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준위 폐기물 저장고 포화…정부, 연내 '중간저장' 공론화

▲ 사용후핵연료가 보관되고 있는 원전내 임시저장수조. 포화시점을 늦추기 위해 조밀화 작업이 추진되고 있지만 그 역시도 임시방편이다.

[이투뉴스] 전국 원자력발전소 임시저장시설에 보관돼 있는 사용후핵연료는 지난 3월말 기준 36만2840여다발.(한국수력원자력 집계) 이대로 가면 4년뒤 고리원전을 시작으로 10년 이내에 모든 저장고가 포화상태에 이른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쌓아둘 곳이 없어 전력생산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원전당국이 내놓은 임시방편이 바로 저장소 조밀화다. 말 그대로 똑같은 수조에 이전보다 촘촘히 핵연료를 채워넣음으로써 물리적 포화시점을 늦추는 방법이다. 기존 핵연료 저장랙(Storage Rack)을 고밀도 조밀저장대로 바꾸거나 빈공간에 추가설치(Reracking)하는 방법 등이 동원된다.

▲ 사용후핵연료가 발전소내 저장랙에 투입되고 있다. 원전 당국은 이런 격자모양의 랙을 고밀도 조밀저장대로 교체하거나 추가설치하는 방법으로 포화시점을 늦추고 있다.
하지만 이런 '편법'은 대가가 따른다. 고농도 방사능을 내뿜는 저장소 내 핵폐기물 밀도는 그만큼 높아지고, 그에 반비례해 임시저장소의 안전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국내 원전은 공공연한 조밀화가 한창이다. 포화시점을 최대 7~8년까지 늦출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은 자체 기술로 개발한 원전을 해외로 수출하는 원전산업 강국이다. 그러나 사용후핵연료 문제에 있어서는 어떤 대책도 공론화 논의도 없는 '관망국(觀望國)'이나 다름없다. 원전 반대여론에 부담을 느껴 차일피일 논의를 미룰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사회적 합의 유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근 한국수력원자력이 본지에 제공한 '원전별 사용후핵연료 저장 현황'에 따르면, 지난 3월말 현재 각 원전에 저장된 사용후핵연료 누적량은 고리 4804다발, 영광 4740다발, 울진 3906다발, 월성 34만9392다발 등이다. 비상노심분(원전내 사고 발생 시 핵연료를 원자로에서 임시저장소로 옮겨놓기 위한 자리)을 제외한 이들 원전의 최대 저장량은 각각 5971, 7154, 5550, 49만9632다발. 이 추세라면 고리는 2016년, 월성 2018년, 영광 2019년, 울진 2021년에 각각 저장소가 들어찬다.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 5월말 기준 전국 4대 원전의 누적 방폐물 저장량은 전체 저장능력 10만8037드럼의 90% 수준인 9만39드럼이다. 여기에 매달 170드럼씩 새 방폐물이 발생한다. 다만 중·저준위는 이미 경주에 전용 방폐장을 확보해 향후 처분에 대한 근심을 덜었다.

▲ 경주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동굴 입구.

이를 두고 일각에선 준공을 앞둔 경주 방폐장에 사용후핵연료도 넣으면 안되냐고 한다. 그러나 중·저준위 방폐장에는 법으로 고준위 폐기물 반입이 금지되고 있다.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도 불가능한 우리나라가 중간저장을 가장 합리적인 대안으로 보는 이유다.

중간저장은 포화된 임시저장시설을 대신할 별도의 저장시설을 원전부지 인근에 지어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하는 방법이다. 보관형태에 따라 습식과 건식으로 구분되며, 최근에는 건식이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땅속에 전용 방폐장을 건설해 핵연료를 영구처분하는 방법은 아직 전 세계적으로 실현된 사례가 없고 주민 수용성 문제가 발생할 소지도 높다"며 "세계적으로 23개국이 중간저장 방식을 택한 뒤 재처리 기술 개발 등을 지켜보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저장여건이 갈수록 악화될 것으로 보고 가급적 연내 이 문제에 대한 공론화를 검토하고 있다. 원전지역 시·군의원 및 인문사회, 과학기술 전문가 22명으로 구성된 정책포럼이 대정부 권고문 형식으로 의견을 제시하면, 이를 기초로 정부가 기본원칙을 세우는 수순을 예상하고 있다.

정책포럼의 권고문은 오는 9월을 전·후로 발표될 가능성이 높다.

원자력 산업계 한 관계자는 "중·저준위 방폐장 건설 시 경험한 사회적 갈등과 천문학적 비용을 감안할 때 정책포럼이  제시할 수 있는 안(案)은 중간저장이 유일하다고 봐도 무방하다"면서 "장기적으로 미국의 재처리 허용까지 생각하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 2012년 3월말 현재 각 원전별 사용후핵연료 저장 현황 <한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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