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수도권 전압강하 등 계통사고 진원지로
최근 10년 GIS고장 4건중 2건 변환소 새설비
"동해안~수도권 더 취약, 늦기전 전면 재검토"

중앙전력관제센터 모니터 화면에 실시간 수요와 예비력, 계통주파수 등이 노출되고 있다.
중앙전력관제센터 모니터 화면에 실시간 수요와 예비력, 계통주파수 등이 노출되고 있다.

[이투뉴스] 정부와 한전이 대규모 증설을 추진하고 있는 초고압직류송전(HVDC) 연계선로에서 크고 작은 고장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북당진~고덕 선로의 경우 2021년 상업운전 이후 20여차례나 고장이 발생했고, 지난달 14일 발생한 수도권 전압강하 사고 역시 고덕변환소의 석연찮은 설비고장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송전제약을 해소하고 주민수용성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건설했거나 건설 예정인 육상 HVDC가 국내 전력망의 ‘약한 고리’가 돼 향후 초대형 정전사고를 유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3일 <이투뉴스>가 양이원영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한전의 ‘고덕변환소 고장원인 보고서’와 ‘동일 전력설비 설치내역 및 고장내역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중순 용인, 수원, 성남, 화성, 평택, 광주 등에서 발생한 엘리베이터 갇힘사고와 놀이공원(에버랜드) 롤러코스터 정지사고를 유발한 원인은 HVDC 고덕변환소의 가스절연개폐장치(GIS) 절연파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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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는 다양한 고장 시 과도한 전류가 흐르는 것을 신속히 차단해 계통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효성중공업이 납품한 장비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내부 절연물이 소손돼 절연파괴가 일어났고, 그 영향으로 인근 변전소의 일시적 전압강하가 발생해 수도권 전력기기 운영중단 사태를 야기했다. 2020년 6월에 설치된 새 장비다. 전력기기 제작사 관계자는 “잘 쓰면 20년도 너끈한 설비가 3년 만에 망가졌다는 건 이해가 잘 안된다”고 말했다.

한전이 의원실에 제출한 현황자료를 보면, 최근 10년간 주요 변전소에 설치된 GIS는 모두 148기이다. 이 가운데 HVDC 변환소에 설치된 기기는 33기이다. 최근 10년간(2013~2023) GIS가 고장을 일으킨 건 이번을 포함 4건에 불과하며, 그 중 북당진~고덕 HVDC 양쪽 북당진변환소와 고덕변환소에서만 2건이 발생했다. 앞서 2020년 7월 23일 문제를 일으킨 북당진변환소 GIS 역시 설치한 지 3년밖에 안 된 새 설비다.

고덕변환소 GIS 설비 ⓒ한전 사보
고덕변환소 GIS 설비 ⓒ한전 사보

HVDC 연계설비 고장은 GIS 뿐만이 아니다. 당국의 비공식 집계에 의하면 북당진~고덕에서만 지금까지 제어기 오동작, 부품결함, 변압기 부싱 고장 등 20여 차례의 다양한 설비고장이 발생해 최장 한 달 이상 송전선로 정상운영에 차질을 빚었다.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는 “GIS는 물론 변환용변압기, 사이리스터밸브 등에서도 수시로 문제가 터지고 있다. HVDC는 특수설비라 일반적 GIS가 아닌 절연을 키운 설비를 넣어야 하는데, 설계부터가 잘못된 것”이라며 “하지만 전문영역이라 한전이 잘 모르다 보니 사고가 나면 제작사 팔을 비틀어 뒤집어 씌우는 일이 많다고 들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당진~고덕 1단계 1.5GW는 2021년, 나머지 2단계 1.5GW는 올해 말 준공 예정이다. 사업비는 1조3598억원이 들었다. 한전은 준공 이후 3GW 정격 송전이 가능하는 입장이지만, 1단계조차 아직까지 용량대로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첫 육상 HVDC인 북당진~고덕구간의 파행 운영이 현재 한창 건설 중인 신한울~신경기(동해안~수도권) HVDC로 확산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전력계통 전문가인 전영환 홍익대 전기공학부 교수는 “북당진~고덕에서 발생한 절연파괴 사고기록은 데이터상으로도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라며 “이는 HVDC로부터 발생하는 고조파 외란이 지속적으로 설비를 열화시키고 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한울원전 부지에 건설하고 있는 HVDC 변환소는 원전 발전기 축진동에 의한 간섭 등 고덕변환소보다 훨씬 안정성이 취약한 곳”이라며 “기본적으로 HVDC는 안정적인 교류시스템 안에서 운전이 가능한 기기다. 직류전원인 재생에너지가 증가하는 계통에서 HVDC 운전조건은 더 열악해진다. 한전은 더 늦기 전에 HVDC를 전면 재검토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HVDC 전문가는 “북당진~고덕의 문제는 동해안~수도권 프로젝트(EP)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지난번 전압강하 때는 수도권 10% 정도가 영향을 받았지만, 만일 EP에서 사고가 난다면 수도권의 절반 정도가 날아갈 수 있다”면서 “총체적 부실이다. 계획된 송전량보다 훨씬 낮게 운전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2026년 준공을 목표로 하는 동해안~수도권 HVDC의 계획 송전량은 8GW에 달한다. 이 노선의 동부지역 끝단에는 신규 원전인 신한울 3,4호기도 들어설 예정이다. 

국정감사 등을 통해 HVDC 송전선로의 문제점을 지속 제기해 온 양이원영 의원은 “HVDC 송전선로의 고장확률은 교류 송전선로보다 높고, 실제 국내에서도 지속적으로 고장사고가 발생하고 있지만, 정확한 원인규명이나 대책마련이 되고 있지 않다”면서 “국가 전력망은 실험설비가 아니다. HVDC 도입을 전면 재검토해 검증된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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