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저는 더위를 유독 많이 탑니다. 얼굴이며 등이며 땀이 남보다 배는 많습니다. 단지 참을성이 부족해서일까요. 아니면 그렇게 살 팔자여서 그런 걸까요. 하하. 실제 대학교 계절학기 수업 중 한 교수님이 해준 얘깁니다. 이름에 '火' 부수가 많으면 몸에 열이 많다고 하셨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농담 같기도 한데... 어쨌든 저는 더위에 진짜 약합니다. 누군가 저에게 여름과 겨울 한 계절 중 하나만 고르라면 저는 단연 겨울을 고를 겁니다. 추운데 사는 그대를 부러워한 적이 적잖았습니다. 

더위와 관련된 에피소드도 많습니다. 우선 반소매를 정말 애정합니다. 시원한 게 제일 좋아요. 그래서 반팔티를 누구보다 빨리 꺼내 입고 가장 늦게까지 입습니다. 보통 4월에 꺼내서 10월까지는 입는 것 같네요. 아, 겨울에도 반팔이 필요합니다. 후드티 안에 입어야 하거든요. 언제가부터 긴팔옷을 사지 않았고, 그결과 현재 옷장에는 긴팔이 전무합니다.

혹시 지하철은 타보셨는지요. 이곳 말입니다. 참으로 덥습니다. 이제서야 말하건대 코레일분들. 왜 이리 에어컨을 늦게 틀어주시나요. 오뉴월께 남들은 싱글벙글 웃으며 봄을 만끽하는데 저만 더위와 싸우고 있습니다.

대학교 1학년 봄이었을 겁니다. 1호선을 타고 등교 중이었지요. 저는 그날도 어김없이 지하철 내부 열기와 씨름하고 있었습니다. 손수건으로 연신 땀을 훔치고 있었는데 바로 앞에 정장 입은 한 아저씨가 타더군요. 반팔, 반바지인 저와는 크게 대비되는 옷차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전혀 더운 기색이 없었습니다.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니 아뿔싸. 저만 딴 세상 속 사람이었던 겁니다. 나홀로 바보 된 기분이 이런거지요.

그런 저에게도 올여름은 유독 더웠습니다. 매년이 전쟁이었다지만 올해는 역대급이었어요. 사우나 한달살기 체험을 한 기분입니다. 에어컨 바람을 즐겨 하지 않으시던 저희 부모님도 올여름은 리모컨을 자주 찾으셨어요. 특히 밤이 정말로 후텁지근하더군요. 아무리 열대야라지만 너무한 거 아닙니까? 한반도가 아열대 기후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비단 한국만 더웠나요. 올 7월은 지구 전체로도 관측이래 가장 더운 달이었다죠. 이달초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달이 가장 더운 7월이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올 7월 평균기온은 섭씨 16.95도로, 이전 최고 기록인 2019년 7월(16.63도)보다 높았습니다. 1991∼2020년 평균보다는 0.72도 더 높은 수준이랍니다.

더 무서운 것은 내년도 내후년도 매년 기록을 경신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최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습니다.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 시대가 끝나고 끓는 지구(Global Boiling) 시대가 시작됐다." 이제는 온난화라는 표현도 부족하다는 의미입니다.  

어렸을 적 기후온난화의 상징으로 그대가 자주 언급됐습니다. 얼음이 녹아 그대의 삶이 위협받고 있다 했지요. 그땐 사실 몰랐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체감할 수 없었어요. 지구가 얼마나 뜨거워지고 있는지를요. 불과 30년만에 제가 온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지구촌 사람들 모두도 확실히 인지하고 있을 겁니다.

1.5도. 2015년 국제사회가 파리기후협약을 통해 합의한 지구기온 상승의 제한선입니다. 이 수치가 넘어가면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파국을 막기 어렵답니다. 우리는 어쩌면 이미 늦었는지도 몰라요. 그럼에도 포기할 순 없습니다. 그대의 새끼와 우리 후손 모두를 위한 일입니다. 이제 저부터 노력하겠습니다. 오늘부터 텀블러를 들고 카페를 갈 겁니다. 그대의 고통과 아픔을 30년후에야 알아채서 미안합니다.

김동훈 기자 hooni@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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