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정보-통계 미흡…정부 열에너지 정책 사실상 방치
​​​​​​​열에너지 기본계획, 脫탄소화 전략 등 방향성 제시해야

[이투뉴스] 최종에너지 소비 중 열에너지가 50%에 달하는데도 불구하고 관련 정보 및 통계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가정 및 건물, 공공 부문의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선 열에너지 효율개선 및 탈탄소화가 필수지만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정부가 열에너지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해 공급기본계획 수립 등 국가 차원의 정책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국회기후변화포럼(대표의원 한정애·유의동)과 대통령직속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는 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국가 열에너지 정책 진단과 체계 구축 방향’을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는 열에너지가 국가 에너지 중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정확한 통계조차 없는 상황에서 가정·건물·산업 부문 탄소중립을 위해선 하루빨리 정책방향을 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짐에 따라 이뤄졌다.

토론회 막판까지 자리를 지킨 한정애 포럼 대표의원(전 환경부장관)은 “생산하는 과정에서 아직 대부분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열에너지의 에너지전환과 탈탄소화를 어떻게 갈 건인지, 또 정합성은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생에너지와 소각열, 폐열 등 수요처에서 멀어 버려지는 열에너지 활용방안 등 가야할 길은 멀지만 한발 한발 가야 하고, 국회가 나서 도울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국회에서 국가 열에너지 정책 진단과 체계 구축 방향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국회에서 국가 열에너지 정책 진단과 체계 구축 방향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열에너지 개념정립 및 합리적 정책수립 필요
먼저 권필석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소장은 ‘열에너지 수요 추정 현황과 데이터’ 주제발표를 통해 열에너지를 냉난방과 급탕(온수), 취사 및 다양한 산업공정 등에 활용되는 열로 정의했다. 이어 생산되는 열에너지 온도에 따라 저온(100도 미만), 중온(100∼400도), 고온(400도 초과)으로 구분했다.

국가 열에너지 관련 통계에 대해선 세부 데이터가 없다고 강조했다. 국토부와 한국부동산원이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에서 공동주택의 난방 및 급탕을 비롯해 전기·가스·수도 사용통계를 일부 공개하고 있으나 전체가 아닐뿐더러 산업부문은 이조차도 없다는 것이다. 반면 EU의 경우 나라별 데이터를 사용해 각 국가의 난방에너지 수요를 추정하고 이를 난방에너지 탈탄소화 및 연료대체를 통한 효율향상을 계산할 때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존 연구 및 에너지총조사보고서 등을 참고해 국내 열에너지 사용량을 추정한 결과도 공개했다. 주거부문의 경우 최종에너지 사용량의 58%가 냉난방 및 급탕에너지로 사용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비주거용 건물의 열에너지 소비는 대략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50%를 차지했다. 특히 비주거용 건물의 열에너지 소비 중 전기에너지 비중이 54%로 가장 컸다. 열에너지를 얻기 위해 전기를 가장 많이 사용했다는 의미다.

권 소장은 “에너지계획에서 열에너지 비중이 큼에도 불구하고 추정과 통계 작성의 어려움으로 인해 구체성과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건물의 에너지효율과 탄소중립을 위한 연료전환 전략과 열에너지 탈탄소화를 위한 국가 전체적인 계획 수립이 필요하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탄소중립의 효율적 이행을 위한 국가 열에너지 정책 방향’을 발표한 오세진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우리나라는 전체적인 열에너지 정책이 없고, 원별로 요소요소에 나뉘어 있어 연계 및 융합정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열시장 전체를 보고 공급계획을 짜는 것이 아니라 신도시 집단에너지 보급 정책 등 짧고 부분적인 계획밖에 세우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국가 열에너지 정책 평가도 인색했다. 열에너지 탈탄소화에 대한 목표설정 부재 및 구체성이 결여돼 있을 뿐 아니라 열에너지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반면 EU는 열전략 및 에너지효율지침, 건물에너지성능지침 등을 통해 회원국의 국가에너지기후계획을 수립하는 한편 열부문 탈탄소화와 에너지효율 개선목표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한다고 소개했다.

국가의 열에너지 정책방향에 대해선 최종에너지 소비에서 열 비중이 50%에 달하는 만큼 열에너지에 대한 정책적 관심 제고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더불어 열에너지 개념 정립 및 합리적인 정책수립을 위한 정보통계시스템과 국가열지도(미활용 열 잠재량 DB) 구축도 제안했다.

특히 열시장의 탄소중립 기반 조성을 위해선 ▶(가칭) 열에너지 기본계획 수립 ▶열시장 수급실태 진단 및 평가 ▶장기 열공급 전략 마련 ▶열에너지부문 탈탄소화 등 열에너지에 대한 종합적인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오 연구위원은 “도시가스·등유 등 주택용 에너지공급자에게도 배출권을 할당하는 한편 탄소중립적 열 공급기술에 대한 정책 지원, 화석연료 난방기기 사용규제, 신재생 열에너지 의무화(RHO)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어 “제로에너지건축물 의무 이행수단으로 폐열 및 저탄소형 지역난방 인정, 히트펌프 전기요금 감면 또는 별도의 요금체계 신설, 지역난방 열요금제도 개선도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집단에너지는 대표적인 저탄소 열에너지 플랫폼
조용성 고려대 교수(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가 좌장을 맡은 가운데 진행된 패널토론에서도 전문가들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열에너지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과 방치를 질타하고, 하루빨리 제대로 된 국가 차원의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조용성 교수는 “최종에너지의 50%가 열인데도 불구 정책과 법은 전기가 중심”이라며 “전기 역시 열을 만드는 데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만큼 늦었지만 열에너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탄소중립도 가능하다”고 포문을 열었다.

유정민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서울시에서도 열에너지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 찾기가 어려웠다며 국가 차원의 열에너지 정보 및 통계시스템 구축 필요성에 공감을 표했다. 다만 열지도의 경우 국가보다는 사용편의성 등을 감안할 때 로컬(지역)이 주도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유 연구위원은 “외국에선 지역난방에 미활용열과 바이오, 히트펌프를 사용하는 데 반해 국내에서 CHP(열병합발전)가 메인”이라며 “앞으로 CHP 역할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가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바이오 및 신재생으로 연료전환, 폐열·소각열과 CHP 접목, 자원순환(폐기물)과 재생에너지 연계, 중앙집중식 망산업이 아닌 다양한 사업자 진입 등에 대한 검토가 요구된다”며 사고의 전환을 촉구했다.

전재구 집단에너지협회 상근부회장은 집단에너지 공급주택수가 340만 세대를 넘어선 것은 물론 다양한 환경 및 분산 편익을 창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여기에 재생에너지 증가에 따른 에너지 공급의 간헐성과 변동성을 보완하는 백업전원으로서도 집단에너지가 최적이라는 점도 힘주어 말했다. 전 부회장은 “집단에너지가 다양한 편익을 제공하는 데도 보상은 신재생에만 편중돼 있다”며 “무상할당 기간 연장, 제로에너지건축물 의무화 이행수단에 집단에너지 포함, CHP를 EERS(에너지효율개선의무화) 대체수단으로 인정, 가격 및 시장 중심의 보상체계 구축”을 주문했다.

김수이 홍익대 교수(자원경제학회 회장)는 “20년 동안 에너지 분야를 접했지만 열에너지 통계가 없어 의아했다”며 열에너지에 대한 공급 통계와 수요 통계가 다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집단에너지 자체가 온실가스 감축수단인 만큼 공급을 늘려가야 하지만 산업단지는 아직 석탄에 의존하고 있다며 연료전환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열 공급단계에서의 손실률에 대한 조사 및 책임소재 파악은 물론 유상할당으로 갈 경우 발생하는 부담에 대해 전기의 기후환경요금처럼 사업자가 아닌 최종소비자가 부담하는 요금구조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엄태선 한국지역난방공사 미래사업처장은 공사는 열에너지 중 14% 가량을 신재생 및 미활용열을 사용하고 있으며, 앞으로 지속 확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CHP까지 포함할 경우 90%를 저탄소 열원으로 공급하고 있다며 사업자들의 친환경 노력도 공유했다. 엄 처장은 “전국적으로 많은 사업자가 40% 가량을 열거래를 통해 공급하고 있을 정도로 집단에너지는 가장 대표적인 저탄소 열에너지 플랫폼”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이어 “저온인 신재생·미활용 열을 활용할 수 있도록 4세대 공급모델과 재생에너지 잉여전력을 섹터커플링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며, 수소발전 등 열공급부문 무탄소화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은 EU는 기후중립 목표달성에 있어 냉난방 부문의 탈탄소화 중요성을 인지하고, 관련 정책을 가속화하고 있으나 국내에선 방치되고 있다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특히 3차 에너지기본계획(지역간 열거래활성화, 국가열지도 구축 및 활용), 5차 신재생에너지기본계획(RHO)에 열에너지 관련 제도개선 방안이 포함됐지만 이행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그는 “열에너지에 대한 종합적인 전략을 세워 에너지정책 간 연계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에너지기본계획의 법적근거를 회복하고, 하위계획 간 연계성을 기반으로 열에너지 종합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김범수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에너지혁신과장은 4월에 2030 탄소중립계획을 내놨는데 계량화가 용이한 전기 위주로 만든 것 같다며 전문가 의견에 공감을 표시했다. 또 전력 위주로 가다보니 열에너지에 소홀했으며, 가정과 건물부문의 탄소중립방안이 있기는 하지만 정합성에 문제가 있다는 점도 털어놨다. 김 과장은 “열시장은 전력처럼 명확하게 계량되기 어려운 부문이라 하나의 체계 아래서 제도화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통계-거래대상-시스템 등을 단계적으로 보완·발전시켜야 점진적인 정책화가 가능한 만큼 앞으로 잘 살펴보겠다”고 약속했다.

국가 열에너지 정책 진단 토론회에 참석한 주요 인사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엄태선 한난 미래사업처장, 전제구 집단에너지협회 부회장, 김범수 탄소중립위원회 에너지혁신과장, 유정민 서울연구원 연구위원, 오세신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정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김수이 홍익대 교수, 조용성 기후변화정책연구소장, 한정애 국회의원, 윤재용 서울대 교수, 박영순 국회의원, 권필석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장.
국가 열에너지 정책 진단 토론회에 참석한 주요 인사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엄태선 한난 미래사업처장, 전제구 집단에너지협회 부회장, 김범수 탄소중립위원회 에너지혁신과장, 유정민 서울연구원 연구위원, 오세신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정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김수이 홍익대 교수, 조용성 기후변화정책연구소장, 한정애 국회의원, 윤재용 서울대 교수, 박영순 국회의원, 권필석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장.

채덕종 기자 yesman@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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