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실수·설계결함 겹친 ‘대형사건說’ 확산
원인불명 터빈정지 후 원자로도 연쇄 정지
"독립적 안전규제체계 마련해야 국민 신뢰"

신한울 1호기와 위치도 ⓒE2 DB
신한울 1호기와 위치도 ⓒE2 DB

[이투뉴스] 국내에서 가장 최근 건설된 1400MW급 원자력발전소가 상업운전 1년여 만에 석연찮은 불시 고장정지로 멈춰서 두 달째 개점휴업 사태를 맞고 있다. 재작년 12월 준공된 ‘국내 27번째 원전’ 신한울 1호기 얘기다. 발전업계 안팎에서는 인적실수와 설계결함이 겹친 대형사건이어서 규제당국 결과 발표가 지체되고 있다는 풍문이 돌고 있다. 

25일 원전업계와 당국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난 1월 2일 오전 10시 42분 정지한 신한울 1호기의 공식 고장원인은 ‘아직 조사중’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파견한 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1차 조사가 최근 완료돼 조만간 사무처가 원안위 위원들에 서면보고를 올리는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늦어도 내달 두 번째 주에는 원안위 차원의 공식 브리핑이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드물지 않은 원전 고장정지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이 사건의 특수성 때문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의 당일 상황기록을 살펴보면, 한창 전력을 생산하던 터빈발전기가 정지한 건 여자기차단기가 ‘개방(OPEN)’ 상태로 작동해서다. 누군가 정상 동작하는 차단기를 건드려 터빈발전기가 멈추도록 원인을 제공했다는 뜻이다. 사실로 확인되면 원전에서 발생한 전형적인 ‘휴먼에러’에 해당한다.

일각에선 원전이용률을 극대화하기 위해 한수원이 규제당국 승인을 얻어 올해부터 처음 시행하는 ‘원전 가동 중 검사’ 과정에 정비원 착오로 설비 오조작이 이뤄진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규제당국 한 관계자는 “아직 확인해 줄 조사결과는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그 문제(휴먼에러)에 대해서도 정리하는 과정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원자로 출력을 일정수준으로 안정화하지 못하고 결국 완전 정지시킨데 대해서도 뒷말이 무성하다. 사건 당일 한수원은 터빈발전기가 정지하자마자 비상절차서대로 원자로 출력을 수동으로 낮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2시간 만에 원자로출력이 40% 아래로 떨어져 오후 7시 39분 결국 원자로가 완전 정지했다. 가스렌지로 비유하면, 화력을 줄이려고만 했는데 적절한 불조절에 실패해 아예 불꽃을 꺼뜨린 셈이다.

전문가들은 ①원자로 출력이 감소하면서 제논이 축적돼 출력조절에 실패했거나 ②비상절차서 수행 과정의 추가 인적 오류 발생 ③또는 핵연료 주기관리나 연료관리 미흡에 의한 주기말(노심말) 상황 ④첫 완전 국산화 원전 초도설비의 설계결함이나 그로 인한 연쇄 파급고장 등을 원자로 정지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 정황이 모두 맞아떨어진다면 가장 최신예 원전에서 인적실수와 설비결함이 동시에 발생해 초유의 고장정지가 발생한 셈이다. 한수원은 이에 대한 모 국회의원실 질의서에 “발전기 부속설비 정지로 인한 터빈정지 후 주기말 원자로 특성에 따른 출력감소로 원자로가 정지했다”고 회신했었다.

안전규제기관 출신 한 인사는 “한때 소내 블랙아웃이 발생했고, 그 때문에 비상디젤발전기까지 동작해 백색비상이 발령됐다는 풍문까지 나왔지만 한수원이 부인한 상태”라며 “보통 1~2주면 윤곽이 나오는 사고 원인조사 결과가 한 달 반이 넘도록 공개되지 않으면서 의혹만 더 증폭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신한울 1호기는 당초 1월 중순으로 예정된 예방정비를 앞당겨 수행하면서 원자로냉각재펌프(RCP), 증기발생기, 저압 및 고압터빈, 각종 계측제어시스템 등의 핵심설비를 완전분해(O/H) 수준으로 전면 정비하고 있다. 이 원전은 그간 미자립 영역으로 남아있던 RCP와 계측제어시스템까지를 국산화 한 최초의 국산 원전으로 홍보돼 왔다.

전문가들은 독립적인 원자력 안전규제체계를 마련해야 안전규제의 투명성을 높이고 불필요한 의혹을 예방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박종운 동국대 에너지전기공학과 교수는 "문재인정부때부터 줄기차게 원안위에서 원자력안전기술원을 독립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왔으나 탈원전에 매몰돼 실질적인 규체체계를 마련하지 않았다"면서 "KINS가 원안위에 종속돼 있는 상황에선 원전 안전 감시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아직 사고등급을 잠정 '0등급'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정확한 등급은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외부인사가 판단해야 한다"며 "원전 현장 감시단도 한수원으로부터 비용을 받아 운영되고 있고 전문가도 부족하다. 프랑스 IPSN처럼 권한을 가진 독립 민간규제기관을 운영해야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 소장은 “정작 원자력 안전에 대한 큰 사건이 발생해도 과거 고리 2호기 소내정전 은폐사건처럼 내부서 작정하고 쉬쉬하면 알 수 없는 구조"라면서 "원안위가 스스로에게 주어진 규제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산업부에 그 기능을 넘겨 전적으로 책임지도록 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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