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5톤 신한울 1호기 바퀴 80개 운반차 실린 채 바지선 올라
울진까지 뱃길로 36시간…국내 세번째 'APR 1400' 출하

특수운반차에 실린 신한울 1호기 원자로가 출하를 위해 전용부두로 향하고 있다.

[이투뉴스] ‘콰르릉~, 꽈르릉~’

바퀴 80개짜리 특수운반차(멀티로더)가 거친 디젤 엔진음을 내뿜으며 시동을 켰다. 납작한 트레일러 형태의 이 차에 실린 중량물의 무게는 453톤. 길이 약 15m, 직경 6m 크기로, 얼핏 보면 거대한 탄두를 닮았다.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본 기사가 이윽고 어깨에 맨 무선조종기 레버를 밀어제쳤다. 점보기 격납고 크기의 공장에서 시속 2~3km 속도로 운반차가 미끄러져 나왔다. 

“애지중지 키운 딸을 시집보내는 마음입니다.”

지난 16일 오후 5시 40분 경남 창원시 성산구 두산중공업 원자로 용접공장(Factory 207). 멀찌감치 떨어져 이 광경을 지켜보던 이영동 원자력생산1 상무의 얼굴엔 만감이 교차했다. 이날 공장 밖으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 원자로는 순수 국산기술로 독자 개발된 1400MW급 'APR 1400'. 2017년 4월 상업운전을 시작하는 신한울 1호기에 장착될 예정이다. 이 모델의 국내 출하는 신고리 3,4호기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다.

이영동 두산중공업 원자력생산1 상무는 "딸을 시집보내는 마음"이라고 했다.

원자로는 핵분열 반응을 일으켜 열원을 발생시키는 원전의 '심장'이다. 자체 제작기술을 보유한 국가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프랑스 뿐이며 국내에선 두산중공업이 유일하다. 주재질은 탄소강(Carbon Steel)이며, 내부는 스테인레스(SUS)로 가공 처리한다. 외부 철판의 두께는 최대 297mm에 달한다. 통상 제작부터 출하까지 만 3년이 걸린다.

이 상무는 "원자로는 최대 26가지 특수용접 기술을 동원해 0.1mm의 오차도 없이 만들어야 하는 예술작품"이라며 "균일한 용접 품질을 위해 쇠온도를 150℃로 달궈가며 작업해야 하는데, 한 여름에 선풍기도 틀지 못하고 밀폐된 공간에서 용접하는 일의 어려움은 이루 설명하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20여년 남짓한 짧은 원자력 산업 역사속에 자체 원전을 수출하는 성과를 올린 나라는 우리 밖에 없다"면서 "국가 에너지수급에 기여하고 해외서도 최고로 치는 우리 손기술이 최근 사태로 같이 매도당하는 것 같아 평생 이 분야에 몸 담아 온 한사람으로서 안타까울 뿐"이라고 토로했다.

▲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원자로 용접공장을 나서는 원자로, 전용부두로 이동하는 원자로, 선박 중앙에 자리잡은 원자로, 선박에 오르기 시작한 원자로.

이튿날인 지난 17일 오전 10시 33분 마산만과 접한 두산중공업 전용 사내부두. 전날 어둑한 길을 따라 원자로 용접공장에서 1.5km 가량 떨어진 부둣가로 이동한 원자로는 '친정'에서의 마지막 밤을 이곳에서 지샜다. 부두에는 '새색시'를 데려갈 바지선 부산 XXXX호가 만반의 준비를 마친 채 정박해 있다. 두산중공업은 이날 부두 일대에 '보안등급 1급'을 발령했다.

신한울 1호기 원자로는 이곳에서 바지선에 실려 직선거리로 약 200km, 바닷길로는 330여km 거리의 있는 신울진 원자력 발전단지로 떠난다. 운반차째로 바지선에 오르는 순간 소유권은 발주처인 한국수력원자력으로 넘어간다. 원자력산업 국제거래 관행상 몸값은 비밀이다. 울진까지의 뱃길은 약 36시간이 걸린다. 

지금까지 이 전용부두에서 국내외 원전으로 출하된 원자로와 증기발생기는 각각 30여대, 100여대에 이른다. 내년 이맘때쯤이면 같은 장소에서 1년 터울 신한울 2호기용 원자로가 출하된다. 두산중공업 창원공장은 원자로 주단조부터 내부 가공, 용접까지 일관생산이 가능한 세계 유일 원자력 생산기지로,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헬기를 타고 부지를 물색했다는 설이 있을만큼 천혜의 물류조건을 자랑한다.

"이제 시작하려나 보네요." 서강철 두산중공업 홍보팀장이 물때에 맞춰 바지선으로 올라타기 시작한 원자로 운반차를 가리켰다. 450톤이 넘는 육중한 하중이 실리자 선미(船尾)가 20여cm 가량 물속에 주저 앉았다. 바지선은 부두와 선박의 높이를 수평으로 맞추기 위해 선내 밸러스트수를 쏟아냈다. 운반차가 무사히 바지선 중앙에 자리잡은 것은 11시 15분. 출항을 위한 고정작업은 이때부터 3시간이 추가 소요된다.

두산중공업 창원공장 전경 일부. 여의도 1.5배 규모다.

앞서 이날 오전 9시 30분 두산중공업 창원공장내 주·단조공장. 시뻘겋게 달궈진 600톤자리 쇳덩이(잉곳)를 1만3000톤급 프레스가 고무찰흙 만지 듯 원하는대로 찍어누르고 있다. 거대한 프레스 집게에 꼼짝없이 붙들린 원통형 잉곳은 수십번의 눌림 끝에 조금씩 로터(터빈의 회전축)의 형상을 갖춰갔다.

이렇게 1차 가공된 로터는 인근 밀링머신 등에 올려져 섬세한 후속 절삭공정을 밟게 된다. 이런 일련의 공정을 거치면서 600톤이던 중량은 200톤으로, 70억원어치 쇳덩어리는 150억원짜리 매끈한 로터로 다시 태어난다. 국내외 발전소에 공급되는 원자로와 터빈, 로터, 증기발생기 등은 대부분 이곳 '대장간'을 거친다.

주·단조 공장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원자력공장은 납기가 제각각인 원자로와 증기발생기로 만원사례를 연출했다. 신한울 원전으로 출하될 'APR 1400' 후속 원자로는 물론 최근 수압테스트를 마친 대형 증기발생기가 공정마다 자리잡고 있다. 국내 첫 해외 수출원전의 주요기기도 이곳에서 제작된다. 'APR 1400'은 기존 한국형 표준원전(OPR 1000) 대비 설계수명이 20년 증가해 발전원가를 최소 10%이상 줄일 수 있다. 

두산중공업은 석탄화력, 복합화력, 원자력발전소 발전플랜트 설계에서 기자재 공급, 건설, 서비스까지 일괄 수행하는 에너지설비 전문기업으로, 여의도 면적 1.5배 창원공장에 주단조부터 발전소 보일러-터빈-발전기까지 풀 라인업 생산체제를 구축했다.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기대주인 풍력발전기도 여기서 만든다.

이영동 상무는 "미국, 프랑스 등의 원전 경쟁국이 일감이 없어 공장을 놀릴 때 우린 고급인력을 유지하며 꾸준히 노하우를 축적하고 기술자립화를 실현해 결국 원전 수출시대를 열었다"면서 "해외 전문가들이 공장을 방문해 부러워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창원=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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