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효재 COR Energy Insight 페이스북 지식그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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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투뉴스 칼럼 / 권효재] 2024년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난 한 해를 평가하고 새해 목표를 세웁니다. 평소 해야지 하면서도 실천하지 못한 일들과 희망사항들을 되새깁니다. 살을 빼자, 책을 읽자,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갖자, 술담배를 끊자 등이 단골 손님입니다. 매년 비슷한 새해 소망과 목표는 이들을 정작 매년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비만과 성인병의 문제는 다 알지만, 야식의 유혹은 강렬하고 며칠 운동해도 체중은 쉽게 줄질 않습니다. 한 달 10% 감량이라는 과감한 목표를 세우고 무리한 금식과 운동으로 건강을 해치기도 합니다. 생활 습관으로 고착화된 문제를 단숨에 풀려고 하다 더 악화되는 경우도 흔합니다. 무리한 다이어트와 요요 현상을 반복적으로 겪으면서도 새롭게 유행하는 다이어트 비법에 다시 의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난 20년 동안의 우리나라 온실가스 감축 이행 과정은 우리 다이어트 노력과 비슷합니다. 국제행사에서 대통령이 야심찬 목표를 선언하면, 이후 이행 전략과 정책들이 수립되고 법이 만들어 지지만, 감축 실적은 미미한 패턴이 여러 차례 반복되었습니다.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이상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자는 2030 NDC 계획 역시 매년 4.2%를 감축해야 하므로 무리라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2020년 코로나 사태로 2018년 대비 -9.8%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면서 잠깐 희망이 보였지만 2021년에 배출량은 늘었고, 이후 배출량 감축은 미미합니다. 이제 2030 NDC 목표를 달성하려면 매년 5.4%씩 감축을 해야 해서 목표 달성이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전세계적으로도 2030년까지의 실제 감축량은 목표인 40%가 아닌 4% 미만에 그칠 것으로 UN은 예측하고 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어려운 건 현대 문명이 화석연료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자고 장기간 많은 노력들이 진행되었으나, 2000년이나 2010년이나 2023년이나 인류는 1차 에너지의 80% 이상을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석탄, 석유, 천연가스가 없이는 제품 생산과 에너지 공급은 물론 비료 공급과 농기계 사용이 불가능하므로 먹고 사는 문제가 화석연료의 안정된 공급에 깊이 의존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화석 연료에 깊이 의존하는 현대 문명이 탄소중립을 지향하는 건 정상 체중은 60kg이지만 지금은 체중이 100kg인 고도비만 환자가 다이어트를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유전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고도비만은 나쁜 식습관, 부족한 운동 등의 생활습관에서 기인합니다. 하지만 살을 빨리 빼고 싶다고, 1년만에 40kg을 빼고 싶다고 하여 당장 하루 한끼만 먹고, 운동을 하루 3시간씩 한다면 성공 가능성이 매우 낮을 것입니다. 강철 같은 의지력으로 노력한다고 해도 체력적으로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어떻게 해야 성공할지 누구나 조언할 수 있습니다. 야식을 끊고 하루 3끼 건강식을 먹어라,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게끔 점차 운동량을 늘려라 등. 그리고 조언대로 주중에는 실천하더라도 주말마다 치킨과 피자로 폭식을 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만약 소위 효과를 알 수 없는 다이어트 약에 의존하면서 식사 패턴과 생활 습관을 바꾸지 않는다면 역시 성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빠짐없이 상식적인 방법을 실천하는 것이 당장 눈에 띄는 효능은 없어 보이더라도 가장 빨리 성공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현대 문명 사회가 1년 만에 온실 가스 배출량을 10% 이상 줄일 수 있는 기적의 기술은 없습니다. 재생에너지, 원자력, 수소 등 어떤 기술이던 대규모로 투자하더라도 1년에 온실가스 배출을 2~3% 줄이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다행히 그간의 노력과 시행 착오를 통해 탄소중립의 방법론과 이행 전략에 대해 많은 부분이 규명되었습니다. 광범위한 전기화를 통해 에너지 효율을 근본적으로 높여야 하고, 무탄소 전기의 공급을 대폭 늘려야 합니다. 화석연료와 화석원료에 의존하는 산업 생산 공정을 점진적으로 개선하면서 물질 소비량을 줄여 나가야 합니다.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쓰지도 먹지도 않고 그대로 버리는 낭비를 막아야 합니다. 이러한 방법론과 이행 전략은 기술 개발과 재정 투자를 통해 효과를 내겠지만, 무엇보다 삶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현재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입니다. 고도비만 환자가 식습관도 생활 습관도 바꾸지 않으면서 기적의 다이어트 약을 기대하는 것처럼 허망한 시도입니다.

물론 우리의 현 소비 생활에는 다 그럴듯한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한 겨울에도 집에서 반팔과 반바지 차림으로 지내는게 쾌적할 수 있습니다. 매 끼니 일회용 포장 용기에 담긴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게 편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살면서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탄소중립을 달성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원자력 발전소를 더 짓던 태양광 발전소를 더 설치하던 새로운 투자와 기술 개발로 일부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현재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탄소중립은 불가능합니다. 일상 생활의 모든 결정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의식해야 하고, 낭비를 줄이고 불편을 감수해야 합니다.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고, 집에서 음식을 해먹고, 작고 오래된 차를 계속 쓰고, 기차로 여행을 다니는 식의 변화는 불편하고 어색하지만, 필요한 일입니다. 소비자이자 유권자인 우리 모두가 익숙한 소비 생활에서 의식적으로 벗어나 변화를 추구해야만 기업도 정부도 변화를 추구할 수 있습니다. 

새해만큼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좋은 때는 없습니다. 비록 작심삼일에 그치더라도, 기후위기를 의식하고, 행복하고 안전한 미래를 위해 노력을 시작할 시기입니다. 아니 작심삼일이라도 해야 합니다. 비록 삼일 후 예전 상태로 돌아가더라도 자꾸 시도하고 노력이라도 해야 0.1%라도 체중이던 온실가스 던 줄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새해 소망 목록 중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변화가 포함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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