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본격적 산업규제 임박…공정 혁신서 성장동략 발굴해야

"앞으로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으면 사업을 포기해야 한다는데 실감도 안되고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모르

겠습니다. 당장이야 큰 일이 있겠습니까. 정부가 어떤 대책을 세워주지 않을까요?" (모 철강업체 대표)

 

"지난 40~50년간 해 온 에너지 절약, 효율화 정책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당장 구체적 감축계획을

실행하지 않으면 국가경쟁력 떨어지고 큰 위기가 올 것입니다" (이재훈 산업자원부 차관)

 

기후변화로 인한 국제사회의 온실가스 감축 압력이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가운데 이를 실감하지 못하는

산업계와 규제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정부가 동시에 고민에 빠졌다.

 

산업계는 '산업혁명 이후 최대의 위기가 닥칠 것'이란 전망에도 뾰족한 대응책을 찾지 못하고 있고, 정부

는 올해부터 당장 감축계획을 실천에 옮겨야 할 상황임에도 파급효과를 우려해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 답안없는 온실가스 감축 = 조석 산자부 에너지정책기획관은 최근 에너지업계 사장단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 주도든, 포스트교토 체제든 올해 우리나라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수립하고 발표해야 한다는 강한 압력을 받게 될 것"이라며 "온실가스 다배출 제조업 비중이 높은 우리 실정상 이 부분에서 감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우리 산업을 이끌고 있는 철강, 에너지, 반도체, 자동차 등의 제조산업을 염두해 두고 꺼낸 말이다. 그러

나 정작 문제는 '온실가스 감축'이란 명제가 아니란 사실.

 

그는 "수송이나 가정 부문은 국민생활에 직접적 불편을 주기 때문에 (규제가) 쉽지 않다. 산업 부문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데, 사업장내 온실가스 배출량은 이미 많이 줄인 상태라 현 생산량을 유지하면서 더 이

상 감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지금 여건에서 온실가스 감축 압력이 본격화되면 생산량을 줄이는 극단의 처방밖에 별다른 해법이 없다

는 것을 의미한다. 산자부 고위관계자들에 따르면 정부는 이미 국가가 관리 가능한 감축잠재량 파악에해 일부 데이터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 기획관의 설명대로라면 정부가 파악한 감축잠재량은 산업계의 생존을 위협하는 '살생부'나 다름없다.

 

조 기획관은 "새 정부가 이 구조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지가 숙제"라면서 "당장 정부와 산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실행계획을 수립하지 않으면 정말 손 쓰기 힘든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산자부, 산업보호에서 산업규제로 = 그렇다면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산자부는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일까? 이에 대한 궁금증은 이재훈 차관의 발언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이 차관은 지난해 말 본지가 주최한 <에너지자원CEO조찬포럼>에서 "그간 우리는 (온실가스 감축에) 소

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감축 목표를 수립하면 당장 산업계에 부정적 영향이 온다는 이유로 반대해 왔다. 

산업계 입장을 대변하는 위치에 있었다"고 말했다.

 

산업 진흥과 규제라는 양날의 칼을 손에 쥔 정부가 어떤 딜레마를 겪어야 했는지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

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 차관은 "이제 산자부는 전향적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감축목표도 수립하고 감축 계획을 추진

하기 위해 '기후변화 대응 신국가전략'을 마련하고 탄소시장 활성화, 탄소펀드 설립, 신재생에너지 육성

에 나서고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여기에 수반되는 문제가 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에 대한 국민적 이해와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차관은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데는 반드시 비용이 수반된다. 경제적 비용 외에 사회적 수용성이 뒤따

라야 한다"면서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기후변화를 위기보다 기회로 보는 만큼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려는

산업체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위기를 알아야 기회도 보인다 = '실감도 안되고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산업계를 향해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기업의 리스크를 명확히 인지하고, 효과적인 대응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위기'와 '기회'가 무엇인지부터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안영환 연구위원은 최근 '기후변화 성장동력화 사례분석 연구'란 제목의 수시연구보고서를 통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자는 수사는 무성했지만 어떤 위기와 기회가 존재하고 어떻게 전환할 수 있는지는 논의되지 않았다"며 "새로운 기회는 위협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고 조언했다.

 

안 위원은 "골드만삭스나 GE와 같은 선진기업 모두 기후변화를 중요한 리스크 관리 대상이자 차세대 성장동력의 일환으로 간주하고 있다"며 "효율적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온난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산업 및 사업기회가 창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안 연구위원이 이번 연구에서 위협요소로 꼽은 것은 크게 정부규제, 이해 관계자의 압력, 경쟁환경 변화, 기후변화의 물리적 영향 등 4가지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내부 공정과 제품에 대한 공급자 규제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직접 산업계에 규제수단을 강구하거나 탄소세를 물리는 방안도 예상된다. 아울러 이해 관계자가 온실가스 규제에 반하는 사업부문의 투자를 외면하고, 이로 인해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는 타격도 예측된다.

 

여기에 소비자의 선호도가 달라지고 신제품과 신기술이 출현하는 등 변화가 일면서 기업간 경쟁환경도 확연히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기온이 상승하고 자연재해가 늘어나는 등의 물리적 영향도 사업에 리스크로 등장할 전망이다.

 

예를 들면 평년기온이 상승하면서 도시가스나 집단에너지 매출이 줄어드는 최근 상황이 이에 해당된다.

 

안 위원은 "가치사슬 전과정에 대한 배출량을 산정하고 관리해 제품, 서비스, 공정혁신을 추진하다 보면 새로운 사업기회로 연결될 수 있다"며 "기후변화를 포함한 종합적 기업 사회책임 활동을 강화하고 선진 사례를 발굴ㆍ분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중장비 업체인 캐터필라사(Caterpillar)는 온실가스 규제로 인한 새로운 시장 기회를 탐지해 고효율 저탄소 디젤엔진, 대체에너지 회수 터빈, 폐열회수 CHP 등에 막대한 투자비를 쏟아붓고 있다.

 

그런가하면 월마트는 소비자들의 평판리스크 관리를 위해 매장의 에너지사용량을 30%까지 줄이는 3개년 계획을 실행하고 있다. 위기에 대한 탈출구와 기회는 산업체 자신의 손에 들려있다는 선진국들의 '컨닝페이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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