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의 초대형 고급 빌라촌. 지인을 동원한 나흘간의 섭외 끝에 이 지역 한 가정에 대한 취재 허가가 떨어졌다. 이곳은 서울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부촌의 한 곳으로 얼마 전 영아 유기사건이 발생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취재는 사진촬영과 인터뷰가 배제된 상태에서 관리인이자 안내인인 이모씨가 따라붙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에 앞서 그는 "이 동네 사는 사람들 대부분 서로 피해를 주거나 간섭받는 것을 싫어한다"며 "개인적 질문을 일체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수차례나 받아냈다.

 

이곳에서 가장 흔하게 목격되는 것은 담장과 골목, 현관마다 자리 잡은 CCTV. 전날 내린 눈을 뒤집어 쓴 카메라가 곳곳에서 외부인의 일거수일투족을 매섭게 쏘아봤다. 중앙현관에 들어서자 내부 경비인이 기자를 제지했다. 안내인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길을 터 준 그는 엘리베이터에 오를 때까지 일행의 뒤를 지켜보는 듯했다.

 

본지가 방문한 고급 빌라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재벌그룹의 2세 K씨의 집. 그의 아내와 세 살배기 딸이 함께 머무는 이 빌라는 면적만 100여평에 달한다. 매 층마다 2세대씩 총 5개 층에 10가구만 거주하는 초대형 빌라다. 이씨는 K씨처럼 재벌가 사람들이나 현역 스포츠 스타, 유명 연예인 T씨 등이 살고 있다고 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각 세대는 방이 5개에 딸린 화장실만 3개, 가구마다 개별 냉난방을 위한 공조실이 1실씩 있다. 공조실은 대부분 에어컨 실외기나 보일러 장치가 자리 잡고 있고 여유공간이 많아 개별 창고로 활용되기도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K씨의 집은 현관부터 방문객을 압도했다. 어림잡아 가로 2미터, 세로 3미터에 달하는 웅장한 대형 현관문이 가벼운 힘에도 미끄러지듯 열렸다. 물론 곧이어 눈 앞에 드러난 집안 풍경은 더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약 25평에 달하는 거실은 언뜻 보아도 최고급 인테리어 소재로 치장돼 있는 듯했고 중앙에 위치한 소파 너머로 눈 덮인 소나무 숲이 풍경화처럼 펼쳐졌다.

 

5층 높이에 불과한데 어떻게 이런 전망이 나올 수 있을까 눈을 의심케 할 정도였다. 다음으로 기자를 압도한 것은 넓은 내부공간. 거실과 이어진 통로마다 방이 위치해 있고 주방과 별도로 거실의 절반 크기 만한 식당이 눈길을 끌었다. 이씨는 "K씨가 절친한 사람을 더러 불러 연회를 연다"고 말했다. 

 

이씨에 따르면 K씨는 1년 중 3분의 1 정도를 해외여행으로 보낸다. 해외에서 머물 동안 건물관리는 이씨의 몫인데 그가 직접 확인한 전기요금은 평상시 월 20만~30만원, 한여름엔 최대 50만원까지 나온 적이 있다고 했다. 중앙냉난방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방마다 별도로 에어컨이 설치돼 있다는 설명이다.

 

또 요즘 같은 한겨울엔 속옷 차림으로 생활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따뜻하게 실내온도를 유지한다고 했다. 실제로 외투를 벗지 않은 채 설명을 듣고 있던 기자가 이마에선 어느새 땀을 흘러내렸다. 이씨는 "국내에서 몇 대밖에 없는 자동차를 소유한 사람이고 최고급 차만 4대가 더 있는데 그까짓 전기료나 기름값을 걱정하겠느냐"고 기자에게 핀잔을 줬다.

 

이씨의 이어진 설명에 의하면 K씨 가정은 한 달 차량 연료비로 150만원 가량을 사용하는데 이조차도 일부 주요소에서만 판매하는 고급휘발유를 선호한다고 했다. 그는 "이 분들은 평범한 사람과 어울리기 싫어하고 자신들만의 세계와 공간을 만들어 비슷한 부류의 부호와 어울리는 사람들"이라면서 "자신들의 존재가 특별해지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현재 K씨의 빌라는 시가 30억원 정도. 최고급 주택으로 알려진 타워팰리스나 아이파크처럼 매물이 나오지도 않는다고 했다. 이씨의 재촉에 못 이겨 그곳을 빠져나오며 지난 15일 본지가 보도한 서울 당산동 김영칠씨의 무허가 주택이 머리를 스쳤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많은 사람이 더 큰 집에서 산다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또 가난한 사람이 돈 많은 사람처럼 살 수도 없다. 하지만 에너지는 현대 삶의 기본적인 삶의 조건이다. 물론 더 쓰고 덜 쓰는 차이가 있겠지만 그렇다고 돈이 없다는 이유로 전기와 물을 공급받을 수 없어서는 안된다. 에너지는 이미 현대 사회에선 없어서는 안될 공기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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