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울1호기·옥동변전소 사고 인적실수
투명 규제시스템과 독립감독기관 시급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올초 한전 양주변전소를 방문해 전력설비 운영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안 장관은 “에버랜드 놀이기구 정지, 울산 정전 등으로 국민 염려가 큰 만큼 수급 관리를 철저히 하고 전력 설비 관리를 강화해 달라"고 주문했다. 당국의 조사에 따르면 울산 정전사고는 인적실수에 의한 것으로 결론이 모아지고 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올초 한전 양주변전소를 방문해 전력설비 운영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안 장관은 “에버랜드 놀이기구 정지, 울산 정전 등으로 국민 염려가 큰 만큼 수급 관리를 철저히 하고 전력 설비 관리를 강화해 달라"고 주문했다. 당국의 조사에 따르면 울산 정전사고는 인적실수에 의한 것으로 결론이 모아지고 있다. 

[이투뉴스] 발전소와 변전소 종사자들의 사소한 실수로 가동 중이던 원전이나 화력발전소가 정지하고 15만 세대 이상이 갑작스런 정전 피해를 입는 등 ‘휴먼에러(Human Error)’ 사고가 빈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대형 사건이 발생해도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조사나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할 기관이 없어 적잖은 사고가 반복되거나 축소·은폐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이투뉴스> 취재결과를 종합하면 올해 1월 2일 발생한 신한울1호기 원자로 불시 정지사건(본지 2월 26일자 ‘1.4GW 새 원전 두 달째 석연찮은 셧다운’ 보도 참조)의 1차적 원인은 현장 정비원의 단순 오조작과 그런 경우에라도 작동하지 않았어야 할 설비가 동작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적실수와 설비결함이 겹쳐 뜻밖의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이 이달초 규제당국에 보고한 해당 원전의 ‘사고·고장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사건 당일 오전 한국수력원자력 협력사 정비원은 터빈건물 내 여자기룸에 들어가 상태 모니터 패널 등을 점검한다. 이 과정에 눌러선 안될 여자기 차단기 ‘Open’(개방) 버튼을 누른다. 차단기 램프 상태를 확인하라는 옛 점검기록지 문구를 염두에 두고서다. 하지만 이런 단순 실수가 1.4GW 대형원전을 멈춰세울 줄 누구도 몰랐다.

차단기가 동작하자 가동 중이던 터빈·발전기가 정지했고, 그 영향으로 원자로출력이 30% 수준으로 급감하면서 노심 안에 제논이 쌓여 결국 원자로까지 정지하는 과정을 거쳤는데, 조사 결과 애초 이 차단기는 작동 중 누군가 실수로 누르더라도 기능을 수행하지 않도록 설계돼 있었다. 애초 차단기 현장 패널 결선도면 자체가 잘못 표기돼 있었고, 그 도면대로 연동회로가 오결선되면서 차단기가 작동된 것으로 확인됐다.

작업자의 오조작이란 우연과 결함설비 작동이란 필연이 겹쳐 원전 불시정지 사건이 발생했다는 뜻이다. 단순한 원전 정지 사건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역대 최고등급 원전사고로 분류되는 체로노빌이나 쓰리마일섬 사건도 사람의 오판이나 인적실수, 설비결함 등이 복합적으로 겹쳐 발생했다는 점에서 가볍게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원자력안전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아직 공식적인 대외 조사결과 발표나 재발방지 대책에 관한 브리핑 등을 계획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발전사 한 관계자는 “제법 큰 사건이었는데, 결과(원전정지)만 있고 원인은 그냥 묻혀가는 상황"이라며 "규제기관인 원안위조차 네거티브한 이슈에 대해서는 쉬쉬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정전 규모로는 2017년 이후 최대인 한전 울산 옥동변전소 사건의 자초지종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작년 12월 6일 발생한 이 정전으로 울산 남구 지역에서 15만5000세대가 2시간 가량 정전피해를 봤다. 일부 공장이 가동을 멈췄고 일대 신호등이 꺼졌으며 상가와 아파트 등에서 엘리베이터 갇힘사고가 속출했다. 현재까지 한전에 접수된 피해건수는 202건, 신고피해액은 수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사건의 원인에 대한 한전의 공식 답변은 '조사중인 사안'이다. 한전이 노후설비 교체 공사를 하던 중 초고압 차단기 일종인 가스절연개폐기(GIS)에 이상(절연파괴)이 발생해 정전이 발생했다는 정도로만 외부에 알려져 있다. 일각에서는 30년 가까이 사용한 설비를 지목하며 한전이 경영적자를 배경으로 거론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사고 역시 1차 원인은 인적실수에서 비롯된 것으로 결론이 모아지고 있다. 당국자들에 따르면 문제를 일으킨 GIS는 누군가의 밸브 오조작으로 이미 절연가스가 빠져나간 상태였다. 작업 대상 GIS가 아니라 정상적으로 작동하면서 전기가 흐르던 GIS에서 절연파괴가 일어났다는 의미다. 어떤 작업자가 어떤 이유에서 오조작을 한 것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와 관련 한전은 이례적으로 정전 피해 보상을 준비하고 있다. 한전은 전기공급 약관에 따라 차단기 등 납품받은 설비 이상으로 발생한 정전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아왔다. 한 당국자는 "산업부 주도로 조사하고 있고, 장관까지 나서 철저하게 규명하겠다고 한만큼 그냥 넘어갈리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신한울1호기는 규제시스템이라도 작동해 나중에라도 규명되지만, 옥동변전소건은 규제자와 피규제자가 불명확한데다 제3자가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는 구조라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투명한 규제시스템 및 전력·계통운영에 관한 독립 거버넌스  부재로 대형 사건이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하고 반복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병준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대한전기학회장)는 "전문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규제체계를 갖추고 계통감독기관이든 운영기관이든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번 사건의 경우 사고조사반이 한전이 제공한 자료를 자체 분석해 원인을 찾아내고, 재현을 통해 그걸 입증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조사반이 제도적으로 권한도 있어야 하며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춰야 한다"면서 "해외의 광범위한 사고조사보고서와 우리의 단출한 보고서 차이가 무엇 때문이겠냐"고 반문했다.

전영환 홍익대 전기공학부 교수는 "전력시장에는 다양한 참여자가 있고,  시장과 전력계통 운영에 있어 정보의 투명성은 매우 중요하다"며 "전력산업과 시장에 대한 신뢰는 전력시장 및 계통운영 결과, 전력시스템의 각종 제약 현황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함으로써 확보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전 교수는 "향후 전력시스템은 운영자체가 한층 복잡해지므로 운영과 계획에 관한 기록은 물론 사고조사 결과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면서 "지금은 규제기관과 피규제기관의 이해관계가 같다. 정부와 정치권이 여기에 대한 강한 개선 의지를 갖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폐쇄된 규제시스템 탓에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채 단순 고장정지로 처리되는 인적실수 사고가 더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한 전력설비 전문가는 "지난해 하동화력에서도 작업자가 스위치를 오조작해 정비 중인 발전기 대신 가동중이던 발전기가 셧다운되는 사건이 있었다"면서 "깨진 유리창의 법칙처럼 앞으로 대형사고가 터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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