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와 열 생산원가의 절반수준 판매로 경영난 가중
공기업은 정부가 뒷배, 민간기업 도산책임 누가지나

[이투뉴스] 한전의 적자가 연말까지 30조로 예측되는 등 치솟는 원가에도 불구 올리지 못하는 요금으로 국내 에너지업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조단위 적자로 인해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가 가장 많이 거론된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가장 아픈 사업자는 따로 있다고 말한다. 이제 7곳밖에 남지 않는 구역전기다.

구역전기사업은 열과 전기를 함께 공급하는 구역형 집단에너지사업을 말한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사이 정부가 한전의 전기독점을 깨고 새로운 에너지 사업모델을 만들겠다며 도입했다. 하지만 국내 구역전기사업자는 지금까지 단 한 곳도 흑자를 낸 곳이 없다. 20년 가까운 기간 적자를 본 채 사업을 지속해 온 셈이다.

산업단지를 제외한 지역난방부문에서만 구역전기사업자는 15곳(사업장 기준으로는 20개소 이상)이 넘게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감소하다 최근에는 7곳으로 쪼그라들었다. 수완에너지처럼 상당수 사업자가 전기직판을 포기하고 역송으로 돌렸다. 여기에 짐코와 티피피는 적자에 허덕이다 결국 사업을 청산했다.

구역전기가 이처럼 어려운 이유는 전기는 한전, 열은 한난이라는 두 공룡 사이에 끼인데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전기는 한전, 열은 한난 요금을 준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2010년대 들어 열부문은 한난요금의 110%까지 상한이 일부 풀렸지만 전기는 여전하다. 규모의 경제에 미달하는 상황에서 거대 공기업과 경쟁하려다 보니 적자상태를 벗어나기 어렵다.

최근 글로벌 가스가격 급등으로 그 격차가 더욱 커지고 있다. 구역전기업계는 업체별로 차이는 있지만 전기 평균생산원가는 kWh당 220∼240원이나 판매는 한전과 동일한 120∼130원에 머물고 있다고 원가구조를 공개했다. 한전의 판매량이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많아 적자규모가 클 뿐 판매량이 비슷하다고 가정하면 구역전기 적자규모는 40조원을 훌쩍 넘을 것이란 하소연이 나오고 있다.

열부문 역시 생산원가가 Gcal당 18만원에 달하지만 지역난방 소비자 공급가격은 10만원이 채 안된다. 지역난방 열요금을 공급업체별 원가베이스가 아닌 도시가스 민수용 요금과 연계해 결정하기 때문이다. 한난을 비롯한 여타 집단에너지사업자 모두 손해보면서 팔고 있는 비슷한 상황이다.

구역전기가 전기와 열을 모두 판매하는 대표적인 융복합 에너지 공급모델로 비치지만, 현실은 생산원가의 절반 수준에 전기와 열을 공급하는 자선사업가라는 비아냥을 듣는다. 곳간이 넘쳐나 자발적으로 베푸는 것이 아닌 기아에 허덕이면서 강제로 반값에너지를 공급하는 특이한 사례라는 의미다.

구역전기업계 관계자는 이와 관련 “모든 구역전기사업자가 단 한 번도 흑자를 낸 적이 없을 정도로 어렵다고 하면 그냥 사업권을 포기하면 되지 왜 하고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 말이 맞다. 우리가 바보다. 모기업이 에너지업체가 아니었으면 진즉 사업권을 내던졌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현재 구역전기사업을 펼치는 곳은 한국지역난방공사(삼송지구 및 동남권)와 SK E&S(부산정관에너지)가 남았고, 나머지 5곳은 도시가스사다. 모두 에너지사업을 하는 처지에 적자를 핑계로 필수에너지인 전기와 지역난방 공급을 중단할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역전기가 명맥만 겨우 유지하면서 버틴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정부가 계속해서 구역전기 보상 강화를 통한 사업 정상화를 외쳤기 때문이다. 가장 요구가 많았던 CP(용량요금) 지급에서부터 계통기여도에 따른 인센티브 지급 등 제도개선을 여러 차례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담당자가 바뀌고 해가 지나면 결국 제자리걸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문제투성이 제도와 함께 한전을 비롯한 전력당국의 과도한 규제와 견제도 구역전기사업 추락에 영향을 끼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구역 내 수요의 60% 이상 전기를 의무적으로 생산하도록 의무를 부여하는 것을 비롯해 전기요금·보완전력 제한 등 경쟁이 불가능한 구조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조성봉 숭실대 교수는 “한전과 가스공사는 공기업이다. 정부가 암묵적으로 채무보증을 하고 있고, 나중에 세금으로라도 매꿔준다. 민간사업자라면 그냥 파산이다. 외국이었으면 소송감이다. 수익을 올릴 근거를 다 뺏기고도 운영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들(구역전기업체)이 애국자다”고 평가했다. 이어 “구역전기의 역할 여부를 판단해 살리려면 지원을 제대로 하든지, 아니면 좌초자산을 흡수하고 사업정리를 하든지 빠른 결정 밖에는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채덕종 기자 yesman@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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