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 이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이투뉴스 칼럼] "우리는 드디어 합의에 도달했다. '코펜하겐 협정'이 모두의 기대를 충족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본질적인 첫걸음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코펜하겐 기후변화회의 폐막을 알리며 애써 코펜하겐 협정이 모두의 '합의'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합의의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던 사람 중에 코펜하겐 협정을 '합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협정문이 주요 당사국들의 갈등을 덮기 위한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협정에 따르면 이달 31일까지 선진국은 온실가스 추가감축 목표를, 개발도상국은 구체 감축목표 없이 감축계획을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올해 끝내지 못한 회의를 내년에 다시 진행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를 둘러싼 선진국과 개도국의 시각은 매우 상이하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과 선진국들이 코펜하겐 협정을 두고 "협상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 반면, 중국은 "모두가 행복한 협상"이라고 말한 것에서 드러난다. 이는 중국이 사실상 승리 선언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번 회의를 통해 중국은 온실가스 의무감축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관철시킴에 따라 초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 논의가 재개된다고 하더라도 중국은 개도국들이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아닌 감축계획을 발표하기로 한 내용을 들어 온실가스 의무감축을 거부할 것이다. 선진국들은 코펜하겐 협정은 온실가스 의무감축 내용에 관한 것이 아니라며 당연히 재논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겠지만 어쨌든 중국에게 온실가스 감축에 상응하는 선물을 주지 않으면 논의가 진전되기는 힘든 상황이다. 

반대로 미국은 국제사회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확인함과 동시에 미국이 기후변화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할 능력이 없음을 모순적으로 보여줬다. 미국을 제외한 포스트(Post) 2012체제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국제사회에 각인시켰지만 해결을 주도한다기보다는 온실가스 배출량 1위라는 위치로 인해 방어적인 위치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협상의 키를 쥐고는 있었지만 기후변화 해결에는 오히려 장애물로 작용했다. 이는 향후에도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 논의가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기후변화 협상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온 유럽연합(EU)과 유엔의 역할 역시 명확한 한계가 드러났다. 그간 EU는 기후변화 대응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들로서 EU 중심의 기후변화 질서를 구축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미국과 중국이라는 초강대국들에게 끌려다니며 체면만 구기게 됐다. 더 심각한 것은 유엔인데, 지난해 9월 기후변화 정상회의를 열면서까지 기후변화 문제 해결에 총력전을 벌였지만, 당사국간의 이견을 좁히지 못하며 결국 국제사회 중재자로서의 역할에 한계를 드러냈다.

아무런 법적 구속력이 없는 코펜하겐 협정이 도출됨으로써 국제사회는 올해 안에 기후변화 대응 논의를 끝내자는 약속을 스스로 파기했다. 모든 상황이 원점으로 돌려졌지만 지구온난화는 더 가속화되고 있다는 증거가 쏟아지고 있다. 각국의 정치인들이 더 큰 합의를 위한 진전이라고 열변을 토했지만 상황은 분명히 역행했다.

내년 초 각국의 감축목표가 발표되면 다시 한 번 법적인 구속력이 있는 합의를 이루기 위한 논쟁이 이루어질 것이다. 만약 그때마저도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에 실패한다면 지구는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 우리는 기후변화를 둘러싼 각국의 복잡한 셈법이 결국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기록할 것이다. 그런 파국을 막기 위해 우리가 지금 각국의 정치인들에게 어떤 요구를 해야 하는지를 시급히 따져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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