 다양한 건설 의향은 정량 및 정성 평가를 거쳐 정책 목표와 부합하는 설비에 한하여 수급계획에 반영하고 있다. 즉, 소비자와 사업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전망의 성격에서 구조개편 이전의 중앙정부 계획으로 다시 회귀한 것이다. 이후의 계획, 즉, 4차 전기본에서 올해 발표된 10차 전기본까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정부의 정책을 직접 반영하고 진입 규제를 하고 있다.  


시장 기능에 바탕을 두는 장기전망 방식과 정부 중심의 중앙계획은 각기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중앙계획의 가장 큰 문제점은 불확실한 미래의 전력수요를 정책적 의지가 반영된 수요관리가 직접 반영되는 ‘목표수요’로 단순화되는 점과 공급 측면에서 정부의 성격에 따라 전원 믹스가 정치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과거 계획의 수요 실적과 예측 치을 비교해 보면 1차부터 4차, 9차(2020.12.)에서는 저예측, 2011년 9‧15 순환정전 이후에 수립된 6차(2013.2)와 7차(2015.7.) 계획에서는 고예측이 관측되었다. 어차피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시장 중심의 계획에서는 투자자들의 다양한 관점이 반영되어 미래 전력수요 불확실성이 상대적으로 상당히 희석될 수 있다. 비록 정부가 미래 전력수요를 비관적으로 제시하여도 수요 성장을 낙관적으로 판단하는 발전사업자는 있고 이로부터 공급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즉, 수요와 공급의 장기 균형이 시장 체계에서는 스스로 찾아진다는 것이다. 한편, 중앙계획이 가지는 공급 측면에서의 한계를 6차의 상당한 신규석탄의 반영, 8차(2017.12.)의 탈원전, 9차의 대대적 탈석탄에서 경험한 바 있다.

 
 정부는 민간과 공기업의 미래 투자를 일일이 재단할 것이 아니라, 기업의 합리적인 판단에 맡겨 두어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전력시장에서의 가격 결정을 시장원리에 맞도록 하고, 투명한 배출권 할당과 탄소비용의 부과로 저탄소 믹스를 유인하며, 원전에 대해서는 신규 부지와 고준위 폐기물 처분장의 확보를 지원하고, 신재생은 공급자 중심의 RPS 정책에서 수요자 중심의 직접 PPA 기반의 RE100으로 대폭 전환하며, 경직성 자원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에너지저장 장치를 유인할 수 있도록 에너지 시장과 보조서비스 시장을 선진화하고, 무엇보다 튼튼한 송배전망을 비용효과적으로 구축하는 것이다. 11차 계획에서는 원자력, 신재생, LNG 및 수소, 양수와 배터리 투자에 대한 발전사업자의 의향이 최대한 반영되는 시장 중심의 계획과 전망으로 선회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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