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연구원(KERI), 계면저항 극복 160℃ 저온소결형 고체전해질 개발 상용화 앞당겨

▲하윤철 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이 도포된 슬러리(왼쪽)와 슬러리용액(오른쪽)을 들어보이고 있다.
▲하윤철 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이 도포된 슬러리(왼쪽)와 슬러리용액(오른쪽)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투뉴스] 잇따른 ESS화재로 배터리 안정성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출연연구기관이 폭발이나 화재 우려가 없는 전고체전지 새 전극 제조기술을 개발해 화제다. 전기연구원(KERI. 원장 최규하) 전지연구센터 하윤철 박사(책임연구원)팀은 160℃ 저온에서도 결정화가 가능한 고체전해질 원천기술과 이를 이용한 슬러리 코팅 방식 고용량 활물질-고체전해질 복합전극 제조 원천기술을 개발했다고 18일 밝혔다.

KERI에 따르면, 이 기술은 전고체전지 실용화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활물질-고체전해질 경계에서의 높은 저항(계면저항)을 극복한 새 전극 제조기술이다. 최근 연쇄 화재로 안전성 위험이 대두되고 있는 리튬이온전지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불연성 전고체전지 상용화에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91년 일본에서 최초로 상용화된 리튬이온전지는 높은 에너지밀도와 출력밀도, 뛰어난 충·방전 효율 장점으로 스마트폰 등 휴대형 전기·전자기기부터 전기차와 ESS까지 광범위하게 다량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가연성 액체전해질을 사용해 발화와 폭발의 위험이 높고 과충전이나 외부단락, 내부단락 등의 상황에서 전지 내부 소재의 급격한 가열과 연소로 발화와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 최근 소형 셀부터 대형 모듈까지 화재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KERI 연구팀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고체전지에 주목했다. 앞서 고체전해질에 대한 연구는 원료에 따라 산화물 계열, 고분자 계열, 황화물 계열 등으로 나누어 진행돼 왔는데, 연구팀은 이중 액체 전해질에 필적할 정도의 슈퍼이온전도체 특성을 보유한 황화물 계열 연구에 집중했고, 대면적 생산의 핵심 공정인 슬러리 코팅 방식의 전극 제조 과정에 가장 큰 걸림돌인 활물질-고체전해질 계면저항에 도전했다.

현재 슬러리는 미세한 고체 입자를 액체 중에 섞어 유동성이 적은 상태로 만든 혼합물로, 리튬이온전지의 전극은 슬러리 코팅방식으로 각각 제조된다. 보통 활물질, 도전재, 바인더를 용매에 일정 비율 혼합해 만든 슬러리를 집전체 위에 얇은 막으로 코팅·건조·압착해 전극을 만든다. 액체전해질은 전지 조립공정을 거친 후 마지막에 주입해 분리막과 전극에 스며들도록 함으로써 리튬이온이 전달되는 통로와 활물질-액체전해질 계면을 형성하게 된다.

이 슬러리 코팅 방식은 액체전해질 기반의 리튬이온전지 산업에는 일반화돼 있으나 전고체전지용 고체전해질 및 전극 제조 공정에 활용하기에는 여러 문제가 있었다. 우선 고체전해질은 슬러리 제조 단계에서 함께 혼합되어야 하기 때문에 활물질-고체전해질 계면 형성이 액체전해질에 비해 매우 어렵고, 무엇보다 접착력 향상을 위해 섞는 바인더가 계면 형성을 방해하면서 계면저항이 크게 증가했다.

또 이온 전도도가 높은 고체전해질을 슬러리 제조에 활용할 때도 결정화된 고체전해질 분말을 미세한 입자로 분쇄하거나 용매와 혼합하는 과정에서 기계적·화학적으로 리튬이온 전도성이 떨어졌다. 이 때문에 슬러리 코팅 방식으로 제조된 전고체전지용 전극 성능은 실용화 수준에 크게 못 미쳤다.

KERI 연구팀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리튬-인-황화물에 리튬-요오드화합물을 첨가한 고체전해질 합성 공정을 최적화 해 160℃의 낮은 결정화 온도에서도 슈퍼이온전도체 특성을 나타내는 유리-결정질(glass-ceramic) 고체전해질을 개발했다. 일반적으로 슈퍼이온전도체는 황화물계의 경우 250~450℃(산화물계의 경우 700℃ 이상)에서 열처리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연구팀이 개발한 고체전해질은 고분자 바인더나 리튬 금속의 용융(melting) 온도인 180℃보다도 낮은 160℃에서 결정화가 가능해 바인더나 리튬음극의 손상 없이 전극이나 전지 제조 후 열처리가 가능하다.

이 특성을 이용해 슬러리 제조 시 비정질 상태의 분쇄된 고체전해질을 혼합하고 전극 제조 후 160℃ 저온 열처리함으로써 전극 내 고체전해질이 슈퍼이온전도체로 바뀌면서 동시에 고체-고체 계면이 소결되는 새 공정을 개발했다. 소재와 공정 혁신을 통해 저항을 크게 낮추는 동시에 계면의 기계적 내구성도 우수한 전극 제조가 가능해진 셈이다. 

하윤철 책임연구원은 “전기차와 ESS용 이차전지 시장이 본격화 됨에 따라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이미 안전하면서도 에너지 밀도가 높은 전고체전지 관련기술을 선점해 나가고 있다”면서 “이번 KERI의 성과는 전고체전지가 가진 계면저항 등의 난제를 해결하고 상용화를 추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재료 및 계면 분야의 전문학술지인 <ACS Applied Materials & Interfaces> 온라인 판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저온 소결형 고체전해질 소재 및 전고체전지 제조 공정에 대한 국내·국제 특허출원도 마쳤다. 현재 고체전해질 이온전도도 향상과 공기안전성 향상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원료 생산 공정부터 셀 제조 공정에 이르기까지 대형화를 위한 후속 연구도 한창이다. 연구원은 상업화를 위한 기술이전 기업을 발굴하고 있다.

일본 후지경제연구소에 의하면 전 세계 전고체전지 시장은 2035년 약 28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액체 전해질을 사용하는 리튬이온전지가 적용될 수 없는 고온 환경 등 특수한 산업용에서부터 이차전지에 대한 수요가 확대되고 있는 전기차, 스마트그리드, 피크부하 저감용 등 다양하게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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