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정부 차원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 있어야 소비구조 개선
“에너지 시장구조 개선, 전기요금 현실화 등 가격신호 중요”

‘일관된 정책 실행의지’를 성패 일순위로 꼽아

[이투뉴스] 정부가 대대적인 에너지효율혁신을 외치고 나섰다. 3차 에너지기본계획을 통해 윤곽을 잡은 후 8월 일종의 로드맵을 내놓으면서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에너지효율은 가장 친환경적이고 경제적인 제1의 에너지원’이라는 수식어를 앞세울 정도로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우리나라의 에너지효율 정책과 달성 수준은 주요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낙제점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2017년 기준 독일의 에너지원단위(TOE/천달러)가 0.086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0.159나 된다. 일본(0.089)은 물론 에너지를 많이 쓰는 이미지를 가진 미국(0.123)보다도 월등히 높다. 특히 에너지다소비업종이 즐비한 제조업 등 산업부문의 원단위 개선이 없으면 갈 길이 멀다.

▲주요 국가 에너지수요 탈동조화 추이
▲주요 국가 에너지수요 탈동조화 추이

따라서 에너지효율을 제1의 에너지원으로 만들겠다는 정부 목표는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지적이다. 특히 주요 선진국의 경우 경제가 성장하면서도 에너지는 감소하는 GDP와 에너지 수요 간 탈(脫)동조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물론 에너지효율혁신을 에너지정책의 전면에 내걸었던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국가 에너지계획을 세울 때마다 표현만 다를 뿐 에너지수요관리 내지 에너지효율 강화 등의 표현으로 매번 앞 순위에 등장시킨 바 있다. 하지만 구호만 거창하게 내걸었을 뿐 구체적인 실행방안도 정책의지도 실종된 채 시간만 보냈다는 평가다.

에너지수요관리 전문가들은 이번에 내놓은 에너지효율 혁신전략이 이전과 똑같은 길을 걸어 서는 이같은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원대한 목표에 취해 있기보다는 목표를 좀 낮추더라도 이를 달성하기 위한 세부적인 전략과 실천과제를 내놓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정부의 지속적인 예산지원 및 실행의지와 기업·국민의 실천 유도가 에너지효율혁신의 성공여부를 가른다는 진단이다.

◆2030년까지 3000만TOE 감축…역대급 목표 설정
정부는 에너지효율 혁신전략 추진을 통해 오는 2030년 최종에너지 소비를 기준수요(BAU) 대비 14.4%(2960만 TOE) 감소하겠다는 역대급 목표를 설정했다. 이러한 에너지소비 감축량은 2200만가구(4인 가정) 또는 중형 승용차 4000만대의 1년 소비량과 같은 수준이다. 목표를 달성할 경우 2030년 기준 에너지 수입액을 10조8000억원 절감할 수 있으며, 에너지 효율분야의 산업화를 통해 일자리도 7만개 가량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규제·인센티브 조화를 통한 부문별 효율혁신 ▶시스템·공동체 단위 에너지소비 최적화 ▶에너지효율 혁신 인프라 확충 ▶수요관리에서 연관산업 육성병행으로 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정책목표를 내놨다. 우선 전체 에너지소비의 61.7%를 차지하는 산업부문은 철강, 석유화학 등 주요 에너지다소비 사업장의 효율향상과 ICT 기반의 공장에너지관리시스템(FEMS) 활용확대를 중점 추진한다. 또 정부와 다소비사업장 간 에너지원단위 개선목표를 협약하는 자발적 에너지효율목표제도 도입한다.

목표를 달성할 경우 우수사업장으로 인증하고 에너지 의무진단을 면제하는 한편 중소·중견기업에 대해서는 해당연도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금(전기요금의 3.7%)을 일부 환급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 중이다. FEMS 확대를 위해선 투자여력이 부족한 중소·중견기업 대상으로 설치보조금 지원을 확대함과 동시에 EMS(에너지관리시스템) 전문사업자 등록제도를 도입해 에너지절감요소 발굴, 개선 컨설팅 등 사후관리 서비스 역량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건물부문은 미국의 ‘에너지스타 건물’ 제도를 벤치마킹해 기존건물에 대한 효율평가체계를 마련하고, 고효율 가전·조명기기 확산 지원과 함께 고효율 제품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데 주력한다. 또 LED에 비해 에너지효율이 떨어지는 형광등의 최저효율 기준을 단계적으로 상향해 오는 2027년 이후 신규로 제작하거나 수입한 형광등의 시장판매를 금지한다.

수송 부문은 차량 연비향상과 차세대 교통시스템의 지속 확충을 추진한다. 먼저 기술개발, 친환경차 보급 확대 등을 통해 승용차 평균연비 수준을 대폭 향상(2030년 목표 28.1km/ℓ)할 계획이다. 여기에 대당 에너지소비량이 승용차의 5배 수준인 중대형 차량(16인승 이상 승합차 및 총중량 3.5톤 이상 화물차)에 대해서도 2022년까지 평균연비기준 도입을 추진한다.

시스템·공동체 단위 에너지소비 최적화 분야는 산업단지 내 ‘분산전원+FEMS+통합관제센터(TOC)’를 기반으로 한 통합 에너지관리·거래 표준모델을 실증하고 확대해 나간다. 이밖에 가상발전소(VPP)를 활용한 에너지거래 플랫폼, 열·스팀·압축공기 등 폐에너지의 공장간 거래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에너지효율혁신 인프라 구축을 위해 EERS(에너지효율향상 의무화제도)를 도입한다. EERS는 한전, 가스공사, 지역난방공사를 대상으로 2018년부터 시범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에너지공급자가 효율개선목표 달성을 위해 국민, 기업 등에 절감효과가 우수한 고효율 설비와 시스템 등의 설치를 지원하는 형태다. 정부는 시범사업 결과를 면밀히 분석해 2020년까지 EERS 추진을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할 예정이다.

◆가격과 시장구조 바뀌어야 소비구조도 변화
에너지절약사업의 첨병을 맡고 있는 ESCO업계는 정부의 에너지효율 혁신전략에 환영의 뜻과 우려를 동시에 표명하고 있다. 한때 활기를 띄던 ESCO시장이 침체기에 빠진 것은 정책 일관성 부재와 그로 인한 신뢰성 저하에 기인하는데 이번에도 약간 겹친다는 것이다. 우선 효율혁신을 에너지진단과 연계하는 방안과 EERS 실행방안으로 ESCO투자사업 방식을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선 기대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에너지진단 및 컨설팅 기술능력을 갖추지 못한 업체가 난립하면서 발생한 문제와 함께 대기업 ESCO 지원중단에 대한 해법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에너지효율혁신을 위해 산업부가 내놓은 정책들이 허공의 메아리로  흩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강력한 실행계획이 마련돼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즉 에너지이용합리화계획을 비롯해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등에도 효율혁신전략에 담긴 정책들이 반영, 범정부  차원의 지속적인 관심과 강력한 이행의지를 당부했다.

최악의 에너지 효율구조를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 수송 분야의 경우 에너지 절약과 미세먼지 저감 등 친환경 정책의 조화가 중요하지만 부처별 엇박자로 인한 연계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결국 정부와 지자체 및 국민 개개인의 선진형 에너지 인식 제고가 필수요소라는 것이다. 

여기에 정권이 바뀌어도 에너지효율정책에 대한 뼈대는 바뀌지 않는다는 중장기적인 정책 신뢰도 확보와 함께 에너지 효율화와 친환경 정책 등 미래에 대한 고민을 거시적으로 보는 시각도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또 수송 분야의 경우 에너지절약 정책의 일관성과 인센티브 정책을 도입, 국민적  공감대를 얻는 것이 핵심 요소라는 의견이 많았다.

시민단체에선 고효율 에너지소비사회라는 정부의 에너지효율 혁신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생산-유통-소비 모든 단계에서 국민의 자발적 참여가 이뤄지고, 이 참여가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실행체계와 수단이 담보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에너지를 사용하는 소비자의 행동변화를 통해 구매의 변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공공, 기업,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행동하게 하는 실행체계가 관건이라는 시각이다.

산업부가 에너지효율 혁신전략에서 제시한 목표달성을 위한 추진방향과 과제는 기술 발전을 반영한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지만, 결국 이행의 문제와 얼마나 성과를 낼 수 있을 지가 중요하다는 전문가 진단도 나왔다. 특히 에너지효율정책이 보다 효과적인 투자성과를  내려면 무엇보다 소비자의 자발적인 유인체계 조성과 시장의 가격신호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유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정보·국제협력본부장은 이달 초 열린 에너지효율 혁신전략 토론회에서 “에너지효율 향상과 관련해서는 시장의 가격신호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구조에서는 시장참여자들의 자발적인 노력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왜곡시키지 않도록 에너지 운영시스템, 가격, 시장구조를 먼저 개선해야만 고효율 에너지 소비구조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채덕종 기자 yesman@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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