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다들 연구개발(R&D) 비용 축소로 앓는 소리를 내고 있는데 원자력은 전혀 그런 상황이 아닌거 같아요. 울진 원자력수소 국가산업단지를 비롯해 관련 프로젝트도 속도를 내고 있죠. 협업해 무엇을 같이 하려고 해도 원자력이 워낙 갑(甲)의 위치에 있어 다가서기 힘들 정돕니다.”

최근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수소가 원전 건설을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를 나타냈다.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도 원자력이 우선 발언권을 가지고 있고, 나머지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전언이다.

당초 정부는 2019년 내놓은 1차 수소경제로드맵을 통해 우선 부생수소를 활용해 그린수소시장을 형성하고, 2040년에는 생산가격을 kg당 3000원까지 낮춘 그린수소를 1년에 526만톤 공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1차 수소경제로드맵에선 원전을 활용해 수소를 생산한다는 내용은 한 줄도 찾아볼 수 없었다. 

원전을 수소에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2021년 청정수소의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를 두고 '수소경제 육성 및 수소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수소법)' 개정안이 장기간 계류됐던 시기부터다. 

당시만 해도 원전수소를 청정수소로 인정할 것인지, 인정하지 않을 것인지에 대해 논쟁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어느순간 원전에서 생산한 수소에 핑크수소라는 명칭을 붙이더니 이제는 퍼플, 레드 등 여러 색으로 원전을 활용해 생산한 수소의 개념을 확장하는 분위기다. 

기존에는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생산한 전기를 물분해해 만든 그린수소와 천연가스 개질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포집·저장해 탄소배출을 줄인 블루수소만 청정수소로 분류했다.

청정수소 이외에 색을 분류한 수소는 천연가스 개질 혹은 석유화학공정서 발생한 그레이수소, 갈탄·석탄을 태워 생산한 브라운수소로 불리고 있다.

기존 수소를 생산방식에 따라 단순하게 나눈 것에 비해 원전수소는 색이 다양하다. 흔히 원전수소는 핑크수소의 개념으로 알려져 있다. 그린(재생에너지), 블루(탄소포집) 등 앞에 붙는 색은 친환경성을 나타낸다. 이를 감안하면 핵분열과 관련한 원전은 레드가 적합할 듯하나 핑크로 색깔을 희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여기에 원전수소 개념에 대해 얼마나 많은 관계자가 알고 있는지, 이 분야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전문가가 누구인지 등 불명확한 부분이 너무 많다는 문제도 있다. 당장 핑크, 퍼플, 레드로 나뉘어진 원전수소에 대해 질문을 던져도 그게 뭐냐는 반문이 돌아오는 경우가 태반이다. 원전수소를 블루수소처럼 과도기에 사용한다기엔 정해진게 없는 수준.

이쯤되니 왜 수소가 기후위기 대응방안 열쇠로 떠오른지 이유를 잊어버린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수소는 원전을 늘리기 위한 수단이 아닌 에너지캐리어로서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세계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전환 과정을 밟아가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에너지전환에 동참해 점차 보폭을 넓히고 있다. 이 과정에서 수소가 등장한다. 재생에너지 간헐성 문제 해소를 위해 수전해한 후 수소로 저장·운송하자는 것이 본래 의도다. 

다만 우리나라는 원자력산업 선도국가 도약을 위해 이 분야에 대한 프로젝트를 늘리고 있다. 예산이 축소된 수소는 울며 겨자먹기로 원자력과 한배를 탈 수밖에 없게 됐다. '원자력이 수퍼갑'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세계적으로 친원전과 탈원전으로 나뉘어 다툼이 있지만, 수소경제로의 전환에 대한 반대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다. 수소는 에너지전환을 선언한 모든 국가가 어떻게 늘릴 것인지 고민하는 에너지원이다. 이를 참고해 우리나라도 에너지전환과정에서 가야할 방향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친환경으로 세계가 에너지전환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핵분열(원전)의 색을 아무리 엹게 칠해도 근본은 바뀌지 않는다. 수소는 원전을 위한 색칠놀이 도구가 아니다.

유정근 기자 geun@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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