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이행 발전자회사 VS 민간대기업 VS 중견기업간 형평성 논란
RPS 시장정산 및 제도운영 놓고 전력당국 향한 불만·불신도 커져

▲한 복합화력발전소 부속설비동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기사와 직접 관련없음.
▲한 복합화력발전소 부속설비동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기사와 직접 관련없음.

[이투뉴스] 올해로 도입 8년차를 맞은 RPS(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 제도가 전력시장의 양극화만 부채질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발전공기업과 민간발전사간 해묵은 불공정 경쟁 논란은 물론,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간 ‘수익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눈에 띄게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RPS시장운영과 정산을 맡고 있는 전력당국의 주먹구구식 제도운영에 대한 불만도 입길에 오르고 있다. 

21일 발전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2년부터 RPS로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려왔다. 500MW 이상 석탄‧원자력‧LNG발전소를 보유한 발전사에 매년 일정비율로 공급의무를 부여한 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불이익을 주고 있다. 6월말 기준 21개 발전사가 직접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을 벌이거나 외부에서 REC(신재생공급인증서)를 사들이는 방법으로 공급의무를 이행하고 있다.

2011년까지 FIT(발전차액지원제)란 보조금 정책을 유지하다가 이듬해 발전공기업부터 RPS를 시범 도입했다. 당시 제도 전환 명분은 재생에너지 비중목표 확대였으나, 실상은 FIT로 일반 발전사업자수와 차액지원금이 급격히 불어나자 정부가 해외사례를 참조해 서둘러 도입한 제도가 현재의 RPS다. FIT든, RPS든 결국 전기를 사용하는 소비자가 요금이나 전력기금 등으로 그 대가를 지불하는 건 마찬가지다.

문제는 어떤 제도를 재생에너지 확산정책으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전력산업과 시장의 양상, 그로 인한 경제‧산업적 효과도 극명하게 갈린다는 점이다. 최근 재생에너지 업계가 RPS 제도로 공기업‧대기업 중심의 시장환경이 고착화 돼 민간‧중소중견기업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실제 RPS시장의 절대비중을 차지하는 한전 6개 발전자회사는 비용효과적인 재생에너지 조달여부에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어차피 의무이행에 투입된 비용을 정부가 적정가로 전액 보상해 주고, 일부 손실이 나더라도 훗날 정산조정계수로 총괄수익을 보전받기 때문이다. 최근 발전공기업들이 앞다퉈 대규모 직접투자사업이나 SPC(특수목적법인) 지분투자에 나서는 배경이다.

반면 민간사업자는 규모에 따라 희비가 갈리고 있다. 자체사업 투자여력이 충분한 일부 대기업들은 공격적 신‧재생에너지 관련사업으로 기존사업 못지않은 수익을 챙기는 반면, 1개 LNG발전소로 RPS에 편입된 중소‧중견 사업자들은 주력사업이 적자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외부 REC구매 부담으로 이중고를 호소하고 있다.

사정은 이들에게 REC를 판매해 적정수익을 회수해야 하는 소규모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들도 마찬가지. 대규모 기저발전기가 전력시장에 추가진입하면서 SMP(전력시장한계가격)는 저가격을 유지하는 가운데 최근 들어 REC가격까지 폭락하면서 사업성이 예년같지 않기 때문이다. 2년 전만해도 12만원대였던 REC 현물거래가는 최근 6만원대로 절반 가까이 떨어진 상태다.

중견 RPS의무이행사 관계자는 "대기업은 SPC든, 자체사업이든 자금이 충분하니 가급적 자체사업을 만들어 수익을 올리고 있지만, 우리처럼 규모가 작은 발전사는 LNG발전사업도 손실을 보면서 재생에너지 조달비용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면서 "최근 사정이 어려워진 재생에너지 사업자들도 우리와 동변상련의 심정"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발전사 관계자는 "발전공기업이나 대기업은 RPS 의무량을 늘리고 싶어할 정도로 중소·중견기업과 사정이 다르다"면서 "일부 발전사는 업황이 갈수록 나빠져 기존 REC 판매사들과의 장기계약을 앞으로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수준이다. 그럼에도 정부나 전력당국은 사각지대에 놓인 발전사업자들에게 무신경하다"고 토로했다.

정부와 전력당국의 임기응변식 RPS 운영에 대한 불만과 불신도 팽배한 상태다. 앞서 2017년부터 전력거래소는 한전, 발전사 등과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RPS 기준가격 산정에 대한 적정 상·하한을 직전년 기준가격의 ±20%에서 ±5%로, 다시 작년말 ±10% 등으로 변경키로 물밑 합의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은 올해 2월 정부 반대로 비용평가위에서 관철되지 못했다. 올해의 경우 이 기준 적용 시 한전 정산비용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발전사 RPS 담당자는 "기준가격 상하한을 합리적으로 결정하기 위해 당국과 3년째 협의를 벌이고 있지만, 매번 제도는 한전 지출이 최소화 되고 중소·중견 의무이행사는 손실을 떠안는 쪽으로만 결정되다보니 (전력당국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쌓이고 있다"면서 "정부와 당국에 원하는 건 수익을 남기게 해달라는 게 아니라 최소 예측가능한 사업환경을 만들고 과도한 변동성을 줄여 달라는 것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 담당자는 "어정쩡한 규모 의무이행사들은 소위 사각지대서 피멍만 들고 있다. 이럴거면 차라리 절대 손해 안보는 발전자회사와 이리저리 빠져나가는 대기업들이 의무이행량을 모두 가져갔으면 좋겠다"면서 "이런 와중에 한전자회사만 가능한 석탄혼소 정산가는 2배나 상승했고 자체건설 정산단가는 현저히 떨어졌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라고 부연했다.

재생에너지 시장·정책 전문가도 RPS가 본래의 기대효과 대신 시장 양극화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한다.

A 컨설팅기업 대표는 "애초 RPS 도입명분은 경쟁을 통한 단가하락과 그로 인한 대규모 공급인데, 지금은 비용은 낮아졌는데 가격은 수년전과 차이가 없다. 원래 추구했던 바와 완전히 다른 방향"이라며 "초기에 중소·중견기업들이 어렵게 밥상을 차려놨더니 이제 대기업과 대자본이 독식하는 식이다. 예측가능한 FIT로 속히 전환하지 않으면, 이런 시장 양극화와 사회적 폐해는 더욱 심각해 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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