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ㆍ경쟁력은 갈수록 '뚝뚝' … 기관장은 치적에만 관심

에너지ㆍ자원 확보를 위한 우수인력 양성에 전 세계가 머리띠를 동여매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일부 공기업들은 '사람을 키우는 일'을 소홀히 해 갈수록 조직의 전문성과 현장감각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조직의 내부경쟁력을 냉정히 판단해 장기적 안목에서 인재육성을 힘써야 할 기관장조차 가시적 성과나 치적쌓기에만 급급해 이를 등한시하는 경향이 지배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경을 넘나드는 에너지전쟁 시대에 인재를 키우지 않는 나라는 경쟁력 약화, 기술종속의 악순환으로 이어져 결국 세계 무대에서 도태되고 만다는 보편적 진리를 되새겨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사람이 힘이다=산업자원부 에너지산업본부의 한 사무관은 A공사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진다고 했다. 제 아무리 수천명의 직원을 거느리는 메머드급 공기업이라도 막상 치열한 해외시장에 나가 당당히 어깨를 겨룰 직원은 손에 꼽을 만큼 적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세계 일류를 외치지만 당장 해외 경쟁 공기업들의 전문인력 비율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초라한지 절감하게 된다"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글로벌 기업', 세계 진출' 운운하는 것은 헛구호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어 말했다.

 

B공사의 10년차 과장급 간부인 J씨는 새로 입사한 후배들만 보면 한숨이 나온다고 했다. "에너지ㆍ자원 분야는 글로벌 인재만 살아남는다"며 평소 인력양성의 중요성을 설파해 온 그이지만 "경영평가나 임기중 치적에 정신을 빼놓은 기관장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는 것 같다"고 우려를 늘어놨다.

 

J과장은 "기관장들은 길어야 3년 임기동안 가시적 성과를 내는 데 관심이 있을 뿐, 임기가 끝나고 서서히 나타나는 인재양성에는 나서려고 하지 않는다"면서 "결국 갈수록 내부 인력의 전문성은 떨어지고, 조직 경쟁력도 약해지는 것이 눈에 보여 안타깝기만 하다"고 말했다.

         

그는 "내부 토론을 통해 '사람을 키워야 한다' '사내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등의 똑같은 지적이 나와도 보여주기식, 겉핥기식 교육만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는 수익에만 치중하는 시스템이 사람에 대한 장기계획을 세우지 않아 빚어지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퇴보하는 공기업 경쟁력= 인력양성 소홀로 인한 에너지공기업의 경쟁력 약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이처럼 도처에서 들려오고 있다.

 

중앙부처인 산자부는 물론 '문제의 기업'으로 지목당한 기업의 관계자조차 "옳은 지적이고, 맞는 얘기"란 맞장구가 나오는 정도다. 공기업의 전문성이 갈수록 떨어진다는 지적은 특정기업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는 방증이다.

 

관계자들은 이같은 현상의 원인으로 ▲기관장의 실적중심 경영과 외부평가 ▲내부 인력양성 시스템의 부재 ▲대학에서 배출되는 전문인력의 부족 등을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산자부 모 팀장은 "에너지ㆍ자원관련 대학들이 사라져 가뜩이나 자원공학쪽 졸업생들이 부족한데다, 이들 인력이 공기업에 취직해도 실력을 체계적으로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면서 "훌륭한 인재도 몇 년이 지나면 정원을 채우는 평범한 공무원의 한 사람으로 전락시키는 게 지금의 공기업 구조다"고 개탄했다.

 

실제 본지가 에너지 유관공기업들의 최근 3년간 교육훈련 및 인재양성 프로그램을 조사한 결과, A공사는 지난 2년간 외부 관계자를 상대로 한 교육 외에 단 한 차례의 내부 전문교육도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B공사는 몇 년전 '인재양성'을 기치로 인재육성 프로그램을 도입했다고 밝혔으나 엉뚱하게도 "아직도 하고 있느냐, 참여해본 적 없다"는 직원들의 반응이 나왔다.

 

공기업에서 파견돼 몇 년째 산자부 생활을 하고 있는 한 전문관은 "지금 해외에 노다지 광산을 우리가 얻었다고 해도 직접 생산계획을 짜고 광산을 설계하라면 할 사람이 몇 없다. 한마디로 경쟁력이 없다는 거다"면서 "이 틈에 엉터리 전문가만 양성되는 역효과가 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신입사원들의 경우 현장경험이 부족해 전문성을 길러 줄 수 있는 교육과정이나 해외연수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며 "각종 아카데미 과정을 수료한다고 해도 실전 경험이 없으면 평생 사무실에서 심부름하는 인력이나 다를 게 없다"고 인재양성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인력양성 프로그램 개발해야=다행이 공기업 중에서는 일찍이 이같은 문제점을 간파해 서둘러 사람을 키우는 곳도 있다. 해외 광구개발에 나서면서 혹독한 인력난을 선험한 석유공사다.

 

석유공사는 수년째 해외광구와 관련된 직원들을 현장이나 해외 전문기관으로 한달 이상 파견교육하는 '전문 OJT(On-the-job training)'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현장보다 더 좋은 전문교육은 없다"는 신념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석유공사 인사부의 한 관계자는 "직무와 직접 관련된 직원들은 물론 향후 관계될 직원들까지 점차 확대해 전 직원의 실무능력과 전문성을 높이는 게 이 프로그램의 궁극적 목표"라고 설명했다.    
  
내부 우수인력을 활용한 교육 프로그램도 눈여겨 볼만 하다. 석유공사의 '오일아카데미'는 박사급 내부인력이나 해외전문가를 강사로 초빙해 후배나 동료직원을 상대로 짧으면 며칠, 길면 1~2주 과정의 심층 교육을 전수하는 프로그램이다.

 

석유공사 한 관계자는 "이같은 내ㆍ외부 인력양성 프로그램이 지속되면 직원들의 전문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부족한 인력도 자체 충당할 수 있는 효과를 얻게 될 것"이라며 "10년 이상을 보고 사람에 투자하는게 기업의 장래나 국익에 더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