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안전위 조사결과 발표] 발전소장 주도로 사고 은폐 결정

▲ 고리1호기 전원중단 사고 당시 전원 계통 현황도

[이투뉴스] 외부 전력공급이 일시적으로 완전 차단된 고리 1호기의 원자로 냉각수가 사고 당시 정전 10여분만에 36.9℃에서 58.3℃로 21.4℃나 온도가 상승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당시 현장 책임자였던 한국수력원자력 제1발전소장은 심적 부담을 느껴 현장에 있던 간부들과 논의해 상부 및 원자력안전위원회 등에 보고하지 않기로 은폐를 주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원자력안전위원회(위원장 강창순)는 지난달 9일 발생한 고리 1호기 전원 중단사고와 관련 이달 13일부터 현장에 조사단을 파견해 조사한 결과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21일 밝혔다.

안전위는 보고 은폐 등 안전규정 위반자를 관련법에 따라 사법처리하는 것은  물론 고리1호기 재가동 시기를 전력계통 전반에 대한 성능 확인 이후로 미루기로 했다.

◆ 원자로 냉각수 21.4℃나 급상승

안전위 조사로 드러난 고리1호기 정전사고는 원칙을 지키지 않아 위험을 키운 전형적 인재다.

안전위 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9일 핵연료 교체 및 정비에 들어간 고리 1호기는 같은날 오후 7시 30분께 한수원 직원 1명과 용역회사(한빛파워) 시험원 3인이 발전기 보호계전기 시험을 시작한다.

하지만 1시간여만인 오후 8시34분께 3개의 외부전원(345kV) 중 2개 회선이 정비중인 상태에서 나머지 1개 회선이 보호계전기 시험 중 인적오류로 차단되는 사고가 발생한다.

더욱이 이처럼 외부전원이 완전 차단되는 사태에 대비한 비상디젤발전기 2대도 무용지물이었다.

1대의 비상디젤발전기는 분해해 정비중이었고, 대기중이던 나머지 1대 역시 기기 고장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런 위험천만한 상황은 12분이나 지속됐다.

다급해진 현장 인력들은 정비를 벌이던 1개 외부회선을 복구 완료해 전원 공급을 재개한 것은 오후 8시 46분.

이 시간동안 원자로를 식혀주는 냉각수 온도는 36.9℃에서 58.3℃로 21.4℃나 급상승했고, 사용후핵연료저장조의 온도역시 21℃에서 0.5℃ 오른 21.5℃로 상승했다.

거대 원전의 안전제어 능력이 10여분 이상 완전 상실됐던 셈이다.

◆ 발전소장이 사고 목격 20여명에 '함구령'

뜻밖의 정전사고 자체는 그렇다쳐도 사고 이후 원전 운영 당국이 취한 조치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안전위 조사에 의하면 전원 재개 직전인 당일 오후 8시 42분께 저녁식사를 마치고 주제어실을 방문해 사건발생을 확인한 발전소장은 4분여뒤 간부 및 직원 20여명이 집결한 상태서 복구를 확인했다.

하지만 관계법령에 따라 즉시 사고를 상부 및 안전위에 보고해야 할 발전소장은 보고 대신 함구령을 내린다.

마침 이날 정부가 원전 안전대책을 발표한데다 책임자로서 완벽운전에 대한 심적 부담과 두려움이 있었다는 게 발전소장이 안전위에서 진술한 내용이다.

일단 사고은폐로 결론을 내자 현장 관계자들은 조직적으로 증거인멸에 나섰다.

당시 발전팀의 모든 운전원은 일지에 정전사고와 복구일시 기록을 의도적으로 누락했고, 비상디젤발전기 기동실패 기록도 시험괸리대장에 기재하지 않았다.

또 비상발전기 2대가 모두 운전 불가능한 상태에서도 이튿날부터 핵연료를 인출하는 등 계획된 정비업무를 강행했다.

원전 운영기술지침에 의하면 최소 1개의 외부전원과 1대의 비상발전기가 운전가능해야 핵연료 인출이 허용된다. 

◆ 책임자 인사발령 사흘만에 전말 드러나

영원히 묻힐뻔한 이번 사고가 발생 한달 이후에 세상에 드러난 것도 우연의 힘이 컸다.

실타래는 우연히 술자리에서 현장 근로자들의 사고대화를 엿들은 부산시 한 시의원이 지난 8일 고리본부 경영지원처장을 방문에 정전사고에 대한 사실여부 확인 요청하면서 풀리기 시작한다.

이에 경영지원처장이 안전팀장을 불러 사건을 확인하고, 이튿날 오전 기술실장이 신임 발전소장에, 발전소장이 신임 고리본부장에게, 고리본부장잉 사장에 구두로 잇따라 보고한다.

당시 고리본부장은 월성본부장으로, 은폐를 주도한 발전소장은 사흘전 본사 안전기술 본부 위기관리실장으로 인사발령이 난 상태였다.

당시 김종신 한수원 사장은 신임 고리본부장에게 구두보고를 받고 전임 본부장에게 전화로 정전사고를 인지하고 있었는지 확인했으나 "모르는 사항이나 확인해보겠다"는 답변만 받는다.

곧이어 사실을 확인한 전 고리본부장은 자신은 보고를 받지 못해 모르고 있었으나 사고가  있었다는 회신을 준다.

결국 휴일이었던 지난 11일 오후 한수원 사장이 당시 발전소장으로부터 대면보고를 받고 사실을 확인한 뒤, 안전위와 지경부 등 상부에 유선으로 보고사항이 있으니 발전본부장이 직접 보고하겠다고 통보한다.

정부기관에 사건의 전말이 보고된 시간은 12일 오전 10시 30분으로 확인됐다.

◆ 안전위, 24시간 감시시스템 가동키로

안전위는 보고지연과 사건은폐를 위한 기록 누락 등 관련 책임자들에 대해 사법기관에 고발조치 하는 등 엄중 문책한다는 방침이다.

또 재발방지를 위해 원전 안전과 직결되는 발전소 현장 정보와 보고사항은 안전규제기관이 24시간 감시하고 자동으로 즉시 통보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연내 구축키로 했다.

아울러 비상디젤발전기 안정성 확보를 위해 내달말까지 모든 원전의 설비를 특별점검하고 결함이 확인된 발전기의 부속을 신품으로 교체하는 등 전력계통 설비를 보강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사고로 무너진 원전 운영당국에 대한 신뢰는 회복까지 상당기일일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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