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MW 접속 154kV에 20MW이하 636건 선점
허수 20~30GW 추정…주기적 '솎아내기' 필요

▲전남 해안지역 154kV 변전소 및 계통 현황도. 단시간내 발전사업허가를 받을 수 있는 소규모 사업자들이 이들 계통용량을 선점하면서 후속 대형 해상풍력사업자들이 발전사업허가조차 받지 못하는 있다.
▲전남 해안지역 154kV 변전소 및 계통 현황도. 단시간내 발전사업허가를 받을 수 있는 소규모 사업자들이 이들 계통용량을 선점하면서 후속 대형 해상풍력사업자들이 발전사업허가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이투뉴스] 비교적 단기간에 발전사업허가를 받을 수 있는 중·소규모 사업자가 한정된 154kV급 전력망 접속권한을 선점하면서 사업 준비에만 최소 수년이 걸리는 대규모 후속 발전사업의 사업허가나 계통접속을 가로막는 일명 ‘전력망 알박기’ 폐해가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뒤늦게 전력당국이 관련 접속 규정을 정비하고 나섰지만, 이미 선착순 방식으로 접속신청을 내고 사실상 기득권을 행사하는 물량이 적지 않아 탄소중립 목표설정과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 조정으로 다급해진 재생에너지 확충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본지가 국정감사기간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한전의 ‘재생에너지 송전계통 접속신청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올해 8월말까지 154kV 계통에 접속을 신청한 20MW이하 발전사업은 모두 636건(설비용량 1859MW)이다.

건당 평균 설비용량이 3MW도 안되는 소규모 사업들이 차단기(Bay)당 500MW규모 대형 태양광‧풍력단지를 수용할 수 있는 변전소 접속용량을 꿰차고 있다는 뜻이다. 같은 기간 20MW초과 신청건수와 설비용량은 169건, 1만6348MW으로 건당 평균용량은 96MW였다.

한전은 발전사업허가를 받고 접속신청이 접수된 순서대로 변전소당 최대 접속 가능용량의 절반을 사업자가 선점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또 일단 허가한 개소(Bay)는 실제 사업 이행용량과 관계없이 계통이 포화된 물량으로 산정한다. 

현행 발전설비 송‧배전 전기설비 이용규정에 의하면 최대송전용량 기준 20MW이하 사업은 22.9kV 배전선로, 20MW 초과 500MW 이하는 154kV 송전선로, 500MW 초과 1000MW 이하 사업은 154kV나 345kV 송전선로에 각각 연계(접속)할 수 있다.

다만 한전은 불가피하게 발전사업용량에 맞는 접속점(Bay)이 없는 상황을 감안해 ‘고객이 희망하고, 계통여건상 문제점이 없을 경우’ 상위(154kV나 345kV) 전압에 연계할 수 있는 예외조항을 두고 있다. 계통용량 선점을 노린 소규모 사업자의 ‘알박기’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발전업계는 이런 식으로 한정된 계통을 선점한 물량이 전국적으로 최소 20~30GW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A발전사 관계자는 "당장 수십GW를 물릴 수 있는 계통이 포화물량으로 잡혀 있다"며 "1MW 미만사업이 500MW 차단기 하나를 점유한 곳도 다수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공유재 성격이 강한 전력망을 일부 특정 사업자들이 선점하고 사유화하는데 따른 폐해는 적잖다.

일례로 전남지역에서 수백MW규모 풍력단지를 개발하고 있는 B사는 앞서 154kV 접속신청을 낸 소규모 태양광사업자들의 접속신청에 순위가 밀려 예비타당성 조사와 풍황 조사에 5년간 막대한 비용을 들이고도 기약없는 한전의 공용망 보강을 무작정 기다려야 할 처지다.

B사 관계자는 “몇 달 만에 지자체서 발전사업허가를 받을 수 있는 사업들이 일단 용량만 선점한 후 사업은 진행하지 않으면서 준비에만 7~8년이 걸리는 해상풍력사업 발전사업허가를 발목잡고 있다"면서 "한전도 용량이 다 찼다고만 할 뿐 대안마련에 소극적"이라고 말했다.

한전 측은 40MW 이하 사업의 154kV 접속을 제한하는 제도정비를 준비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계통 담당 전문가는 "전기위원회에 관련 이용규정 개선안을 상정했다"면서 "궁극적으론 선착순 방식의 현행 접속방식을 계획입지나 공동접속설비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불성실한 선행사업자들이 제한된 전력망을 선점해 성실하게 준비한 후행사업자들이 용량부족으로 계통에 접속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선 이런 허수를 관리하고 일정시점까지 접속권을 거래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부연했다.

반면 발전사업자들은 '계통이 부족한 게 아니라 한전의 의지가 부족한 것'이라며 기존 선점물량 관리 강화를 주문하고 있다.

C 발전사 관계자는 "일단 계통을 선점한 뒤 비싼 값에 다른 사업자에게 접속용량을 판매하는 게 공공연한 사업이 됐다"면서 "이미 접속신청을 한 사업자라도 사업이 진척되지 않을 경우 이를 취소하는 등의 주기적인 계통용량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엔지니어링기업 D사 대표는 "일본은 일정기간 사업이 진행되지 않는 발전사업허가를 미리 공지한 후 주기적으로 취소시키고, 전력회사와 계통 기술검토 협의가 끝난 사업은 일시에 비용을 지불하도록 해 사업의 진위를 구분·정리하고 있다"면서 "국내의 경우 발전사업 의지도 없으면서 계통이나 사업권만 사고파는 행위가 만연해 있다. 자금구성이나 재무능력 등을 판단해 이를 정비함으로써 실제 사업자를 보호하고 보급을 활성화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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