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5kV 신고리~북경남 고장 시 5GW 대정전
한전 추진 무효전력보상장치로는 대응 불가

새울원전 3,4호기(옛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 전경 ⓒE2NEWS DB
새울원전 3,4호기(옛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 전경 ⓒE2NEWS DB

[이투뉴스] 문재인정부에서 공론화로 건설재개가 결정돼 내년과 이듬해 준공 예정인 새울원전 3,4호기(옛 ‘신고리 5,6호기’, 설비용량 각 1400MW) 가동에 적신호가 켜졌다. 대형원전을 특정 지역에 몰아 건설하면서 송전선로 고장 시 발생할 수 있는 광역정전 대책을 사전에 고려하지 않아서다. 상황이 이런데도 윤석열정부는 11차 전력수급계획을 통해 기존 원전부지 등에 새 원전을 추가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17일 <이투뉴스>가 한국수력원자력이 2020년 6월 작성한 ‘신고리 5,6호기 준공대비 고리-새울본부 소외전력계통 건설 기본계획’ 문건을 입수해 확인해보니 새울 3,4호기 준공 이후 765kV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에서 이중고장이 발생하면 신고리 1~5기(6200MW)가 동시 탈락(정지)해 2011년 발생한 9.15 순환정전의 5배 규모(5GW) 광역정전이 발생할 수 있다. 

원전에서 생산된 전력이 빠져나갈 출구를 찾지 못하면, 전력망과 발전기 사이의 전기적‧기계적 평형상태가 무너져 과도안정도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무거운 짐(부하)을 끌던 말(발전기)과 수레 사이의 팽팽한 끈이 끊어지면, 안간힘을 쓰던 말이 앞으로 나가떨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런 위험은 송전능력을 벗어난 원전 건설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보고서에 의하면, 고리‧새울 원전단지의 발전용량은 새울 1,2호기(신고리 3,4호기)까지 준공된 현재 7350MW에서 새울 3,4호기 준공 이후 1만150MW로 1.4배 증가한다. 또 765kV 송전선로를 통해 경북으로 흘러가는 전력량도 2772MW에서 4638MW로 1.7배 는다. 이렇게 되면 765kV 선로 고장 때 탈락하는 원전이 현재 1기 1400MW에서 5기 6200MW로 증가해 대정전을 피하기 어렵다는 게 당국의 분석이다.

보고서는 765kV 송전선로 이중고장이 전압 급락과 송전용량 급감을 초래하고, 이어진 대규모(6GW) 발전기 탈락이 계통 주파수를 59Hz 이하로 떨어뜨려 전국수요의 6%에 해당하는 부하를 차단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9.15 순환정전 당시 차단량의 5배 규모다. 또 이에 대응해 한전이 인근 신양산‧북부산‧신울산변전소 및 고리통합스위치야드에 모두 2000MVAR 용량의 무효전력보상장치를 설치하는 방안을 수립했다고 밝혔다.

실제 한전은 2018년 수립한 8차 장기송‧변전설비계획에 이런 투자계획을 반영해 검토한 것으로 확인됐다. 밀양 송전탑 사태가 발생한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송전선로 건설이 곤란한 만큼, 기존 변전소 구내에 설치할 수 있는 FACTS(유연송전시스템)로 계통을 보강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한전 관계자는 “기존 정책대로 고리원전이 단계적으로 폐지되면 설비보강이 불필요했는데, 갑자기 정책이 바뀌어 폐기직전에 다시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수호기 원전이 몰린 원전단지는 전력망 고장 시 대규모 발전기 탈락과 그에 따른 부하차단 위험이 높다. 정부는 11차 전력계획을 통해 백지화 원전부지와 기존 원전 단지 등에 추가로 신규 원전을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사진은 울진원전 ⓒ이투뉴스DB_울산환경운동연합 제공
다수호기 원전이 몰린 원전단지는 전력망 고장 시 대규모 발전기 탈락과 그에 따른 부하차단 위험이 높다. 정부는 11차 전력계획을 통해 백지화 원전부지와 기존 원전 단지 등에 추가로 신규 원전을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사진은 울진원전 ⓒ이투뉴스DB_울산환경운동연합 제공

진짜 문제는 이런 대책으론 계통사고 시 광역정전을 막을 수 없다는 점이다. 전력계통 전문가들과 당국에 따르면, 무효전력보상장치로는 신고리 원전단지의 과도안정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고장파급방지장치(SPS, special protection system)를 달아 사고 시 미리 일부 발전기를 탈락시켜 나머지 발전기를 안정화하는 방법이 있지만, 새울 3,4호기까지 모두 9기의 원전이 들어서는 고리단지에서 SPS로 효과를 보려면 2기 이상을 정지시켜야 한다. 원전 2기를 동시에 세우면 주파수가 기준치 이하로 떨어져 일부 정전이 불가피하므로 사실상 동원가능한 수단이 아니다.

전영환 홍익대 전기공학부 교수는 "현재로선 송전선로 추가 건설이나 원전 운전 정지 외에 안정화 방법이 없다"면서 "더구나 향후 울산지역의 부유식 해상풍력이 고리원전 인근인 신온산 및 동울산 변전소로  접속될 경우 좁은 지역에 과다한 발전력이 집중돼 풍력발전기와 인근 원전과의 간섭 등 문제가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에너지문제도 이제는 기술적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안된다"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력당국 내부에서도 한전의 미봉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당국자는 "무효전력보상장치의 효과는 제한적이다. 신고리원전단지의 전압불안정은 어느정도 해소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과도안정도는 또다른 문제"라면서 "이에 대해 어느 정도 비공식적으로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안다. 가장 확실한 대책은 송전선로 확충"이라고 말했다. 

한전은 향후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을 통해 선로보강을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정부의 원전정책이 수명만료 원전의 단계적 폐지에서 갑자기 계속운전으로 바뀌었다. 오락가락하는 정책을 긴호흡의 계통정책이 따라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일단 동원가능한 대책은 무효전력보상장치 보강 뿐"이라며 "11차 장기송변전 계획에 울산 부산계통을 재검토해 송전망 보강 필요성을 들여다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