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고시개정 전 시장운영규칙 개정 추진 논란
전문가들 "전력시장 정상적 작동만 왜곡시킬 것"

▲나주혁신도시 전력거래소 본사 사옥
▲나주혁신도시 전력거래소 본사 사옥

[이투뉴스] 정부가 도매 전력시장가격(SMP) 인위 조정이란 초유의 시책으로 한전의 적자 부담 경감을 도모한다. 국제 에너지가격 급등으로 전기 생산원가와 SMP는 크게 뛰었는데, 정부가 요금인상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판매사업자 손실이 감당할 수 없이 불어났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당장 내달 1일부터 100kW이상 민간 재생에너지‧가스발전사업자를 대상으로 긴급정산상한가격제도(일명 ‘SMP 상한제’)를 시행하기로 방침을 정한 뒤 전력시장운영규칙부터 손보겠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에너지위기 해결에 도움이 안 되는 임시방편일 뿐만 아니라 멀쩡한 발전사들까지 부실화 할 위험이 큰 하책 중의 하책”이라며 “밀어붙이는 정부도, 중립기관이란 본분을 잊고 이를 거드는 전력거래소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17일 발전업계에 따르면 전력당국은 정부가 내달부터 시행 예정인 SMP 상한제의 적용대상과 발동조건, 적용단가 등 주요 고시 개정사항을 전력시장운영규칙에 명시해야 한다며 이달 14일 돌연 긴급정산상한가격 도입 규칙개정안을 긴급 공지했다.

규칙개정위원회는 오는 21일 열기로 했다. 국무조정실 규제심사와 전기위원회 의결도 거치지 않은 고시가 원안대로 통과될 것이란 전제 아래 하위 시장운영규칙부터 먼저 개정하는 셈이다.

실제 규제심사는 오는 25일, 전기위원회 회의는 이달 28~30일 사이로 잡혀 있다. 내달 고시 시행을 결론으로 정해놓고 일정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전력시장 중립기관을 표방하는 전력거래소가 나쁜 선례를 만들고 있다고 공분했다. 고시란 행정행위 권한을 가진 정부가 의사만 내비치면, 전력거래소는 규칙개정이란 절차를 선행적으로 이행해 주는 기관이냐는 것이다.

현행 규칙개정위원회는 전력거래소 이사장을 위원장으로 산업부 전력시장과장, 거래소 탄소중립본부장, 한전 기획부사장, 동서발전 안전기술본부장, 산업부 출신 민간발전사 간부 대표와 학계 교수 등으로 구성돼 있다. 정부 시책이 부당하더라도 반기를 들 분위기가 못된다.

민간발전사 관계자는 “산업부 고시가 예정돼 있으니 규칙개정 절차를 진행한다는 건, 발의자 의사만 있으면 절차를 책임진 쪽이 언제든 따라가 준다는 의미냐”라면서 “전력거래소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중립기관이라 늘 강조하지만, 더 이상 그렇게 말해선 안된다”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절차상 문제를 눈감고 앞장선 거래소는 이번 사건으로 자기부정의 흑역사를 갖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앞서 공개된 SMP 상한제 정부 고시안을 보면, 적용대상은 100kW이상 전력시장 내 모든 발전기이다. 최근 3개월 가중평균 SMP가 그 직전 10년간의 월별 가중평균 SMP의 90백분위(상위 10%) 이상일 경우 발동한다. 10년간 가중평균 SMP에 1.5를 곱해 상한을 정한다.

kWh당 230원 내외인 최근 3개월을 기준으로 하면 상한가격이 160원 정도로 형성돼 발전사들의 수익이 그만큼 감소한다. 발전자회사의 경우 추후 한전과 정산조정계수로 수익을 보전받으므로 실제 적용은 민간발전사나 개인단위 재생에너지사업자로 국한된다.

SMP에 안팎에 걸친 한계발전기의 경우 추후 정부가 자체연료비를 보전해 주는 조건이다. 급전지시를 받는 200여개 중앙발전기 가운데 해외서 LNG를 직수입해 사용하는 10여기를 상대로 초과이윤을 회수한다며 고안한 제도인데, 사실상 애먼 대다수 발전기가 직격탄을 맞게 됐다.

발전사 한 임원은 "정부가 후폭풍을 고려하지 않고 너무 쉬운 선택을 했다. 차라리 횡재세라면 수용성이 훨씬 높았을 것"이라며 "제도 당위성부터 형평성부터 허점 투성이다. 실제 몇몇기업은 구체적인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직도입 발전사들도 정부 돈을 훔쳐오는 게 아니라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저렴한 LNG를 들여왔기에 제도에 따라 큰 이익을 누리는 것이다. 문제가 된다면 제도를 바꿔야지 그들을 손가락질 할 문제는 결코 아니"라고 부연했다. 업계 추산 한전 적자 경감액은 월 2000억원 내외다. 

전문가들은 이 제도가 실효성은 거두지 못한 채 전력시장의 정상적 작동만 왜곡시킬 우려가 크다고 지적한다.

박진표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SMP 상한제의 의도는 전기료 인상 제약이 초래한 한전의 대규모 손실을 발전사들에게 전가시키는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상한가격 초과 발전기는 변동비 전부가 아니라 연료비만 보상 하는데, 대다수 발전사들은 금융위기가 다가오는 상황에 대규모 손실을 입어 자칫 도산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여기에 SMP 상한제는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에 위반할 뿐만 아니라 재산권 제한에 따른 정당한 보상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위헌 소지도 적지 않다는 견해다. 100kW 미만 태양광을 예외로 인정하는 것도 헌법상 평등원칙도 위반할 소지가 있다고 한다.

박 변호사는 "가장 우려되는 점은 직도입 발전사들이 LNG를 보다 낮은 가격으로 도입하려는 유인이 사라진다는 것"이라며 "발전사 경영진으로서는 발전기를 돌려 손해를 입느니 차라리 비싼 연료를 도입해 급전지시를 받지 않는 방식으로 전력시장을 보이콧 할 가능성이 높고, 이렇게 되면 전력시장의 전력구매비용 총액은 더 증가하는 악순환을 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생에너지기업 한 임원은 "고통분담이라는 명분으로 문제의 원천인 전력요금 인상은 시늉만 하고, 시장의 플레이어들을 괴롭혀 한전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것은 하책"이라며 "태양광 발전사들 역시 정책변화로 큰 혼란과 형평성 논란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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