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사단법인 넥스트 부대표(기후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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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사단법인 넥스트 부대표(기후전문가)

[이투뉴스 칼럼 / 고은] 기후변화 대응 분야에서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일상생활에서의 평범한 선택에 죄책감을 가지게 되는 순간이 많다. 

목이 말라 들어간 카페에서 플라스틱 컵에 플라스틱 빨대와 함께 담긴 음료를 받아드는 순간, 죄책감이 밀려온다. 너무 추운 어느날, 버스를 기다릴 자신이 없어 택시를 잡아탄 순간, 죄책감이 밀려온다. 밥이 하기 싫은 어느날, 배달앱으로 시킨 한끼가 10개가 넘는 플라스틱 용기와 뚜껑에 담겨오는 순간, 죄책감이 든다. 차를 사려고 고민하던 중, 아파트 단지에 딱 두 개 있는 전기차 충전기를 제때 차지할 자신이 없어 가솔린 차량을 고민하는 순간, 죄책감이 든다.

기후변화 대응, 넷제로, 친환경... 이런 키워드가 붙은 물건, 서비스, 행동들은 개인의 수고로움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작은 가방 안에 텀블러를 욱여넣어야 하고, 전기차 충전소를 찾아 다녀야 한다. 다소 간편하고 손쉬운 선택을 한 평범한 개인들에게 기후변화 대응은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단어다. 

정책마저도 국민에게 번거로운 짐을 지우는 경우가 빈번하다. 한 예로,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개인이 일회용 컵의 내용물을 비우고 부속물을 분리 배출하고 반납장소까지 가서 300원을 받게하는 지나치게 개인의 선의와 수고에 의존한 제도다. 사실 그마저도 세종, 제주에서만 축소 시행되어 용두사미가 되어버렸다. 소비자의 행동변화를 이끌어내려는 제도의 취지는 매우 공감을 하는 바지만, ‘탄소중립, 기후변화 대응은 너무 불편하다’라는 이미지를 남겼다는 점에서 아쉬운 마음이 굉장히 크다.

넷제로를 위해 개인의 의지를 요구하는 경제는 결코 기후변화 대응을 잘 하는 경제가 아니다. 개인이 행하는 최적의 선택이 넷제로에 기여하도록 구조적으로 조성된 경제가 진정한 넷제로 경제다. 공자께서는 칠십이 되었더니 마음 가는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고 하셨는데, 넷제로 경제는 마음 가는대로 해도 탄소배출이 제로에 수렴하는 그런 경제다. 

필자가 미국에서 유학을 했을 때 가장 놀라웠던 것 중 하나는, 각 학급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선택하는 업종이 재생에너지 프로젝트파이낸싱, VPP 스타트업, 기후금융 등이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기후 분야에서 일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성장전망도 좋고 돈도 잘 벌리는 것이리라. 10년이 넘긴 했지만 한국에서 학부 졸업했을 때를 떠올려보면 학급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은 소위 ‘기름집’이라 불리는 정유회사에 취직했었다. 우수한 인력이 탄소배출량 저감에 기여하는 산업으로 몰리는 경제, 그것이 넷제로 경제다.

넷제로 경제로 이행하면 할수록, 세계에서 우리나라 경제의 상대적인 경쟁력은 높아진다.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는 이미 세계에서 독보적인 수준이고 글로벌 공급망이 탈탄소화 되면 될수록 가장 수혜를 입을 잠재력을 가진 업종들이다. 에너지시스템이 화석연료와의 결별을 서두를수록, 2022년 한 해에만 250조원 넘게 수입한 석유, 석탄, 천연가스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지난 50년간 엄청난 에너지 수입 비용을 감당하면서도 눈부신 경제 성장을 했으니, 다가올 넷제로 경제에서는 에너지 비용을 절감한 채 자력의 기술과 재생자원으로 일군 산업으로 더 경쟁력있는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다.

기후 정책은 이런 넷제로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설계가 되어야 한다. 탈탄소를 선택하는 것이 일시적이 아니라 지속적인 선택이 될 수 있도록 근본적인 구조 변화를 꾀해야 한다. 석탄발전을 조속히 퇴거시키고 청정에너지의 비율을 높여서 대한민국 어느 곳에서 플러그를 꽂더라도 깨끗한 전력을 쓸 수 있도록 해야한다. 재생 플라스틱이 일회용 플라스틱보다 저렴하도록 보조를 하여 소상공인이 재생 플라스틱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기후 스타트업들이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시장환경을 만들어주어 우수한 인재들이 선망하는 업종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개인의 우선순위를 변하게 하는 정책, 그것이 기후 정책에 필요하다.

우리나라 경제는 넷제로 경제로 변화하고 있는가를 돌이켜보면 몇몇 사례에서 작은 희망을 보곤 한다. 2020년과 비교해보면 탄소중립은 우리나라의 법적 의무가 되었고, 풍력 입찰시장이 개설되었고, 전기차 등록대수는 2.8배 이상 늘었으며, 종이빨대와 생분해성 플라스틱컵을 꽤나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0.46kgCO2e/kWh 수준이던 전력배출계수도 0.39kgCO2/kWh로 떨어졌다. 국민을 위해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어야할지 고민하시는 위정자들이라면, 올해엔 더 속도를 내어 넷제로 경제의 구현에 노력해주시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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