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부재로 명맥 유지 모듈산업까지 고사위기
국산 점유율 지난해 30%서 올해 반토막 날듯
"산업화 중요성 간과, 모든 태양광 수입할수도"

▲국내 한 태양광모듈 제조사의 생산라인 ⓒE2 DB
▲국내 한 태양광모듈 제조사의 생산라인 ⓒE2 DB

[이투뉴스] “이대로 두면 국내 태양광기업은 한화 빼고 다 죽는다. 에너지는 동전의 양면처럼 보급과 산업이 병존해야 한다. 보급량은 정권 따라 늘거나 줄 수 있다지만, 지금은 정부가 산업화를 위해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 어렵게 명맥을 유지하던 모듈 산업 자체를 통째로 내줄 판이다.” (중견 모듈기업 A社 CEO)

“생존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작은 지방에서 제조업체로 50여명의 새 일자리를 창출했고 일자리 우수기업으로 지정돼 자부심을 컸지만, 지금은 생산감축에 이어 인력감축을 고민하고 있다. 이대론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전남 S 모듈제조社 대표)

국산 태양광 모듈 제조사들이 안방시장에서조차 기를 펴지 못하고 고사 위기에 놓여있다. 저렴한 인건비와 전기료를 등에 업은 중국산은 파격적 단가로 내수시장을 휩쓸고 있는데, 탄소인증제나 RPS 등의 기존 국산 우대정책이나 지원책은 당국의 무관심 속에 무력화된 채 방치되고 있어서다. 업계는 지난해 30% 안팎을 기록한 국산 모듈 점유율이 올해는 반토막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18일 태양광산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모듈제조사들은 재생에너지 위축정책으로 가뜩이나 쪼그라든 내수시장을 중국산이 빨아들이는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다. SMP 상한제 시행과 RPS목표 축소 조정, 탄소인증제 유명무실화 등으로 작년부터 국산의 버팀목이 사라졌는데, 정부나 공공기관 누구도 후속대책이나 국산진작책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Made in Korea’ 모듈제조사들의 사정은 대‧중소기업 관계없이 녹록지 않다. 그나마 한화큐셀은 미국시장으로 숨통을 텄지만, 나머지 중견 모듈기업들은 생산감축과 구조조정에 이어 전업까지 고려할 정도로 경영환경이 악화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기업은 지난해 연산 2400MW의 생산능력을 운용하면서 태양광으로만 500여명을 직접 고용하고 6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대기업으로 분류된 한화의 양산능력(4500MW)과 고용인력(약 3000여명)까지 포함하면, 재생에너지 후발국 입지에서 적잖은 부가가치와 고용인력을 창출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각각 400~800MW규모 설비를 운용하는 중견기업들은 자체 경쟁력 확보를 위해 매년 신규 설비투자에 수십~수백억원을 쏟아부으며 지역거점 국산 제조사로서 명맥을 이어왔다.

하지만 지금은 내수시장 위축과 국산 우대정책 부재, 중국산 저가공세 등 3중고에 떼밀려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한 제조사 관계자는 “RE100을 포함한 중대형 사업이 올스톱 상태다. 그나마 불씨가 살아있는 소규모 시장도 중국산 일색”이라며 “중국 정부가 보조금을 주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가격으로 내수시장을 사실상 유린하고 있지만, 모두 강 건너 불구경”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태양광산업은 단순소비재가 아니어서 에너지안보 측면에 공급망의 안정성을 확보해야 하고, 모든 밸류체인을 다 일관화 할 수 없다면 모듈처럼 고부가산업은 최소한의 내재화가 필요하다”면서 “중국산이 다 흡수한 뒤에 뒤늦게 산업을 살린다고 살려지지 않는다. 정책 실패가 미래 가능성까지 없애면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산업계에 의하면 최근 중국산 모듈제조사들은 Wp당 21센트 수준의 헐값으로 국내시장을 독식하고 있다. 최소 30센트 수준은 돼야 사업성이 확보되는 국산 대비 30% 이상 싸게 모듈을 공급하다보니 국산을 선호하던 기존 수요도 종적을 감춘 상태다. 이에 대응해 업계는 중국산 모듈에 대한 반덤핑 제소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설치‧보급 위주로 형성된 시장 반응은 그닥 우호적이지 않다. 

A 모듈제조사 관계자는 “그나마 있는 모듈산업이라도 살려야 하는데, 주무부처(산업부)는 에너지의 정치화로 패닉상태에 있고, 정치권도 진영논리에 빠져 산업화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며 “이대로 기업들이 후속투자를 멈추면, 한국은 모든 태양광을 전부 수입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실제 일부 제조사를 제외한 기업들은 24% 이상의 고효율 모듈생산을 위한 후속 공정투자를 중단했다. 

이와 달리 중국과 미국을 비롯한 여러국가들은 강력한 자국산업 보호정책을 펴고 있다. 각종 세제 혜택은 물론 다양한 국산 우대정책으로 시장 경쟁력을 높여주고 있다. 미국은 강력한 반덤핑 및 수입관세 제도로 중국을 견제하면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자국내 제조시설을 늘리고 있다.

태양광 신흥시장인 인도와 터키는 시장 형성 초기부터 강력한 세이프가드와 반덤핑 수입관세, 시설투자 직접 지원 등으로 자국 산업을 키우고 있다. 이탈리아와 스위스는 대규모 제조설비 펀딩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이미 규모의 경제로 전 세계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중국은 선두기업들까지 직접 모듈시장에 뛰어들면서 출혈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모듈제조사에서 연구개발을 맡고 있는 B사 관계자는 "한때 태양광 산업을 호령했던 독일과 일본도 보급에 치중한 나머지 중국과의 경쟁에서 자국산업을 소홀히 해 현재는 제조부문이 거의 소멸된 상태"라면서 "SMP 급등을 예측할 수 없었다면, 최소 정책이 붕괴된 다음 대책이라도 마련했어야 했다. 정부가 조금만 관심을 갖고 특화된 지원책을 마련한다면 우리산업도 충분히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상복 기자, 유정근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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