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연구기관 통폐합 추진시 독립기능 상실 가능성

국내 유일 에너지ㆍ자원 국책 연구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이하 에경연)이 정부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산하 연구기관 통폐합 및 민영화 추진에 따라 개원 이래 최대 존립위기에 봉착한 것으로 확인됐다.

 

1986년 설립된 에경연은 최근 수년간 '국가에너지 부문의 아젠다 선도기관'을 표방하며 매년 괄목할 만

한 성과를 내놓았으나 이번 시책으로 심각한 독립기능 훼손과 연구능력 약화가 우려되고 있다.

 

5일 경제인문사회연구회 등에 따르면 국무총리실은 최근 에경연을 비롯한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산하 23

개 국책 연구기관의 통폐합 및 민영화, 또는 구조조정을 위해 모 대학 H교수에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총리실은 이 결과를 토대로 향후 구조조정 작업의 얼개를 만든 뒤 외부 기관과 정부 의견 수렴을 거쳐 본격적인 통폐합 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총리실 총괄정책관실 관계자는 "정부가 직접 나서기보다 전문가 입장에서 해외 사례를 통해 잘못된 점들을 파악하고 바로잡는 과정이 될 것"이라며 "이 과정에 구조조정 및 통폐합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현재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는 에경연을 비롯 한국개발연구원, 산업연구원, 국토연구원, 환경정책평가연

구원, 행정연구원, 노동연구원, 조세연구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등 23개 기관이 속해 있다.

 

'실용정부의 새 틀에 담겠다'는 총리실 방침대로라면 이 가운데 연구영역이 중첩되거나 조직이 방대한

연구기관은 타 기관으로의 업무 이관이나 통폐합, 또는 민영화를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투뉴스>가 입수한 용역안에 따르면 이번 통폐합의 기본 방향은 연구회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국가 차원의 정책 연구를 강화하는 1안과, 연구회 자체를 각 부처 산하로 되돌려 보내는 2안, 전체 연구원을 해체시키고 종합연구원을 설립하는 3안 등이다.

 

이 가운데 1안으로 결정이 나면 현행 연구회 체제가 유지되고 전체 기관을 통제하는 가칭 '국가전략과제실'이 신설돼 에경연의 독립 기능은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부처 1연구기관'을 내용으로 하는 2안이 채택되면 에경연은 정부조직법을 따를 경우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일부와 함께 산업연구원으로 흡수될 공산이 크고, 연구분야를 따져 부처로 환원되면 여기에 환경정책평가연구원과 과학기술정책연구원까지 통합돼 기능이 더욱 축소될 수 있다.

 

에경연을 비롯한 연구회 소속기관 모두가 우려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3안이다. 이 안은 현행 23개 출연연구기관 중 18개 기관을 13~15개로 통폐합 한 후 가칭 '미래정책연구원'을 설립해 이 조직 산하에 단순 연구센터로 설치ㆍ운영한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되면 에경연은 에너지와 환경이 통합한 개념의 가칭 '지속가능센터'로 배속돼 일개 연구조직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1안을 제외한 2,3안으로 가닥이 잡히더라도 에너지ㆍ자원 분야의 독립연구기관이라는 에경연의 존립근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해 에경연의 최고위 관계자는 "에너지 문제로 정부의 '7ㆍ4ㆍ7 공약'이 수정되는 마당에 통폐합으로 인한 기능 약화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며 "어느 쪽으로 방향이 잡히더라도 연구원 설립의 취지가 훼손되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에너지분야의 민간단체 관계자도 "고유가, 에너지 고갈시대를 맞아 별도의 에너지청을 신설해도 모자랄 판인데  에경연 고유 기능이 사라지는 것은 말도 안된다"면서 "국책 연구기관을 공기업 구조조정 논의 수준으로 보는 것 자체가 문제다"고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한편 총리실은 이번 용역안 결과를 조만간 청와대로 보고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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