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부, 차단기능형밸브와 압력조정기에 다른 기준 적용

지난해 7월말, 경기도 양주시에서 가스관련 밸브제품을 생산해 온 한 중소 황동소재 단조 전문업체는 모처럼 새 제품을 내놓고 희망에 들 떠 있었다.

어려운 경영여건에도 불구하고 3년간 10억여원을 투입, 정부 기준에 걸맞는 과류차단형액화석유가스용기용밸브(이하 과류차단형밸브)를 개발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곧 이 제품은 검사기관인 한국가스안전공사의 정밀검사와 제품검사를 통과해 출시를 앞두고 있었다.

과류차단형밸브란 가스배관(호스포함)이 외부 요인에 의해 파손됐을 때 가스폭발에 의한 대형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자동으로 가스를 차단해 주는 기능이 첨부된 밸브로 별도의 제품 개량 없이 기존 밸브처럼 LPG용기 상단에 부착해 사용이 가능하다.

이에 앞서 산업자원부는 차단기능형 LPG용기용 밸브를 올해 6월1일부터 의무적으로 사용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1994년부터 고시를 제정, 1998년 의무화 시행령을 공표해 놓고 있었다.

갈수록 늘어나는 가스누출에 의한 가스폭발사고를 저감시키기 위해 정부차원의 대책을 마련한 셈이다. 때마침 이 업체가 개발한 과류차단형 밸브는 정부의 취지에 부합하는 제품으로 업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가스를 자동으로 차단하는 밸브는 국내는 물론 선진국에서 조차 아직 개발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세계 최초 가스차단기능형 밸브 개발, 그러나 …

하지만 까다로운 정부고시처럼 가스충전이나 전도시에도 문제가 되지 않는 제품을 개발했다는 이 업체의 기쁨도 오래가지 못했다. 산자부와 가스안전공사는 새로운 현장적용시험을 이 제품에 적용하며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산자부는 "12미터의 가스호스를 적용했을 때도 가스차단이 이뤄져야 한다"며 제품의 기능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그러나 산자부가 요구한 '12미터 차단'은 애초 법상으로나 공학적으로 불가능한 요구였다는 게 업체의 주장이다.

LPG가스용기는 밸브 통과 후 압력조정기(저압조정기)를 부착하고 있는데, 시간당 4Kg의 유량이 통과하도록 돼 있는 현행 조정기 기준을 적용한 상태에서 호스의 길이가 12미터까지 길어지면 어떠한 과류차단형밸브더라도 제 기능을 해내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차단기능형 밸브는 밸브 내부에 스테인레스 재질을 볼(구슬)을 내장시켜 적정 압력 이상의 가스가 한꺼번에 유출될 경우(과류시) 유출구를 차단하는 원리에 착안해 개발됐다. 조정기에서 일정 압력을 제한하고 호스 길이까지 길어지면 볼이 작동하는 압력에 못미처 이 제품 역시 정상작동이 어려웠던 것이다.

더욱이 액화석유가스 안전관리법에서는 LPG가스 용기를 사용하는 경우 호스길이를 3m 이내로 제한하고 있고, 이를 넘는 경우에는 반드시 배관(강관)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법의 조건하에서 이 제품을 사용하면 기능상 문제가 없지만, 산자부 현장시험 조건대로라면 '검증되지 않은 제품'으로 전락하는 셈이다.

산자부가 요구하는 '12미터 현장시험 통과'는 이래저래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당장 이 업체는 정부의 무리한 현장시험 요구에 강하게 반발했다. 일개 중소 가스밸브업체가 감독기관이자 허가기관인 산자부와 가스안전공사 관계자를 상대로 법정 소송을 불사하기에 이른 것이다.

결국 이 업체는 지난 1월 "정밀검사와 제품검사를 받은 제품에 대해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다시 현장적용시험을 실시한다는 것은 명백한 직권남용"이라며 정부 관계자를 직권남용 혐의로 수원지검에 고소했고, 현재까지 검찰의 조사가 진행중이다.

10여명의 직원과 함께 근근이 회사를 꾸려나가던 이 업체의 생산라인은 이번 대정부 소송으로 인해 사실상 중단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업체는 "사운을 걸고 개발했던 제품이 고시에도 없던 현장시험에 좌절됐다며 법의 공정한 심판을 마지막 희망으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 법정 공방으로 비화된 차단기능형 밸브 논란

지난 5일 가스업계에 따르면 이처럼 산자부ㆍ가스안전공사와 한 가스밸브업체가 벌이고 있는 법적 공방이 가스산업계의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양측의 분쟁은 오는 6월 1일부터 전격 시행되는 차단기능형 밸브 보급 의무화와 맞물려 더욱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현재 LPG용기 밸브 개방에 의한 가스사고는 매년 평균 18건이 발생, 3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 정부가 과류차단형 밸브의 보급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유다.

현재 전국에 공급된 LPG용기는 약 1000만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지난해 2월 개정된 고압가스안전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이중  차단형 LPG밸브를 부착해야하는 20kg용기는 연간 약 350만개로 추산되고 있다.

또 이들 밸브는 3년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교체해 줘야 한다. 단순한 개폐 장치로 알려진 가스밸브에 차단기능이 의무화되면서 수백억대의 신규 시장이 창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맞물려 벌어지고 있는 한 업체와 정부간의 대립은 그래서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하다.

정부와 산하기관을 상대로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을 시작한 주인공은 평범한 밸브 제조업체인 광동금속(주). 이 업체는 지난해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한 때부터 정부가 아무런 법적 근거없이  현장테스트를 실시한다는 점에 강한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신동문 광동금속 대표는 "산자부 고시를 만족하는 제품을 개발하려고 지난 십여년간 여러업체가 시도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면서 "우리가 개발한 제품은 충전시에도 문제가 없고 전도시(넘어졌을 때)에도 가스가 차단되는, 고시에 부합하는 제품"이라고 말했다.

신대표는 "어렵게 중소기업이 제품을 개발했는데 정부가 돕지는 못할 망정 법상 3m만 사용하게 되어 있는 가스호스를 12m까지 사용해 현장적용시험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 이라며 "더욱이 이미 검사받은 밸브를 조정기와 호스를 결합해 현장적용시험 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관계기관의 반응은 냉담하다. 산자부는 정밀검사 이후에 현장적용시험을 거치는 것이 당연하며, 이때 내세운 12미터 기준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산자부 에너지안전팀의 한 관계자는 "농촌이나 차량을 이용한 상인의 경우 호스 길이가 3m를 초과하는 경우가 아직 많다"면서 "이 같은 현장적용시험을 거쳐 안전성 여부를 확실히 하는 것은 산자부로서는 당연한 임무이자 절차"라고 주장했다.

또 산자부는 각종 안전관리법의 제정 취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호를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안전관리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현장적용시험을 실시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에너지안전팀의 또 다른 관계자는 "가스안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에 걸맞은 시험을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산하기관인 한국가스안전공사 역시 현장시험의 당위성과 관련 산자부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가스안전공사 시험검사실의 한 관계자는 "저층 아파트 및 단독주택은 호스로만 돼 있는 곳이 있는데 그런 시설에서도 적용을 해야 밸브의 안전성 여부를 확실히 판단할 수 있다"면서 "공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현장적용시험을 하려는 것이지 다른 의도는 없다"고 해명했다. 

◆ 산자부 "공익이 우선" … 안전공사 개발제품은 '예외' 적용

이처럼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가운데 최근 산자부는 가스안전공사가 특허를 보유한 '차단기능형 압력조정기'의 시판을 허용하면서 광동금속의 제품에 줄곧 적용해 온 '12미터 차단' 기준을 면제해 또 다시 형평성 시비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가스안전공사 가스안전연구개발원과 모 업체가 공동개발한 것으로 알려진 차단기능형 LPG저압조정기(압력조정기)는 기존 밸브 후단에 부착, 조정기 후단에서 가스누출이 감지될 경우 자동 차단하는 기능을 갖췄으며 산자부 특례에 의해 곧 시판에 나설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사에 따르면 이 제품은 식당과 일부 가정에 설치하고 시험한 결과 제품 기능에 문제가 없어 LP가스의 고의사고를 예방하는데 크게 기여할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광동금속의 차단기능형 밸브 개발과 동시에 공교롭게 유사한 기능을 갖춘 또 다른 제품이 출시된 것이다.

하지만 산자부는 이 제품의 시판을 허용하면서 광동금속 제품에 적용했던 12미터 현장시험을 면제해 줬다. 게다가 이 제품은 호스앤드형(호스용) 제품의 경우 사용가능 길이를 3미터 이내로 제한 돼 '현실에 맞는 현장시험'을 주장했던 산자부의 논리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이 제품에 법상 제한거리인 3미터 이상 호스를 연결하면 앞서 광동금속의 사례처럼 제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결국 산자부가 똑같은 기능의 두 제품에 형평성에 어긋나는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게 업체측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산자부는 "두 제품의 궁극적 기능이 다른데 똑같은 기준으로 시험하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면서 "저압조정기는 검사특례가 적용돼 3미터 기준도 문제가 없다"는 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하고 있다.

산자부의 이 관계자는 "아무리 기능이 유사해도 과류형 차단밸브는 고압가스법 적용으로 받고 차단기능형 저압조정기는 LPG사업법에 해당된다"며 "압력조정기는 명백한 가스용품으로 정해진 검사기준을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광동금속 측은 "압력조정기의 시판 허용이야말로 산자부가 공정한 법 적용을 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신동문 광동금속 대표는 "만약 정부가 안전을 이유로 고시에도 없는 현장시험을 적용하려 한다면 같은 기능을 가진 압력조정기도 시험대상에 포함해야 했었다"면서 "민간업체의 제품에는 무리한 현장시험을 요구하면서 기관(안전공사)이 특허를 가진 제품은 문제삼지 않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차단기능형 밸브 사용 의무화를 불과 2달여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업계측에선 경제성 시비도 끊이질 않고 있다.

광동금속 등이 개발한 과류차단형 밸브의 경우 제품당 단가는 6500원선이지만 구조상 밸브와 함께 사용해야 하는 차단기능형 압력조정기는 2만원이 넘는 비용이 소요된다는 주장이다. 만약 차단기능형 압력조정기가 의무화되고 전국적으로 교체될 경우 소비자가 불필요한 비용부담만 추가해야 한다는 이유다.

특히 지난 2004년 가스안전공사가 개발했다는 차단형 용기밸브가 업계측의 자체 시험결과 전도시 등의 상황에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만큼 '산하기관의 제품만 살리려 한다'는 업체의 지적에 대해 정부가 납득할 만한 해명을 내놓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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