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세경경북대학교전기공학과 부교수​​​​​​​(공학박사)
한세경경북대학교전기공학과 교수(공학박사)

[이투뉴스 칼럼/한세경] 소위 칼럼이라는 것은 잘 보이지 않는 불합리나 부조리 등을 전문적인 지식으로 간파, 지적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견해를 담곤 한다. 하지만 그 주장이 아무리 타당하다 하더라도 실질적 변화가 이에 수반되거나 제도적 결실로 반영되는 경우는 실제로는 드물다.

인간사가 그렇거니와 산업과 정책 또한 그 나름의 강한 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운이 좋은 경우라 할 수 있다. 그간 배터리 관리의 본질과 데이터의 소유권, 그리고 이와 관련된 공공의 역할 등에 대해 2년이 넘는 동안 여러차례 이야기해 온 논지대로 정부 정책이 만들어진 것이다.

최근 환경부는 기존 충전기나 전기차 보조금 예산과는 별도로 전기차 배터리의 셀 데이터까지 수집 가능한 인프라(충전기, 차량 등) 확충을 위한 보조금으로 800억원이라는 신규 예산을 확보했다. 관련 내용들을 다시 한번 짚어보고 그 의미를 되새겨 보자. 그 배경에는 전기차 확산과 더불어 꾸준히 증가해 온 비충격 화재에 대한 정부의 해결 의지가 자리 잡고 있다. 올해 8월 무렵부터 관련 협의체가 구성됐고 여러의견이 제시됐다. 연기감지센서 등을 충전기에 부착하는 안들도 있었지만, 결국 논의는 배터리 셀 내부에서 발생한 진행성 문제(덴드라이트, 누액, 분리막손상, 가스응 축 등)를 조기에 진단하여 화재를 예방진단하는 쪽으로 흘러가게 됐다.

하지만 모든 셀에서 이상을 감지할 수준의 빅데이터를 과연 어느 주기로 수집해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진단하며 그 신뢰성을 어떻게 담보할지 등에 대한 현실적 이슈가 제기되며 (특히 제조사를 중심으로) 실행 가능성에 근거한 반대의견이 제기된 것도 사실이다. 왜 이런 어려운 결정이 내려지고 그 주체는 정부일 수밖에 없을까? 수차례 전술한 바 있지만, 다시 그 이유를 짚어보자.

첫째, 배터리 셀과 같은 화학제품은 그 고장의 경계를 정의하기가 어렵고, 무엇보다 상태기준이 모호하다. 가령 사람의 최고혈압은 통상 120이 정상기준이라 하지만 이 기준을 벗어난 사람도 일상생활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다. 배터리 셀 역시 물리적 상태에 대한 정의와 고장의 상태를 연결하기가 어렵고 모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혈압을 알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듯 배터리 셀 역시 면 밀한 상태추정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필수적으로 개별 셀 전압 측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차량의 BMS가 정보 제공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기에, 배터리 화재 등 분쟁이 발생할 경우 필연적으로 정보 접근성이 좋은 제조사가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 결국 제조사가 이러한 정보를 자발적으로 외부에 제공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둘째, 전기차의 데이터는 그 자체가 막대한 규모의 서비스 산업들의 시발점이다. 진단사업자뿐 아니라, 충전 사업자, 진단사업자, 보험사, 정비업자, 배터리 재활용/재사용 사업자, 심지어 정부에게조차도 다양하고 높은 부가가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즉, 돈이 된다는 것이다. 정보 접근에 있어 유일한 물리적 권한을 가진 제조사가 돈이 되는 비즈니스 생태계에서 독점적 지위를 포기하고 자발적으로 데이터를 제공한다는 것은 그렇기에 더더욱 기대하기 힘들다. 환경부가 그리는 그림은 데이터 수집은 공공영역에서, 그리고 서비스는 민간이 주도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애플이나 구글이 앱스토어같은 플랫폼을 만들고 자생적으로 서비스 생태계를 육성하는 것과 유사하다.

물론 차량 제조사가 시장을 주도하는 방법도 있지만, 서비스가 차량의 번들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정부는 데이터 수집과 제공을 담당하고 민간 서비스 사업자들은 본연의 서비스 경쟁력 강화에 집중한다면 배터리 데이터 시장에서도 카카오같은 초대형 서비스 기업이 얼마든지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구글이 카카오톡을 예정하고 플레이스토어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지금은 구체적인 서비스의 방식과 결과를 논하기보다는 세계최초의 전기차 데이터 플랫폼 구축에 있어 정부주도의 혁신과 성공의지에 동참하고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