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광훈 원자력안전기술원 감사에 슬그머니 해임 통보
7월부터 野·취임 전 한전연구 수탁 핑계 수시 사퇴종용
"원안위, 관료에 의한, 관료를 위한, 관료의 조직 변질"

▲엄재식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원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원안위
▲엄재식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원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원안위

[이투뉴스] 문재인 정부의 원자력안전위원회(위원장 엄재식)가 수상한 행보로 입길에 오르고 있다. 현 정부가 임명한 석광훈 원자력안전기술원(KINS) 감사를 최근 석연찮은 이유로 슬그머니 해임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출신의 석 전 감사는 작년 7월 부임 이후 KINS는 물론 원안위 내부의 고질적 폐단을 들춰내 이들기관으로부터 강한 견제를 받아왔다.

26일 원자력 규제당국 관계자들에 따르면, 원안위는 23일 엄재식 위원장 명의로 석광훈 KINS 감사에 퇴직 처리 통보 공문을 보냈다. 석 감사가 2017년 한전이 발주한 연구용역에 참여했으므로, 임원 결격사유여서 당연 퇴직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 임명 전 이미 이사회 측에 해당 사실을 신고한 그로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일방적 통고를 받은 셈이다. KINS는 올초 준정부기관에서 원안위 소관 기타공공기관으로 바뀌었다.   

전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석 전 감사에 의하면, 원안위 사무처 측은 지난 7월부터 “자유한국당 최모 의원이 보수일간지를 통해 석 감사의 결격사유 문제를 여론화 할 예정”이라며 수차례나 사직을 종용했다. 한전이 원자력안전기술원법상(제9조의 2) ‘원자력이용자’이므로, 한전이 발주한 연구과제에 참여한 석 감사는 당연 퇴직 대상이라는 논리였다. 이런 내용은 원안위 측 사전 압박대로 같은달 22일 다른 경제신문을 통해 보도된다.

하지만 원자력안전기술원법과 시행령은 '원자력이용'의 범위를 원자로 및 관계시설, 핵연료주기시설, 핵물질사용시럴, 방폐물 영구처분시설 등 8종으로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한전은 여기에 포함돼 있지 않다. 애초 한국수력원자력 등 안전규제대상 기관으로부터 과제를 수탁해 포획된 전문가들이 원안위 등에 참여해 안전규제 독립성을 훼손하는 위험을 방지할 목적으로 제정된 법이라서다.

더욱이 석 감사가 참여한 '균등화 발전원가 해외사례 조사 및 시사점 분석' 연구는 해외 전원별 실질 발전원가(LCOE) 산정 추이를 국내 정책 추진에 참조할 목적으로 추진한 연구다. 연구비는 한전이 댔지만 실질 발주는 당시 산업통상자원부라는 게 공통된 인식이다. 실제 정부는 이 연구결과를 에너지전환정책 추진 타당성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활용했다. 원안위가 석 감사 해임 명분을 만들기 위해 무리수를 쓰고 있다는 해석이다.

KINS 내외부를 감시한 그의 업무가 기득 관료층에겐 '눈엣가시'였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석 감사는 KINS 감사 지원당시부터 과거 연구개발과 안전규제기능이 혼재된 교과부 원자력국 인사들이 원안위에 잔류할 경우 규제건전성이 훼손되므로 교체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작년말부터는 연간 50억원 규모의 KINS 외부위탁연구가 특정인 및 특정업체로 몰린 폐단을 들춰내 기득권 목에 칼을 대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우려대로 원안위 사무처는 라돈침대 사태, 원자력연구원 방폐물관리 은폐사건, 한빛1호기 과출력사건 등에서 줄곧 원안위 설립취지를 무력화 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손재영 현 KINS 원장은 박근혜 정부서 원안위 사무처장을 지낸 인사이고, 엄재식 현 원안위원장은 과학기술부 시절부터 손 원장과 선·후배로 각별하게 지내온 사이로 알려져 있다.   

석 전 감사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원안위 사무처 공무원 조직이 특정 조직의 기득권을 보전하기 위해 과거 교과부 원자력국같은 전횡을 통해 원안위 자체를 무력화 시키고 있다. 이렇게 되면 규제기관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고 우려를 표했다. 본인에 대한 원안위 측 사퇴 종용은 "사무처 기득권에 반하는 인사들에 대한 솎아내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직격했다.

석 전 감사는 "야당과 사무처의 유착으로 독립적인 감사를 해임한 것은 원안위법 규정과 취지를 훼손한 것이자 사무처조직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기만적 정치행위"라면서 "국회 상임위와 감사원 감사 등 관계기관의 공식적 조사와 시정이 필요하다. 자리에 연연하는 게 아니라 원자력 안전규제의 독립성이 더욱 쉽게 손상될 여지를 주게 될 문제라 단호하게 대응할 필요를 느끼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석광훈 KINS 감사
▲석광훈 KINS 감사

원전안전 전문가들은 "원전안전을 나라의 존망이 걸린 문제로 인식하고 대처하겠다"(문 대통령 고리 1호기 영구정지 기념식 기념사)던 정부가 관료화 된 규제기관과 요로에 포진한 원전 진흥세력에 매수돼 이들의 조직적인 저항을 전혀 간파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는 "감사로 임명할 땐 지금 문제로 삼는 한전 LCOE과제가 문제가 안된다고 했다가, 이제와서 야당 측이 뭐라하니 그걸 핑계 삼아 개인의 명예를 이토록 훼손시키는 건 명백한 잘못"이라며 "과거 핵마피아로 불리던 원안위 사무처가 관료마피아로 변질돼 '관료에 의한, 관료를 위한, 관료의 원안위'가 됐다. 자기조직만 챙기고 오히려 원자력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대표는 "간나오토 일본 전 총리는 일본 후쿠시마 사고원인을 규제조직의 관료화로 지목했다. 사고가 터졌는데, 공학적 판단을 신속히 내려할 사안을 서로 책임지지 않기 위해 결제판만 들고 다니다가 끝난거다. 그래서 규제조직의 관료화가 가장 위험하다는건데, 현 정부에서 그런 역행이 일어난다는 건 불행스러운 일이다. 여전히 우린 원전안전을 운에 맡기고 있다"고 질타했다. 

A 에너지정책 전문가도 "단순한 석 감사 개인차원의 일이 아니라 원전세력의 조직적 저항이다. 이를 손놓고 보고만 있다는 건 지금까지 반핵운동을 펼친 집단 전체에 대한 도전이자 모독"이라면서 "다양한 법적 방어를 통해 사실규명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일사천리로 무주공산처럼 행동하는 두 기관에 엄중한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원자력계 소장파 한 인사는 "현 정부 청와대의 무능한 인사·민정시스템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원자력기관장부터 자문기구까지 요로에 부적절한 사람이 포진해 있다. 절망스럽다"고 한탄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저작권자 © 이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