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투뉴스] “이번 비굴한 초안은 석유수출국기구인 OPEC 요구를 또박또박 받아쓴 것처럼 보인다” 기후운동가로 활동하는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최근 한 SNS에 아랍에미리트연합에서 열린 COP28 합의문을 이렇게 평가했다.

이처럼 예정된 폐막일을 하루 넘겨 13일 마친 제28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 대한 쓴소리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산업조사기관인 블룸버그NEF는 파리협정 목표(지구온도 1.5℃이내 억제) 달성을 위해 COP28에서 진전을 이뤘어야 하는 10개 분야에 점수를 매긴 결과 종합점수가 10점 만점에 3.8점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역시 올해 합의문에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9년 대비 43% 줄인다는 결정을 인정하고 있으나, 현재 상태로는 도달할 수 없는 목표”라며 “올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오히려 2%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비판했다. 상대적으로 기후문제에 대해 보수적인 우리나라 언론들까지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가장 쟁점이 됐던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Phase Out)’은 ‘화석연료로부터 멀어지는 전환(Transitioning Away)’에 그쳤다. 그나마 유럽연합이 협정에서 탈퇴하겠다는 엄포를 놓는 등 강하게 버텨 전환이라는 표현이나마 들어갔다. 일부에선 기후총회 26년 만에 기후변화의 원인으로 지목된 화석연료라는 단어가 들어갔다며 성과로 포장하고 있지만 해석은 180도 다르다.

원자력발전과 온실가스 포집·활용·저장(CCUS)을 감축수단에 포함한 것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먼저 원전은 기후위기를 피하려다 또 다른 재앙을 맞이하는 격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방사능유출 위험성과 불확실한 폐기물 처리방안을 고려했을 때 결코 기후위기 대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CCUS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도 많다. 아직 상용화되지도 않고 검증도 되지 않은 기술에 의존하는 것은 화석연료의 조속한 퇴출을 오히려 지연시킬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석탄발전의 조속한 퇴출이 아니라 저감장치 없는 석탄발전의 단계적인 감축이 합의문에 들어간 것도 “방지기술을 빙자해 석탄발전은 계속 운영하겠다는 불순한 의지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불편한 시각을 내비쳤다.

지난해 출범에 합의했으나 더이상 진전이 없는 ‘정의로운 전환 작업프로그램(JTWP)’ 역시 평점이 낮다. 역사적(온실가스 누적배출량)인 책임이 큰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입장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손실과 피해 기금 초기재원으로 UAE와 독일(1억달러), 이탈리아(1억유로), 영국(7589만달러), 미국(1750만달러), 일본(1000만달러)이 공여를 약속했지만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미국이 고작 1750만달러를 내겠다고 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반쪽짜리 합의문’은 COP28 시작부터 예견됐다. 총회가 세계 6위 석유 수출국인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데다, 아부다비국영석유회사(ADNOC) 최고경영자인 술탄 알 자베르가 의장을 맡았기 때문이다. 앞서 OPEC을 이끄는 사우디아라비아는 합의문에 ‘화석연료 퇴출’이 들어가선 안된다고 13개국에 서한을 보내 압박을 가했다. 

‘작은 섬나라 국가연맹’ 의장인 사모아의 세드릭 슈스터가 “우리는 화석연료를 폐기한다는 약속이 없는 사망진단서에는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발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끌지도 못했다. 물론 COP28 성과를 모두 폄하하기 어렵다. 어쨌든 기후변화의 원인이 화석연료라는 점을 합의문에 담은 것은 진전된 걸음이다. 여기에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3배 확충 및 에너지효율 2배 향상’ 등 구체적인 정책방향을 제안했으며, 2050년 탄소중립이라는 감축경로를 재확인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모로 씁쓸하다는 점은 지울 수가 없다. COP가 매년 “진통 끝에 극적으로 합의했다”고 설레발을 치지만 알맹이없는 수식어에 불과하다. ‘극적 합의’가 아닌 ‘봉합’을 그럴싸하게 표현한 말잔치에서 벗어나야 뜨거워지는 지구를 막을 수 있다.

채덕종 기자 yesman@e2news.com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